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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 죄책감에서 해방된 여성의 성장으로 본 관점 해석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개막작인 <멘>은 <엑스 마키나>,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의 연출자 알렉스 가랜드가 각본과 연출을 맡아 화제의 중심에 섰다. 영화제에서도 이례적으로 개막식 행사 후 같은 장소에서 개막작을 관람하지 않고 상영관으로 옮겨 제한 상영을 했을 정도다. 그가 15년이나 시나리오에 공들였다는 말은 괜한 게 아님을 입증한다. 공포영화의 클리셰를 비껴가는 참신함은 무엇을 상상하든 예측하기 힘들 지경이다. 엔딩크레딧 곡에 참여한 엘튼 존의 음악까지 듣는다면 이 영화를 완성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유럽의 그린맨 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으며 <유전>, <미드소마> 등 호러 명가로 떠오르는 A24의 신작으로 충격적인 마지막 10분의 시퀀스는 비주얼 쇼크다. 자연의 초록과 집안의 붉은 인테리어와 핏빛 향연은 보색대비의 강렬함을 풍기며 불안함을 고조시킨다. 이런 식의 양가적 감정은 죽음과 생명, 고대와 현대, 안정과 불안을 끊임없이 노출해 공포감을 준다. 흡사 <서스페리아>의 아름답지만 불편한 어떤 지점을 연상케 한다.

<멘>은 <곡성>을 떠오르게 한다. 무언가에 현혹되어 눈에 멀어버리는 일.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이상한 일들의 연속으로 혼란스러운 상황 말이다. 본 적 없는 비주얼과 이내 벌어지는 충격은 어떤 의미에서건 논쟁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표현의 자유라고 해야 할지, 고어적 잔인함을 전시하는 태도로 봐야 할지, 바디호러 장면은 호불호가 갈릴만하다.

‘그린맨’은 동양으로 치면 도깨비 같은 전설 속 존재다.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상징으로 쓰여 대문 문고리, 방패, 우물 등에도 쓰인다. 주로 입에서 나뭇잎이나 덩굴이 나오는 형상이다. 또한 재생을 의미하기도 해 새싹이 움트는 봄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와 대비되는 ‘실라나히그’는 다산과 욕정을 경고하는 원초적 상징이다. 영화에서는 마을 성당에 두 석상이 비치돼서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런던에 사는 하퍼(제시 버클리)는 남편의 죽음을 목격한 후 치유 차 한적한 시골 마을로 여행 왔다. 관리인(로리 키니어)에게 500년 된 집에 대해 듣고 숲으로 산책 나간 하퍼는 얼마 후 긴 터널을 마주한다. 터널 속을 거닐며 메아리를 즐기던 사이, 그 끝에 있는 정체 모를 존재가 괴성을 지르며 자신을 쫓아오자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아름다웠던 숲은 되돌아가려 하자 성난 것처럼 다른 길로 안내하는 듯 변해 있다. 돌아가려 할수록 불가항력에 이끌렸고, 가까스로 숲을 빠져나오게 되지만. 그 이상한 존재가 집까지 따라오는 빌미를 만들게 된다. 그날 이후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존재를 피해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마을 전체가 이상한 상황임을 깨닫고 떠날 준비를 하게 된다.

어디서도 본적없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여성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신체적 불쾌함을 제거하면 알렉스 가랜드 감독 작품은 대부분 여성을 약자로 규정하지 않는 서사다. 전작에서 보여준 강인한 여성 캐릭터는 제시 버클리를 만나 더욱 견고해졌다. 제시 버클리가 맡은 하퍼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괴로운 상태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와 영혼을 잠식하는 공포 앞에 비명을 지르기보다 분노의 외침으로 응수한다. 남성의 거침없는 폭력에 정면으로 마주하고 타파해나가는 성장이 목적으로 보인다.

하퍼는 남편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며 죄책감에 빠져 있다. 남편은 죽기 직전 자살을 예고하며 평생 너의 죄책감에 붙어 따라다닐 것이라 저주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화가 나서 아무 말이나 하는 줄 알았지만 잠재의식 속에 남아 트라우마가 되었다. 원치 않는 상황은 휴가차 온 시골 마을에서도 줄곧 이어진다.

집 안을 일방적으로 들어오려는 마을 남성들은 불쾌함을 넘어 혐오스럽다. 오프닝에 흩날리던 민들레 홀씨처럼. 다수가 오롯한 하나와 결합하려는 시도는 원초적인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상대가 명확한 거절 의사 표현을 했음에도 무차별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노골적인 구애는 사랑이 아닌 폭력인 셈이다.

제목 ‘MEN’은 겉으로는 남성성에 한정되어 있지만 인간이란 포괄적인 뜻도 있다. 따라서 후반부에 남성과 여성의 무경계성은 영화의 화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겠다. 하퍼가 결혼 생활 내내 힘겹게 감수했을 법한 일방적인 권력과 위협을 영화는 꾸준히 보여준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때 영화관에 갇혀 이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관객은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으며, 의도했을 법한 원초적인 메시지가 온몸으로 전해지는 효과를 발휘한다.

그래서일까. 생명 잉태의 씨앗을 제공했을 뿐 출산과 육아는 나 몰라라 했던 남성을 향한 여성의 일침처럼 들렸다. 호러 장르에서 여성은 일반적으로 약자였지만 <멘>에서는 열쇠를 쥔 주인공으로 주체적으로 활약한다. 힘으로만 무조건 정복하려 해도 결코 얻을 수 없는 여성의 마음을 이 영화는 집요하게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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