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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바비 그리고 켄

1959년 장난감 회사 마텔이 선보인 인형 바비는 서구권 여자아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지니고 있는 히트메이커다. 영화 <바비>는 이 바비인형을 소재로 한 실사영화다. 금발에 날씬한 몸매로 대표되는 바비 역으로 마고 로비가 캐스팅이 되며 제작단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가장 호기심을 자극한 점은 바비 인형을 소재로 과연 어떤 영화를 만들어낼 것이냐는 의문이었다.

멈블코어 계열의 스타배우에서 성공한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그레타 거윅은 핑크색이 돋보이는 통통 튀는 색감에 바비와 켄이 모여 사는 가상의 도시 바비랜드를 통해 컬트적인 세계관을 완성했다. 여기에는 수많은 바비와 켄이 모여서 살고 있다. 인종도 외모도 다르지만 똑같은 바비와 켄으로 통용되는 이들은 주체성을 지니고 사유 속에서 살아가는 게 아닌 현실세계에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에 맞춰 생활한다.

바비월드는 장난감 회사 마텔을 매개로 리얼월드와 연결되어 있다. 리얼월드 속 주인에 따라 바비의 모습과 생각이 바뀐다. 아름다움의 상징인 금발의 바비는 어느 날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후 하이힐에 맞춰 올라간 발은 중력의 영향을 받아 뒤꿈치가 땅에 닿고, 도자기 같던 피부에 셀룰라이트가 생기는 등 완벽한 바비에게 균열이 생긴다. 인형에게 변화가 생긴 건 현실세계 주인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바비는 리얼월드로 모험을 떠난다.

이 모험에 바비의 남자친구 인형, 켄이 동행하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바비월드는 동화판 ‘이갈리아’로 볼 수 있다.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에 등장하는 이 가상 국가는 남성과 여성에 대해 지니는 특징 또는 선입견을 정반대로 뒤집어 놨다. 켄은 바비의 들러리처럼 취급을 받는 인형이다. 우스갯소리로 켄이 세트로 들어간 상품을 살 바에야 바비 코스튬 하나라도 더 넣어주는 걸 구매하겠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현모양처가 되어 남성들에게 사랑을 받는 걸 이상적인 여성이라 여겼던 시대처럼 켄들은 바비의 관심을 받기 위해 분투한다. 바비월드에서는 사회의 모든 지도층은 바비이고 켄들은 인형의 역할처럼 들러리다. 바비가 주인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동안 켄은 남성 대통령, 남성 CEO가 즐비한 리얼월드에 충격을 받는다. 책 한 권 읽은 사람의 철학이 가장 무섭다는 말처럼 남성 우월주의에 빠진 켄은 바비월드를 켄월드로 전복시키고자 한다.

동시에 바비는 자신의 정체성에 상처를 입게 된다. 도입부에서 영화는 바비 인형이 지닌 의의에 대해 말한다. 아기 인형만 가지고 놀던 여자아이들은 엄마로의 역할을 꿈꿀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여자아이들에게 심어주었고 이것이 여권신장 운동에 기여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때문에 바비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허나 리얼월드에서 바비는 페미니즘 운동을 50년은 퇴보시킨 원흉으로 지목받는다.

완벽한 외모를 지닌 바비 때문에 굳어진 미의 기준과 이로 인해 여성들이 짊어져야 했던 부담을 이유로 공격을 받는다. 더해서 그동안 들러리 역할을 해오던 켄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바비를 탓하자 말 그대로 멘탈붕괴에 빠진다. <바비>는 다소 난잡한 작품이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큰 논쟁거리라 할 수 있는 남녀갈등을 바비 VS 켄의 대립구조에 대입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감독이자 각본가인 그레타 거윅은 휴머니즘이란 코드를 적극 내세운다. 독특한 소재에 컬트적인 표현을 택했지만 영화가 난해하지 않은 이유는 타율이 높은 유머에 갈등을 봉합하는 적절한 장치를 택했다는 점에 있다. 초기 바비가 여자아이들에게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줬던 거처럼, 현재의 바비도, 켄도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주체성과 이를 위한 사유를 강조한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에는 다양성도 포함된다. 각기 다른 외모를 지녔지만 이름은 같았던 바비와 켄들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란 가능성을 보여준다. 바비, 켄과 달리 유일무이한 인형 앨런과 임신부 인형이라 인기를 얻지 못해 출시가 중단되었던 미지 역시 바비랜드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그 어떤 존재가 되어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휴머니즘의 기반을 탄탄하게 만든다.

이런 지점은 마텔사가 2000년대부터 선보여 온 인형 바비 영화 시리즈와도 관련되어 있다. 초기에는 동화 같은 이야기와 신비한 이야기를 내세우며 동심을 사로잡았던 이 시리즈는 시대에 맞춰 변화해 왔다. 아이들에게 자신감과 도전의식을 심어주는 내용을 보여주더니 현재는 PC의 가치를 담아내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흐름에 맞춰 실사영화 <바비>는 사회적 갈등과 봉합의 가능성을 우리가 사랑하는 인형들의 가상세계를 통해 이야기한다.

<작은 아씨들>, <레이디 버드>에서 소녀들의 성장을 공감과 응원을 자아내게 선보인 그레타 거윅은 이 메시지를 인형 바비 그리고 켄을 통해 다시 한 번 성공적으로 담아냈다. 시도는 실험적이지만 시대상에 맞는 사건과 상업영화에 어울리는 교훈과 감동으로 다시 한 번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약 70년에 달하는 역사를 지닌 ‘바비’라는 브랜드를 새로운 이름으로 인식시켜 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現 키노라이츠 편집장
前 씨네리와인드 편집장
前 루나글로벌스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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