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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얼: 나를 죽여라> 나와 결투를 벌어야 하는 여자의 아이러니

복제인간이 허용되는 세상, 세라(카렌 길런)는 자는 도중 피를 토해 병원을 찾았다가 98% 불치병을 진단받는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겨를도 없이 의사는 남겨진 가족을 위해 클론을 만들면 편하다며 한 장의 팸플릿을 건넨다. 듀얼이라 불리는 일종의 클론을 만들라는 것. 초간단이다. 침만 뱉으면 1시간 만에 뚝딱 만들어지는 나의 대체품이었다.

아빠와 사별한 후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는 엄마와 사랑하는 남자친구 피터를 위해 듀얼을 신청한 세라. 하지만 괜히 질투가 날 만큼 나보다 더 낫다. 주근깨나 주름도 별로 없고 피부도 깨끗하다. 머릿결도 훨씬 부드럽다. 군살 없이 매끄러운 몸매뿐만 아니라 푸른 눈을 가진 미녀로 재탄생되었다.

성격도 긍정적인 데다가 못 먹는 음식도 곧잘 먹기도 할뿐더러, 피터와 성격도 잘 맞고 소원하던 엄마와도 잘 지낸다. 어째 본체인 나보다 업그레이드된 것 같아 살짝 우울하다. 그런 듀얼을 죽기 전까지 봐야 하는 건가 못내 불편하지만. 세상을 떠나도 자식 같은 복제품이 있다는 건 든든한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점차 듀얼은 세라의 삶에 적응하며 일부가 되어가던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진다. 시한부라던 의사는 병이 호전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말로 번복한다. 의사는 오차 범위 2%에 해당하는 기적이라면서 원한다면 당장 듀얼을 폐기해도 된다고 일러준다.

하지만 듀얼은 폐기를 원하지 않고 오히려 잔류를 신청하게 된다. 오직 하나의 정체성만 인정하는 세상에서 둘 중 누가 남을 것인가를 두고 결투해야만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과연, 원본인 내가 나와 똑같은 듀얼을 죽이고 온전한 삶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세라에게 비로소 살고 싶다는 욕망이 불타오른다.

존엄성이 말살된 디스토피아

영화 속 세상은 지루하기 짝이 없고 회의적이다.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존엄한 죽음이라는 허울 좋은 말로 듀얼을 승인하고 살인을 방조한다. 듀얼을 만들고 유지하며 폐기하는 비용까지 개인의 몫으로 돌려 버린다. 법은 허용하지만 처리는 나 몰라라 하는 상황이다.

그런 세상은 살인, 자살, 복제인간 등에 윤리적 잣대가 엄격하지 않아 혼란을 키운다. 세라는 죽음의 문턱에서 갑자기 1년 후 결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에 놓여 모든 것을 잃는다. 개인 전투 교관까지 부담해야 하는 처지라 정신적 고통뿐만 아니라 사회적 신용까지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아무도 구해주지 않고 오롯이 혼자만의 몫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자신을 죽여야만 살 수 있는 세상

본인 선택이라지만 듀얼은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 원본이 죽기 전 둘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 각인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가 그렇다. 이후 듀얼은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이어받아 괴롭지만 하소연할 곳이 없다.

때로는 듀얼과 원본이 사랑에 빠져 죽은 한쪽을 그리워한 채로 남은 생을 살아야 하는 고통도 동반된다. 듀얼을 죽인 원본의 후유증도 상당하다. 살인의 죄책감과 본인을 경멸하는 가족과 서먹해져 일상이 망가지기도 한다. 둘 중 누가 남더라도 인생은 여러 짐을 떠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책임이기 때문이다.

과연 둘 중 누가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할까. 원본의 동의하에 이후 삶을 살 권리를 주장하는 듀얼과 그저 삶을 훔친 거라 분노하는 원본. 영화는 세라가 결투를 준비하는 상황을 길게 할애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프닝의 결투 장면이 떠오르며 결과를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른 상황을 벌여 좀 더 침울하게 관객을 조롱한다. 인간성과 믿음에 관한 따스한 마음을 짓밟으며 냉소적인 어투로 마무리한다. 이런 게 인생이지, 허탈하고 씁쓸한 상황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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