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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가 놓친 순간과 영화의 윤리성

<말모이>의 관람이 끝나고서 복잡한 생각이 객석을 떠돌고 있었다. 암울한 시대에 모든 걸 걸고, 한글을 지켰던 인물들 앞에서 느낀 경건함. 동시에 느낀 영화적 완성도를 향한 진한 아쉬움.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이야기 앞에서, 영화의 부족함을 향해 의문을 던진다는 건 껄끄러운 일이다. 마치, 한글을 흉보고, 그 역사 앞에서 불순한 태도를 가지고 서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말모이> 앞에서 이 영화가 별로라 말하는 건, 이상한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감독님, 왜 이 죄책감은 저의 몫이 되어야만 할까요.”


<말모이>는 기억되어야 할 시간을 소환해 지금의 관객에게 보여주고, 한글에 관해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영화의 선한 의도가 주목받는 영화로, 관람평에서도 고맙고 착한 영화라는 의견을 다수 볼 수 있다. 잠든 시간을 깨워줬다는 점에선, 글을 쓰면서도 고마워하고 있다. 그런데, 이 착한 의도 덕에 영화의 결점은 일부 가려져 있는데, 손익분기점을 달성하기 힘들 것 같다는 시점에서, 이에 관해 짧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말모이>는 어떤 점에서 아쉬웠고, 왜 기대만큼의 흥행에 실패했나. 엄유나 감독의 전작인 <택시운전사>라는 비교 항을 두고서 생각해봤다.


<말모이>와 <택시운전사>의 유사성

<말모이>는 엄유나 감독이 각본을 쓴 <택시운전사>와 유사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다. 두 영화는 한 아버지가 돈 때문에 역사적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가며 시작한다. 이 남자들은 폭력적인 권력의 부당함과 잔혹함을 목격하고, 소시민들과 함께 대업에 동참한다. 그러다 목숨 걸고 도망치기도 한다. 이후, 역사적 대업은 완성되지만, 주인공은 이름 없는 영웅으로 남겨진다.

<택시운전사>가 ‘김사복’이라는 인물을 모티브로 했기에, 창작의 한계가 있었다고 하지만, 가상의 인물을 설정한 <말모이>는 비교적 자유로운 캐릭터 설정이 가능했다. 그런데도 김판수(유해진)가 엄유나 감독 전작의 인물과 상당히 겹친다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성공한 영화의 공식을 답습해, 안정적인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도였을까. 아니면, 이번에도 각본을 쓴 엄유나 감독의 고유한 영화 세계로 봐야할까. 어떤 이유였든 이 자기복제가 실패했다는 게 중요하다.

더 좋은 아버지로 인정받기 위해 뛰어든 대업(사전 편찬 작업)을 보여준 <말모이>는 현재까지는 <택시운전사> (약 1,200만 관객 동원)만큼의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착하지만 실패한 영화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다양한 원인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연출, 연기, 편집 등 요소별로 느낀 아쉬움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하나의 게으름이 눈에 띈다. <말모이>는 한글에 관해 깊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


판수에게 한글은 어떤 의미였을까

이 영화는 한글이 소중하다고 말하지만, 왜 소중한지 보여주는 데는 무관심하다. 한글의 소중함은 이야기가 아닌, 한 마디의 대사로만 전달될 뿐이다.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입니다.’라고 말하지만, 이를 에피소드로서는 풀어내 보여주지 못했다. 저 대사의 옳고 그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저 대사는 반박을 할 여지가 없고, 더 없이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많은 결점을 봉합하고 사유의 시도를 차단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저 숭고한 정신과 명확한 주제를 내세운 게 ‘영화의 불안정한 개연성을 덮어버린다는 점에서’ 비겁해 보이기까지 한다. 한글은 당연히 소중하다.(글을 쓰는 내겐 더) 다만, <말모이>라는 영화 안에서 생각해 봐야 할 건 이거다. 과연, 저 대사가 김판수라는 인물을 변화시킬 동기로서 충분했을까.

<말모이>의 조선어학회는 한글을 지키고자 하는 인물들의 모임으로, 사전 작업이 목표인 단체지만, 김판수는 다르다. 그는 사전 편찬 작업에 목숨을 걸 만큼, 한글에 애착을 가질 기회나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그가 한글을 쓰는 건, 가장 아끼는 아들을 위협하는 일이기도 했다. 김판수는 아들의 안전보다 좋은 아버지라는 명분을 얻고 싶던 아버지였을까. 영화엔 김판수가 ‘왜 한글이어야만 하는가’를 고민하는 지점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읽고 감동하는 장면이 있지만, 이는 한글의 소중함이 아닌, 문맹이 글을 읽을 수 있는 데서 오는 기쁨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말모이>는 이 고민의 시간 생략하고, 그 자리를 한글의 숭고함, 민족적 자긍심과 사명 등으로 대체한다. 단, 이 민족적 사명이 판수의 것이었다고 생각하지는 못하겠다.

영화에서 김판수를 움직이는 건 한글에 대한 애정이 아니다. 대신, <말모이>는 감정에 호소한다. 류정환(윤계상)과의 우정, 그리고 순희(김예나)의 “나는 김순희가 더 좋은데”란 대사 등에서 김판수라는 캐릭터는 겉으로 사전 편찬 작업의 당위성을 찾는다. 그 외의 당위성은 김판수라는 인물 밖에 있다. 아예, 영화 밖에 있다고 봐도 좋다. 객석의 관객이 가지는 ‘한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김판수의 행동을 이해하게 한다. 모든 한국 관객이 가질 ‘한글은 우리의 것, 소중한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 그리고 이를 지켜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등으로 <말모이>는 부족한 김판수의 당위성을 확보하려 했다.


사유되지 않은 한글과 사전

결론적으로 <말모이>의 류정환 및 조선어학회가 말하는 한글의 소중함, 사전 편찬의 중요성은 김판수에게 일방향적으로 주입될 뿐 사유 되지 않는다. 영화는 이를 사유될 필요가 없는 당연한 것이라 여긴 듯하다. 한글이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할 관객이 없고, 그렇게 말할 사람도 없기에 내린 결정일 것이다. 다만, 이렇게 캐릭터가 사유하는 과정이 생략되면, 관객이 이야기에 참여하는 데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관객이 김판수의 행동에 이입하기 어렵고, 감동과도 멀어진다. 인물의 변화를 보여야 할 서사의 개연성에 구멍이 생긴다. 영화의 메시지에 동의하나, 이야기를 즐기지는 못할 수도 있다. 이럴 거면 굳이 영화로 보고, 느낄 이유가 없다. 일부 관객이 남긴, ‘계몽적’인 느낌이 강했다는 의견도 김판수와 관객의 거리감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유사한 플롯을 가졌지만, <택시운전사>가 더 많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던 건, 역사적 사건을 체화하는 김만섭(송강호)이라는 인물에 관객이 이입했기에 가능했다. <택시운전사>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당시 시민이 겪었던 아픔에 공감하게 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리고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사유하게 했다. 이런 과정 덕에, 영화가 시작할 때 시위를 싫어하던 김만섭은 그 시대와 시민운동에 관해 사유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고, 스스로 움직이게 된다. 동시에 관객은 그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와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으며, 영화와 함께 그날의 메시지에 공명할 수 있었다.

<말모이>의 김판수는 관객과 함께 뛰지 못했다. 홀로 남겨진 관객이 목격한 건, 다른 일제강점기 영화에서 봐왔던 기시감과 익숙한 신파 코드였다. 또한, <말모이>는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조선어학회의 활동도 깊이 있게 보여주지 못한다. 영화는 사전을 집필하는 과정을 보여줘야 했는데, 그 과정과 노력이 겉핥기에 그쳤다. 그들의 방대한 노력은 지하에 쌓인 자료로 대체되는 게 전부다. 일본에 맞선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생각할 수는 있지만, 글을 지키고자 했던 대업의 고단한 시간을 느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고서 <말모이>는 이 영화의 가장 특별한 순간인 사전 집필의 과정을 안정적인 배경으로 밀어둔 채, 브로맨스와 신파적 요소에 눈을 돌렸다. 이럴 거라면, 굳이 ‘말모이’여야 했을 이유가 있을까.


이 소재를 가져오면서 있었어야 할 시간과 느꼈어야 할 감정이 바랜 채, <말모이>는 상업 영화의 화려한 옷만 입고서 관객 앞에 섰다. 한글과 사전을 만든 이들의 숭고한 정신은 밀어둔 채, 상업 영화의 코드만으로 조선어학회에 관해 말했다는 점에서 반성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준익 감독의 <동주>를 보면서 윤동주라는 시인이 영화에 소비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말모이>의 한글과 조선어학회는 이용당했다는 불온한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한글과 조선어학회의 정신에 너무 많이 기대고, 그것으로 거대한 결함을 채우려 한 게으른 플롯의 영화다.

성의 없던 선의는 비겁한 명분에 그친다. <말모이>는 역사의 소환 앞에서 윤리적인 영화였을까. 좋은 뜻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소리를 듣기 싫었다면, 조금 더 고민이 필요했던 영화다.

키노라이츠 매거진 편집장 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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