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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 럭 뱅잉> 남편과 합의하에 찍은 성관계 동영상이 유출된 교사

<배드 럭 뱅잉>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의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코로나 시국을 반영한 영화의 배경은 물론이거니와 몇 차례의 감염 확산으로 위험에 직면한 상황에서도 영화를 찍겠다는 일념으로 완성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은 마스크를 쓴 채 연기하고 스탭과 일반 시민들까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마치 기록된 타임캡슐처럼 인류의 재난을 연출하지 않고 그대로 담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인류 DNA에 깊은 상흔을 남긴 코로나19는 21세기에 일어난 손에 꼽을 재앙으로 다양한 영향을 미쳤으며 여전히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기에 의미가 크다.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은 루마니아의 ‘라두 주데’ 감독은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과 함께 현대 루마니아를 이끌어갈 차세대 거장으로 우뚝 섰다. 시작은 오랜 친구들과 했던 토론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사생활 문제로 해임된 교사 사건, 전 세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라이브 캠 채팅을 주제로 사회 현상을 직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소할 수 있는 주제를 루마니아의 역사와 정치를 걸쳐, 전 세계적 관점으로 확장한 감독의 역량이 돋보인다.

예술이란 때로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때가 많다. 행간의 의미, 보이지 않는 심연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한국에서도 이런 감독이 나올 수 있을까. 내내 필자를 따라다닌 질문에 언젠가 답해 줄 분을 간절히 찾고 싶을 뿐이다.

사생활이 담긴 영상이 유출된 교사

영화는 크게 3부로 나뉜다. 1부는 교사 에미 (카티아 파스칼리우)가 남편과 합의하에 찍은 성관계 동영상이 유출되어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다. 10분 남짓한 오프닝 영상은 포르노그래피를 연상케 하는 수위로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다. 이 영상은 빠르게 퍼져 결국 학생들 사이에서도 떠올라 결국 교사 해임을 놓고 학부모 긴급 소집이 벌어진다.

이후 ‘일방통행’이란 부제를 달고 에미가 교장(클라우디아 이레미아)을 만나러 가는 길과 학부모 회의에 가는 길을 하염없이 보여준다. 에미는 걷고 또 걷는다. 마치 홈 비디오처럼 군중 속의 주인공을 CCTV처럼 촬영했다. 루마니아 시내 곳곳을 관광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현실적이다. 영화 촬영임을 모르는 시민은 카메라를 든 스탭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응시하기도 한다. 도시는 복잡하고 시끄러우며 혼란스럽다. 그 속을 차분하게 걸어가는 에미는 생각이 많아 보인다.

2부는 라두 주데 감독 버전의 영상으로 만든 잡학사전이다. 사전적 정의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선이다. 무작위처럼 보이나 선정된 단어에 맞는 몽타주를 선보인다. 무의미한 단어와 자극적인 푸티지 영상, 기록 사진의 나열처럼 보여도 궁극적 주제를 담당하고 있다. 루마니아의 근현대사와 폭력, 여성과 인종 차별, 독재, 공산주의 등 해결되지 않고 부유하는 자구의 사회적 문제들을 탐구한다.

마지막 3부는 에미가 심판대에 올라 비난과 이해의 시선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학부모 의견은 강경하다. 음란한 교사를 명문학교에서 교사로 두는 건 이미지 실추라는 의견, 정치적 올바름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금쪽같은 자식을 믿고 보낼 수 없다는 의견, 유출 실수가 있었지만 개인의 사생활이라는 의견 등. 갑론을박이다.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다들 겉으로는 교양 있는 척하지만 사실은 뼛속까지 위선적인 인간 군상의 전시장이다. 에미가 보는 앞에서 학부모들은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는 기괴한 해프닝을 벌인다. 우연히 유출된 동영상은 인간의 추악한 민낯까지 고발하는 매개체가 되어간다.

이후 난장 토론이 벌어지고 마녀사냥과 개인 취향 사이의 의견 충돌이 극심해진다. 재미있는 점은 그 상황에서 에미는 할 말은 다 한다는 거다. 속 시원한 반박이다. 당연히 주눅들 수는 있는 상황에서 전혀 지지 않고, 작정한 윽박에 또박또박 응수한다.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자기 입장을 제대로 펼쳐 낸다.

같은 상황, 한국에서 다룬다면?

놀라우면서도 충격적인 동구권 여성 캐릭터의 발군이었다. 과연 한국 사회에서도 에미 같은 캐릭터가 나올 수 있을까. 비슷한 주제였던 <경아의 딸>이 문득 생각났다. <경아의 딸>이 보이지 않는 차별을 그렸다면 <배드 럭 뱅잉>은 스크린을 뚫고 나올 맹위로 뚜렷한 차별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 속 상황처럼 교사 해임이 화두지만, 개인의 사생활을 조롱하고 괄시하는 데만 혈안 되어 논점이 흐려지고 있다. 결코 의도하지 않았지만 일어난 초유의 사태를 직접 변호해야 하는 상황은 한국에서 그저 꿈에서나 가능할 법하다. 피해자인 여성은 마녀사냥을 당할 게 뻔하며, 2차 피해도 피할 수 없다.

<배드 럭 뱅잉>은 이 ‘민낯’을 아마추어 포르노그래피로 현혹한 채 관객을 흔들고 현대사회, 정확히는 루마니아 사회를 고발하는데도 이용한다. 대한민국의 역사에도 빠질 수 없었던 독재 정권이 루마니아의 뿌리 뽑지 못한 잔혹한 과거와 오버랩 된다. 충격적이었던 오프닝과 실험적인 연출이 돋보였던 영화는 마지막 3부에서 응집된 폭발을 이룬다. 결국 앞서 보여주었던 날것의 화법은 후반부를 위한 밑밥이었음을 알아차리게 만들며 영화는 끝난다.

무척이나 논란이 되었던 영화를 본 소감은 이러하다. 듣도 보도 못한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대체 내가 무엇을 본 건지 뇌를 얼어붙게 만들고 나도 모를 씁쓸한 웃음 뒤에 곱씹어 생각의 꼬리를 물게 한다. 굳이 따지자면 영화는 특권층, 엘리트, 기득권이라는 허영 의식이 무엇인지를 풍자하는 낯간지러운 유머라고 말하고 싶다. 약자인 아동, 여성, 여성, 유대인을 무시하는 세력 앞에서 에미의 고군분투를 생중계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참고로, 루마니아의 사회적 문제를 깊게 탐구하고 싶다면 앞서 말한 ‘크리스티안 문쥬’감독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을 함께 보면 좋다. CGV 기획전을 통해 온전히 봤던 영화다. 7월 28일 개봉 버전은 보노보노 PPT 감성을 자극하는 감독의 자가 검열판으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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