Most Viewed

Categories

[BIFF 2021] 레오스 카락스 마스터 클래스, 영화 자체인 삶에 대하여

지난 10일 오후 2시 부산 KNN 씨어터에서는 프랑스의 대표 거장 ‘레오스 카락스’의 마스터 클래스-레오스 카락스, 그는 영화다’가 진행되었다. 19살 단편을 만들고 1984년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만든 22살에 영화 신동이란 말을 듣기 시작한 그는 음악에 재능 없음을 깨닫고 영화에 눈을 돌렸던 소년이었다. 지금은 영화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평론가 등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홀리 모터스> 이후 9년 만의 신작인 <아네트>는 뮤지컬 영화로 13살에 처음 그룹 스파크스의 음악을 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쏟아낸 작품이다. <홀리 모터스>와 유사한 점이 많으면서 연장선상 같기도 하다. 아버지가 된 후 만들었던 영화답게 딸에 대한 애착이 느껴지면서 직접 오프닝에 등장한다. <홀리 모터스>에서는 반려견과 함께 <아네트>에서는 딸과 함께 출연했다.

마스터 클래스는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영화 세계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와 영화를 향한 소신을 듣는 계기였다. 현장에는 반짝이는 눈망울로 감독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칠 수 없는 팬이자 후배들이 가득 매웠다.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라며 “오늘 이 자리는 내가 관객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시간이다”라고 말해 객석을 흥분 시켰다. 70분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관객이 질문을 던졌고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첫 질문은 고전적인 것으로 포문을 열었다. 과연 영화란 무엇인지,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였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은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 기억을 더듬어야 할 것 같다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열여섯 살 때 시골에서 파리로 이사 오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많이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내 영화, 남의 영화 가리지 않고 보지 않다. 하지만 16- 25세 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영화를 많이 봤다. 컴컴한 극장에 들어가서 다 함께 영화를 보는 행위에 강하게 이끌렸던 것 같다. 그때는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주로 화면의 배우만 보는 일차원적인 감상이었다. 하지만 점차 카메라 뒤의 스태프들, 스크린 앞의 관객을 인지하게 되었다. 카메라와 감독, 감독과 여배우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게 되었고, 특히 무성영화에 매료되었다. “라며 매체의 접근법을 설명했다.

이후 혼자 만드는 게 아닌 영화의 특성을 설명하는 대화를 이어갔다. “16mm 단편 영화를 4편 정도 찍기 시작했다. 그때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영화를 공부한 적이 없어 카메라를 어떻게 드는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을 만나 혼돈에서 질서로 돌입하게 되었다. 첫 장편은 저예산, 흑백이었다. 제작자 겸 배우, 촬영감독, 심지어 여자친구까지 만나게 되었다. 정리해 주고 명료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협력자를 만났다. 시너지가 작용했고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라고 답했다. 시종일관 레오스 카락스는 누구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천재라는 칭송에도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아니라는 대답을 전했다. 이어 개인적인 인생 이야기를 들려줄 뿐 영화 창작에 정답이란 없다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레오스 카락스는 총 6편의 영화를 만든 과작 감독이다. 벌써 예순이 넘은 나이 탓일까. 좀 더 자주 작품을 만나고 싶은 팬들은 그 이유를 궁금해했다. “수많은 이유가 있겠다.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이겠고, 악명을 쌓은 적도 있었으며, 캐스팅이 어렵기도 했다.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상상만으로 배우를 그리다 보면 오히려 맞는 사람을 찾기 어렵기도 했다. 때로는 에너지가 고갈될 때도 있었다. 시간이 많다고 해서 더 많이, 자주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세상의 모든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다고 해도 앞으로 5작품이나 더 찍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36세에 요절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은 죽기 전까지 30여 개의 영화를 만들었고, 일 년에 2편 정도 다작하는 홍상수 감독과는 다르다. 나는 이전과 달라졌을 때야 비로소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영화를 만들 때 나는 다른 사람이어야만 한다.”라며 소신을 전했다.

<홀리 모터스> 이후 <아네트>가 세상에 나왔다. 이번 영화에서는 전작과 변화된 무엇을 발견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는 “<아네트>는 좀 다르다. 처음으로 뮤지션의 제안, 아이디어로 진행된 영화다. 20살 때부터 항상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스팍스의 음악을 듣고 자라 언젠가 그들과 협업하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지만 좋은 기회가 왔다. 제작 기간까지 4-5년 지연되기도 했지만 모든 것이 충족되었다. 모국어인 영어로 만들 수 있는 첫 번째 음악영화였고, 마침 아버지가 된 후였는데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나쁜 아버지에 관한 소재라 매우 끌렸다.”라고 답했다.

스팍스와의 작업에 대해서는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던 시절에 몇 마디 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사람들을 만나왔다. 음악도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뮤지션과 호흡을 맞추게 되어 좋았다. 스팍스는 다른 뮤지션과 달랐다. 자기주장을 내세우기 보다, 내 의견을 들어주고 작업 속도도 빨란다. 때로는 작업을 같이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농담조로 두 형제 사이의 내가 세 번째 형제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라며 흡족했던 스팍스와의 협업을 말했다.

앞서 말한 질문에 첨부해 최근에 본 영화, 추천 영화를 물어보는 질문도 이어졌다. “지금은 영화를 보고 있지 않지만 필요한 부분만 잘라 본다든지, 신뢰할 수 있는 지인의 추천 영화는 챙겨 본다”라고 말했다. 추천 영화를 꼽자면 <군중 The Crowd>(1928), <선라이즈 Sunrise>(1927), <라 쁘띠 리제 La Petitte Lise>(1930)를 언급했다.

덧붙여 “영화라는 매체가 다른 매체와 달리 비교적 역사가 짧은 편이다. 발명되고 100년이란 시간 동안 매체의 힘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했다. 대중이 익숙해질 때쯤 전혀 다른 방식이 등장해야 했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고, 흑백에서 컬러화되는 등 새 기술을 선보여야만 했다. 한번 타오른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다음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넘기며 힘을 유지하는 거다. 그렇게 3D 디지털 기술까지 왔지만 3D 기술 때문에 영화의 힘이 커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의 힘은 기본 위에 덧씌울 때 가능하다. 영화는 근본적으로 이미지를 찍어낸다는 고유의 성질, 캡처의 의미를 유지해야 한다. 영화의 힘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무성영화를 꼭 찾아보길 바란다.”라며 영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논했다.

또한 현재 COVID19 상황으로 영화 제작에 영향을 끼쳤는지, 극장을 떠나 OTT로 가는 상황, 앞으로 영화계의 전망을 궁금해하는 질문이 이어졌다. 감독은 “코로나 이전에도 OTT는 진행되고 있었다. OTT 플랫폼이 원하는 것은 관객이 극장 말고 집에만 머물기 바랄 뿐이다. 근본적으로 극장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다. 즉, 교회-극장-술집으로 사람이 모여 사회가 만들어진다. 공동체 문화가 위협받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어 제작비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OTT 플랫폼 제안이 온다면 어떻겠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영화가 아니라면 의향은 있다. 하지만 영화를 상영하고 만나는 장소는 반드시 극장이 어여만 한다. 큰 스크린에 비치는 것만이 영화다. 시리즈(드라마)나 다른 형식이라면 고려할만하다. OTT에서라면 오리지널 콘텐츠가 아닌 VOD로 가능하다. 극장 상영 후 스트리밍 되는 상황이면 괜찮다.”라며 극장 공간의 상징성을 힘주어 말했다.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매체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과의 관계와 장소의 애정이 드러났다. 극장 중심이었던 한국 영화시장에서도 점점 축소되고 있는 상황과 맞물리며 슬픈 현실을 걱정하는 거장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날 마스터 클래스에서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객석에서 구원을 찾았는지, 애연가인 레오스 카락스에게 담배란 무엇인지 묻는 질문 때문이었다. 그는 “구원은 절대 찾지 못했고 앞으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도 단언했다. <아네트>에서처럼 범죄는 처벌받을 뿐이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거장의 답변으로 객석은 흥분으로 가득 찼다. “담배는 늦게 배웠다. 세 번째 작품 <폴라 X> 때부터다. 예산을 훌쩍 넘어가게 되면서 투자자, 제작사, 변호사 등을 만나는 자리가 잦아졌다. 담배는 이때 어색한 분위기를 해소하고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사회적인 행위이자 매개체였다. 그 사람들과 빨리 친해져야 해서 배우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끊을 수가 없었다.”라며 인간적인 면모를 선보였다.

담배는 그와 끊을 수 없는 단짝이다. 70분으로 예정되어 있는 마스터 클래스 당시 그 시간을 참을 수 있다고 말했었지만 객석의 질문에 자극받아 잠시 중단하고 10여 분 외출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고 주최 측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잠시 후 해사한 모습으로 등장한 감독의 태도에 모두 수긍하는듯했다.

거장과의 짧지만 굵은 70분이 훌쩍 지나갔다. 모든 객석에 마이크가 돌아갔으면 좋겠지만 여기까지 마쳐야만 했다. 하지만 이 시간을 통해 영화인으로서의 소신, 제작 과정, 영화의 미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는 계기였다. 영화는 결국 혼자서 만드는 게 아니다. 각각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 모여 협력하고 도우며 신뢰하는 사회적인 행위이다. 예순이 넘은 거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은 주위 사람들의 공으로 돌렸고 지극히 겸손했다.

앞선 행사가 취소되고 변경되는 등 한국에 오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겪은 레오스 카락스는 많이 지쳐 보였지만 성실히 대답해 주었다. 비록 자신은 지극히 사회적인 사람이 아니라며 거듭 강조했지만, 자신을 둘러싼 알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말은 여러모로 큰 자극이었다. 그의 발걸음 하나로 모두가 힘든 지금 상황 속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전해주었다. 레오스 카락스, 그는 영화였다.



    Leave Your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