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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벤느망> 임신중절을 원하는 대학생의 극단적 선택

1960년대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안(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은 촉망받는 대학생이다. 주변의 질투와 시기가 난무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 강심장을 가진 철벽녀였다. 하지만 몇 주째 해야 할 생리를 하지 않자 불안감은 혈관을 타고 온몸을 휘감는다. 며칠 더 기다려보다 의사를 찾아 진찰을 받으니 예상대로 임신이었다.

의사는 한심하다는 투로 안일한 태도로 일관한다. 이제 네 인생은 망했다는 은근한 말투가 수치심을 유발한다. 안은 졸업도 못 했는데 앞으로 펼쳐질 일이 까마득하기만 하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은 아늑한 물거품이 될 것만 같다.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님의 유일한 희망은 나인데 미혼모가 된 딸을 받아주기나 할까 걱정이 앞선다. 혼자만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엔 너무 버거웠다. 일단 임신 사실을 관계 맺은 막스를 비롯해 도움받을 수 있을 친구 몇몇에게 알리기로 했다. 하지만 혼자 알아서 해결하라며 방관하고 외면했다. 사회적 압박과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했다.

어쩔 수 없이 안은 의사를 붙잡고 절박하게 중절을 부탁하지만 불법이라며 단박에 거절당한다. 어쩔 수 없이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만 했다. 내 몸에서 자라고 있는 무형의 것을 어떻게 뱃속에서 사라지게 할지 고민해야만 한다.

그길로 임신중절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지만 정보가 부족했다. 어디에도 방법, 사후 관리 등 정보 자체가 없었다. 그렇다고 주변에 물어볼 수도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그 와중에 안의 몸은 변하기 시작하고 몇몇 방법을 시도했으나 수포가 된다.

당시 프랑스 미혼모의 임신은 세상이 끝나는 것이고, 낙태는 감옥에 가는 일이며, 모두가 헤픈 여자로 생각하는 억압적인 분위기였다. 안은 아이와 인생을 맞바꾸고 싶지 않았다. 대체 어떡해야 할지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절없이 시간을 계속 흐르기만 할 뿐이었다.

왜 여성만이 고통받나?

영화 <레벤느망>은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인 에세이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영화 원제인 레벤느망은 영어로 Happening (사건)이다. 내내 임신을 사건, 이것, 그것이라고 지칭한다.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온전히 소유가 될 것만 같았던 걸까. 굉장히 무겁고 어두운 심정이 가득하다. 억압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한 여성이 자유와 맞바꾸려 했던 값비싼 고통이 기록되어 있다. 마치 내가 겪은 일처럼 낯설지 않게 다가왔고 두려웠으며 우울해진다. 작가는 어디선가 같은 일을 겪을지 모를 여성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집필 계기를 밝히기도 했다.

임신. 간절히 바라는 사람에게는 일생일대 축복이지만 원치 않는 사람에게는 덥석 찾아온 공포다. 원치 않은 임신은 미혼 여성에게 저주나 다름없다. 에세이 속에서는 임신이란 단어는 딱 한 번 나올 만큼 큰 경멸을 담고 있다. 합의하에 했어도 오롯이 여성의 몫이 되어야만 하는 임신, 출산, 낙태에 대한 심리적 과정이 담김 10주간의 체험기다. 불법 시술 중 합병증으로 죽을 수도 있지만 낳을 수 없고, 혹여나 걸린다면 감옥에 가거나, 평생 타락한 여성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스물셋 안은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대한민국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생각할 거리가 많다. 한국은 2021년 1월 1일 0시를 기점으로 낙태죄가 없어졌고 조건부 임신중절수술이 가능한 상태다. 필자는 낙태를 마냥 찬성하는 것은 아니나.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는 여성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삶은 아이를 낳고 낳지 않고가 완전히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낳았다고 해서 키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닐 수도 있으며,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면 이를 개인의 몫으로 돌리지 말고 사회가 끌어안아야 한다.

영화는 때론 체험의 영역으로 안내한다. 겪어보지 않은 일을 대리 경험해 보는 안전하면서도 가성비 좋은 소비다. 하지만 <레벤느망>은 보는 내내 서글프고 무서웠을 안의 심경을 그대로 경험하는 극한의 순간이었다. 영화가 끝나도 계속 뇌리에 떠나지 않았다. 하루종일 안에 대해 생각했다. 문득 왜 여성만이 모든 것을 감내해야만 할까 울분이 차올랐다. 영화도 현실도 내내 답답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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