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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열의 음악앨범] 결국, 내게서 완성되는 멜로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은 여백이 많은 영화다. 설명되어야 할 것들은 생략되어 있고, 시간은 몇 년씩 널뛰기하며 흩어진다. 영화에 몰입할 때 즈음에 시간은 바뀌고,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게 쉽지 않다. 정지우 감독에게 세밀한 감정과 밀도 높은 멜로 드라마를 기대했다면, <유열의 음악앨범>은 만족할 수 없는 영화다.

그리운 기억의 영화

이 영화는 버퍼링 걸린 음악이다. 중간중간 멈췄다가 급속도로 빠르게 재생되는 음악처럼 시간을 고무줄처럼 제멋대로 활용한다. 그런데 <유열의 음악앨범>이 장기간의 기억을 이어서 붙인 걸 형상화한 거라면, 꽤 그럴듯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 영화의 세계는 미수(김고은)와 현우(정해인)이 만나는 순간에만 움직이며, 떨어져 있을 땐 멈춘다. 94년부터 05년까지의 시간 중 두 사람에게 의미가 있고 되돌리고 싶은 기억의 파편, 그걸 주워 하나의 타임라인에 옮긴 영화다.

띄엄띄엄 날아오는 라디오 사연들로 구성된 듯한 이야기 구성은 영화의 제목과 잘 어울리지만, 멜로 드라마의 감성을 담아내기에 최고의 그릇은 되지 못했다. 두 사람이 사랑이라 말하는 게 스크린 너머로 잘 전달되지 않는다. 김고은, 정해인의 뛰어난 연기가 이를 보완한다 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백이 있다.

덕분에 영화에 일관되게 드러나는 건 사랑이란 설렘과 감정보단,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한 그리움이다. 이 그리움은 영화가 일부 복원한 과거의 공간과 문화로 증폭된다. 옛 라디오, 과거의 간판, 삐삐 등의 소품은 이를 친절히 돕는다. 그리고 유열의 ‘음악사랑’ 핑클의 ‘영원한 사랑’ 등의 음악은 화룡점정이다. 이렇게 <유열의 음악앨범>은 사랑이 아닌 그리움을 말하는 영화가 된다. 그리고 이 그리움은 멜로 영화적 판타지가 충족되면서 더 커진다.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컷 (출처: CGV 아트하우스)

멜로 영화의 판타지

여기서 판타지란 변하지 않는 사랑,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을 첫사랑 등을 말한다.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두 주인공은 우연과 인연 어디쯤에서 몇 번이고 마주친다. 그때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설렘을 간직하고 있다. 마치, 늘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는 듯 말이다. 더불어 그들은 만날 때마다 혼자이며, 덕분에 만남을 시도할 수 있다.

영화가 생략한 공백기에 그들이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살았는지 카메라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로써 언제나 첫사랑이 변치 않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판타지를 유지한다. 그렇게 영화가 지켜내는 건 두 사람의 순수함, 서로를 향한 일편단심이란 순결성이다. 이 순결성을 통해 <유열의 음악앨범>은 멜로 영화의 판타지를 강화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지속한다.

이 판타지 덕분에 영화의 ‘그리움’이란 정서도 함께 커진다. 순결함을 지킨 두 사람이 있는 영화 속 시간은 순수의 시대다. 지금은 사라진 공간에서, 이제는 상실한 것만 같은 순수한 감정과 사랑이 존재하는 곳. 그리고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곳. <유열의 음악앨범>은 그런 공간을 관객이 목격하게 한다. 그 시간을 통과했던 관객이라면, 스크린 속에서 그 시절 어딘가에 있던 순수한 자신을 찾으며 아련함과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컷 (출처: CGV 아트하우스)

<너의 결혼식><유열의 음악앨범>

<유열에 음악앨범>이 그리움의 영화라는 건, 작년에 개봉한 <너의 결혼식>과의 비교를 통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두 영화는 타임라인을 구성하는 방법이 유사했지만, 강조하는 건 달랐다. <유열의 음악앨범>이 과거 속에서 판타지를 지향한 영화라면, <너의 결혼식>은 현실에 발을 붙이며 리얼리티를 선택한다.

<너의 결혼식>도 주인공들의 학창 시절부터 결혼까지의 긴 시간을 담는다. 하지만 <유열의 음악앨범>과 느낌은 꽤 다르다. 우선, <너의 결혼식>에도 과거를 추억하게 하는 소품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부차적인 요소로 인물 뒤에 머무른다.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영원한 사랑’ 등의 노래가 그리움을 증폭하며 인물보다 돌출된 것과는 다르다.

<너의 결혼식>에서도 승희(박보영)와 우연(김영광)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엔 두 사람의 헤어진 시간 동안의 감정 변화와 성장을 함께 담았다. 언제나 한결같은 첫사랑과 멜로 영화의 판타지가 없다. 덕분에 과장된 코미디로 믿기 힘든 상황이 다수 있다 해도 <너의 결혼식>이 <유열의 음악앨범>보다 좀 더 사실적인 영화가 된다.

이 비교는 영화의 완성도와는 무관하다. 리얼리티와 판타지라는 차이. 이에 따라 관객의 선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 <너의 결혼식>을 옆에 세웠을 뿐이다.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컷 (출처: CGV 아트하우스)

나의 이야기로 돌아오는 판타지

결국, <유열의 음악앨범>은 미수와 현우라는 인물이 아니라 영화의 배경에 집중할 때, 더 큰 감동을 끌어낸다. 두 인물을 감싸고 있는 순수의 시대, 그 공간으로의 초대에 응할 수 있는 관객에게는 커다란 선물이 될 영화다. 여기서, 글을 시작할 때 언급했던 ‘여백’은 장점이 될 수 있다. 영화의 빈 곳 덕분에 관객은 영화 속 인물이 있던 지리에 자신을 세워볼 수 있다. 느슨한 미수와 현우의 러브 스토리 대신, 자신의 추억으로 그 공간을 채워볼 여지가 있다.

이런 관객에겐 <유열의 음악앨범>은 미수와 현우의 서사적 개연성이 약할수록, 그들에게 몰입할 수 없을수록 더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다. 주인공들의 이미지는 멀어지고, 관객 자신의 이미지와 서사가 더 뚜렷해지는 기이한 경험을 가능케 한다. 이렇게 되면, 영화에 등장한 삐삐, 이메일, 음악은 자신의 과거와 공명하고, <유열의 음악앨범>은 ‘나만의 멜로 영화’가 될 수 있다.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컷 (출처: CGV 아트하우스)

그런데 만약, 영화 속 시대를 전혀 모르는 관객이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떨까. 혹은, 영화가 담은 과거의 이미지에 별 감흥이 없거나, 그리움이란 감성에 젖지 않은 관객에게 <유열의 음악앨범>은 어떤 영화일까. 그때 남는 건 김고은과 정해인의 아름다운 이미지, 그리고 ‘멜로 영화’의 판타지가 만든 진부한 이야기 정도가 전부다. 그들에게 <유열의 음악앨범>은 지루하고 공감할 수 없는 영화에 머물고 만다.

정리하면, <유열의 음악앨범>은 멜로 영화의 판타지를 충족하고, 순수의 시대를 복원하면서 그리움이란 감정을 건드린다. 그리고 그 그리움으로 소환된 자신의 이미지를 투영하면서 관람할 수 있는 영화다. 그러나 이 판타지에 빠지지 못한다면, 껍데기만 아름다운 영화에 그치고 만다.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컷 (출처: CGV 아트하우스)

<유열의 음악앨범>이 아주 오랜 시간 뒤에도 기억될 영화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가 재현한 시간을 경유한 이들에겐, 좋은 멜로 영화로 평가받을 수 있는 특별한 점이 있다. 그리고 이를 정지우 감독이 현재의 관객에게 선물하는 영화적 환상이라고 봤다. 그는 스크린 밖에서 더 확장하는 멜로 영화를 시도했다. (그렇게 믿고 싶다)

P.S 내게 <유열의 음악앨범>은 좋은 영화다. 카메라가 비춘 곳을 응시했지만, 난 다른 이의 얼굴을 목격했고, 그래서 영화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와 함께한 덕분에, 내게는 아름다운 영화였다.

키노라이츠 매거진 편집장 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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