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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브 [콜렉티브] 부패한 국가에 고통 받는 건 국민 뿐

<콜렉티브> 스틸컷 / 웨이브

OTT 웨이브가 콘텐츠의 질적인 측면을 더하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8일 다큐멘터리 영화 <콜렉티브>와 <천사의 상흔>을 공개한 것인데요, 이 작품들을 필두로 순차적으로 약 30편의 다큐멘터리를 독점 공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콜렉티브>는 그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품으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과 장편다큐멘터리상에 오르며 큰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이 작품의 감독은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출생으로 독일에서 영화를 공부한 알레그잔데르 나나우입니다. <Toto and His Sisters>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30회 바르샤바 국제영화제 베스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그는 ‘콜렉티브 화재사건’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을 통해 루마니아 사회에 깊게 뿌리박힌 정치권의 부패 문제를 말합니다. 하나의 사건을 통해 국가 전체를 바라보는 거시적인 시점의 카메라로 인물들을 비춥니다.

<콜렉티브> 스틸컷 / 웨이브

클럽에서 발생한 화재사건, 국가의 뿌리를 들추다

2015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 위치한 인기클럽 ‘콜렉티브’에서 화재사고가 발생합니다. 당시 클럽에 있던 젊은이 27명이 즉사했고 180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인기클럽이 비상구도 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한 시민들은 부패한 관료들을 향한 시위를 전개했습니다. 이 시위로 집권당인 사민당은 사퇴를 했고, 다음 선거까지 1년 동안 테크노크라트로 이뤄진 임시정부가 수립됩니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모든 사건이 일단락 된 거처럼 보입니다. 허나 문제는 화재사건 이후에도 사건의 피해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병원에서 약 30명에 달하는 추가 사망자가 나온 것이죠. 부상자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목숨을 잃는 건 당연한 일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피오시아닉이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점입니다.

기자 카렐린은 이 문제에 대해 파고 들던 중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됩니다. 루마니아 병원에서 사용하는 소독약이 기준치에 미치지 못하게 희석된 상태였던 것이죠. 의사들이 소독약에 담가 둔 메스가 오히려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도구 역할을 하게 된 셈입니다. 그럼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소독약이 문제라면 왜 화재 사건 이전에는 이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던 것일까요.

콜렉티브 화재사건 당시 정부는 독일 수준에 달하는 최고의 의료시설을 피해자들에게 제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대중은 피해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진실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병원은 피해자들을 받을 수 없다며 다른 곳으로 보내다 죽이는가 하면 내부적으로는 바이러스가 퍼진 건 물론, 몸에 구더기가 생겨 죽은 환자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전혀 관리가 되지 않는 상황에 처한 거죠.

<콜렉티브> 스틸컷 / 웨이브

정부 말만 믿었다가 혼란에 빠진 사람들

카렐린을 비롯한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이들은 정부의 발표와 달리 루마니아는 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할 만큼 열악한 의료서비스를 지니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워낙 열악했기에 소독약 문제 같은 건, 수면 위로 올라오지도 않은 것이죠. 내부 고발을 결심한 의료계 종사자는 병원장의 자리가 매관매직으로 이뤄졌음을 알립니다. 의료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 요직을 차지하다 보니 병원의 상태는 엉망이 되었고 사건 후 피해자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겁니다.

단호하게 루마니아 내 모든 병원은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하는 내부 고발자의 모습은 ‘독일 수준의 치료’라는 말에 희망을 품었던 피해자 그리고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깁니다. 심지어 부쿠레슈티에 위치한 화상전문 병원이란 곳은 화상을 제대로 치료할 수 없는 시설을 지닌 곳이었습니다. 새 보건복지부 장관은 실태를 파악한 후 이렇게 말합니다. 루마니아는 전국에서 화상 환자가 다섯 명만 나와도 감당할 수 없다고 말이죠.

루마니아의 부정부패는 사건을 파헤치는 이들이 생각한 수준 이상이었습니다. 소독약 문제는 오랜 시간 기업의 뒤를 봐준 부정한 정치인들에 의해, 병원 문제 역시 매관매직을 일삼아 국가 시스템을 망가뜨린 정치인들에 의해 이뤄진 것이지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정부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던 것입니다.

처음 정부가 대책을 발표했을 때, 카렐린의 아들은 정부를 흔드는 기사를 쓰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정부가 흔들리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죠. 정치라는 것에는 감시자가 필요합니다. 끊임없이 비판을 하고 비난을 해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만 하는 건 국민입니다. 국민이 아니라면 누구도 그 역할을 할 수 없으며, 국민이 포기한 순간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도 그 나라의 국민입니다.

그래도 시위를 통해 정권을 물러나게 한 만큼 루마니아란 국가는 변화가 가능한 곳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이 작품의 결말은 비극이고 이 비극이 전 세계가 <콜렉티브>를 주목한 이유입니다. 이 결말을 보면서 두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루마니아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크리스티안 문쥬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과 <엘리자의 내일>입니다.

<엘리자의 내일> 스틸컷 / 영화사 진진

‘4개월, 3주… 그리고 2일’과 ‘엘리자의 내일’

루마니아는 1965년부터 1989년까지 유럽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으로 뽑히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습니다. 이때 루마니아 국민들이 당한 탄압은 엄청났는데, 그 중 하나가 낙태금지법이었습니다. 특정 상황을 제외한 모든 경우에 낙태를 금지했는데 이 출산강요 정책은 끔찍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경제력이 부족한 산모는 불법 낙태수술을 받다가 목숨을 잃는가 하면 방치와 영양결핍에 시달린 유아들의 사망률 역시 급증했죠.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이 시기를 배경으로 비밀경찰의 감시 속에서 불법 낙태를 시도하는 대학생의 모습을 긴장감 있게 담아냅니다. 시대의 비극이 어떻게 개인을 옥죄는지 보여준 것이죠. 결국 차우셰스쿠는 총살형을 받고 목숨을 잃게 되는데 문제는 그의 사후에 있습니다. <엘리자의 내일>의 의사 로메오는 젊은 시절 루마니아 혁명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인물입니다.

허나 차우셰스쿠 이후 권력을 잡은 사회민주당(사민당)은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고 나라를 여전히 부패하게 만들었습니다. 오죽했으면 그저 차우셰스쿠가 없는 공산당 정권과 다를 바가 없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죠. 이런 현실에 실망한 로메오는 의사가 된 이후 사회 기득권층에 합류합니다. 그는 딸 엘리자를 영국으로 유학보내기 위해 청탁을 합니다. 과거 그가 격렬하게 저항했던 비리와 부패에 스스로 발을 들이민 겁니다.

로메오가 이 선택을 한 이유는 엘리자에게 ‘내일’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입니다. 루마니아에서는 미래가 없다 여긴 그는 엘리자를 외국으로 보내고자 하죠. 허나 그 기회를 만들기 위해 로메오는 부패한 루마니아의 정치권에 발을 들이미는 우를 범하고 맙니다. <콜렉티브>의 결말 역시 이 내일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조명합니다. 1년 뒤, 사민당이 다시 선거에서 승리를 하고 카렐린은 망연자실합니다.

이때 카렐린의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 이 나라는 변함이 없다고 말하는 장면은 <엘리자의 내일>에서 로메오와 그 어머니의 대화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모든 국민이 분노한 참사 후에도 봄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루마니아의 겨울은 언제쯤 끝이 날 수 있을까요.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피해자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건 국가가 지닌 시스템입니다. 그 시스템을 끊임없이 감시해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 준다는 걸 이 다큐멘터리는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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