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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눈이 멀수록 마음은 가까워 지는 법

한 남자가 매일 심장이 터지듯 달리는 꿈을 꾸다 힘겹게 눈을 뜬다. 식은땀이 흐르고 신음까지 내뱉지만 왠지 깨고 싶지 않아 하는 눈치다. 오늘도 어제와 똑같은 힘겨운 하루를 시작한다. 야코( 페트리 포이콜라이넨)는 다발 경화증을 앓고 있다. 합병증으로 눈이 멀어 보이지 않는다. 가슴 아래 하반신은 마비다.

듣는 약은 없고 고통과 경련은 그대로 느껴 아프다. 모두가 어린애 취급만 하고 동정하는 것도 지겹다. 혼자서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듣지 않는 몸 때문에 굴욕적이다. 선천적인 장애가 아닌 후천적인 장애라 더욱 힘들다. 좋아하던 영화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어 참으로 아쉽다.

하지만 웃음까지 잃고 싶지는 않다. 최근 온라인으로 만난 여자친구 시르파(마리야나 마리얄라)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시답지 않는 농담도 맞장구쳐줄 유일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그녀도 혈액염을 앓고 있어 많이 아프다. 최근 치료 방법을 찾아 들떠 있었는데 아쉽게도 맞지 않아 항암치료를 해야 한단다. 뭐라고 위로를 전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둘 다 매일 죽음과 맞서 싸우고 있지만 그럴수록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결심했다. 1000km라는 물리적 장벽이 있지만 그녀에게 달려가겠노라고, 그리고 비닐도 뜯지 않은 DVD <타이타닉>을 함께 보겠다고 다짐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조인 없이 용기 내어 세상 밖으로 홀로 나가려 한다. 쥐어짜낸 용기를 품고 이카로스처럼 자유롭게 날아오를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날개가 녹아버려 오늘 죽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 겉다.

로즈를 위해 고통을 참는 타이타닉의 잭처럼..

영화는 의뭉스러운 제목과 점자로 디자인된 포스터까지 뭐하나 예측할 수 없었다. 러닝타임 내내 시야각이 좁아진 상태와 클로즈업으로 촬영되었기에 답답한 마음이 든다. 주인공을 제외한 배경과 인물은 초점이 나가 있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이룬다. 상대방이 다가와 말을 걸어도 목소리와 흐릿한 형체만 제공된다. 눈이 멀면 아마도 영화 속 상황 보다 더한 공포감 그 자체일 것이다. 이 정도만으로도 매우 답답한데 하루 종일 암흑 속에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근육은 점점 굳어 결국 움직일 수 없다면 어떨까?

하지만 극심한 고통과 절망이 엄습하는 가운데 야코는 영화로운 삶과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이 있는 영화광이자 쾌남이다. 그는 <타이타닉>의 제임스 카메론 보다 <할로윈>의 존 카펜터 감독을 더 좋아한다. <터미네이터> 같은 기념비적인 영화를 만들어 놓고 <타이타닉> 같은 쓰레기를 만들었다며 손절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타이타닉>의 주인공 이름과 상황을 알고 있는 상황을 봐서 야코는 <타이타닉>을 봤을 것으로 생각된다. 괜히 여자 친구 앞에서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존 카펜터의 <더 씽>에서 커트 러셀과 썰매 견을 구분하지 못하겠다는 말로 영화를 못보는 경위를 유러머스하게 넘긴다. 그래서일까. 그가 위험천만한 길을 핸드폰과 휠체어 없이 떠나는 여정은 <타이타닉>의 잭을 연상케 한다. 왜 여자친구와 <타이타닉>을 보려고 안전한 집을 놔두고 극한 모험을 떠났어야 했는지 절절한 마음이 스크린 너머로 전달되는 순간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들어 낸 이야기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는 실제 감독 테무 니키의 동창 페트리 포이콜라이넨의 실화를 각색한 영화다. 그는 감독과 함께 공부하며 배우로 활동하다 다발 경화증으로 인한 합병증까지 덮쳐 2013년부터 장애인 연금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24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불타오르는 연기 의지를 확인한 감독은 그를 주인공으로한 시나리오를 2주 만에 써 내려갔다. 실제 휠체어에 의존한 채 눈이 보이지 않는 주인공으로 등장해 큰 울림을 준다. 참고로 야코의 연인인 시르파의 질병을 감독의 여동생이 앓고 있어 차용하기도 했다. 단편은 장편이 되고 다큐멘터리 같은 극영화로 발전했다. 이를 알아본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는 관객상을 안겨 주었다.

그가 영화 속에서 계속해서 달리는 꿈을 꾸는 것처럼. 꿈을 잃지 않고 매일 꿈꾸는 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은 작은 희망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가리치고 있다. 누구에게나 갑작스러운 상황은 일어날 수 있기에 한 남자의 순애보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세상이란 장애물을 넘어 목표에 닿으려는 의지, 모든 이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간절한 소원을 다시 한번 떠올려 봤다. 그리고 오늘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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