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 감독의 <완득이>와 <우아한 거짓말>엔 비정한 현실과 그 속에서 아파하는 약자가 있다. 그는 약자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영화로 안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 그렇다고 영화가 변화한 현실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애초에 사회란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없는 곳이기에, 그도 관심이 없는 것만 같다. 대신, 이한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순간에 인물들에게 버텨낼 힘, 그리고 따스함이라는 걸 가진 채 퇴장하게 한다.
<증인>도 이한 감독의 세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영화 세계는 더 깊어졌고, 이야기의 밀도는 더 높아졌다. 자폐아 소녀와의 소통, 그리고 그녀가 세상 앞에서 증언해야 한다는 시놉시스에선 상업 영화로서 예상되는 지점들이 있는데, <증인>은 이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편이다. 여기에 이한 감독은 법정 스릴러라는 장르를 가져와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동시에 관객과도 게임을 하는 듯하다. 영화는 그녀의 증언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를 관객에게 질문하며, 영화에 눈을 못 떼게 한다.
자폐아 소녀의 마음을 열어야 하고, 동시에 사건의 진실도 알아야 하는 순호(정우성)를 따라가면 드라마와 스릴러라는 장르를 모두 만날 수 있다. 미궁인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 덕에 긴장감이 높다. 단, 여기서 이한 감독의 가장 뛰어난 연출은 어떤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정을 끌어내려 기교와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스릴러적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관객을 놀라게 하지도 않는다. <증인>은 MSG를 뺀 다소 건조한 영화다. 대신, 순호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게 하는 힘이 인상적이다.
영화는 순호가 사건에 빠져들면서, 그리고 지우(김향기)와 가까워지면서 변화하는 감정을 섬세하게 담는다. 자폐 소녀를 묘사하고, 그녀와 소통을 하는 과정을 카메라는 천천히 응시한다. 이 느린 과정을 놓치지 않고, 순호와 지우의 표정을 잘 담아냈기에 인물들의 변화와 선택에 설득당할 수 있다. 그렇게 <증인>은 인물이 진심에 다가가고, 성장하는 순간을 잘 포착해낸다.
‘신과함께’ 시리즈로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더 확고히 알린 김향기는, <증인>의 자폐 소녀 연기로 연기의 폭을 더 확장했다. 많은 찬사가 쏟아질 것이다. 그리고 정우성도 최근 필모그래피 중 가장 인상적인 모습으로 관객 앞에 선다. 건조한 영화가 점점 촉촉해지듯, 순호는 지우를 만나며 감정의 폭이 넓어진다. 여기서 보이는 정우성의 감정을 누른 연기는 감정을 폭발시키던 과거 정우성의 캐릭터들보다 이입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범죄, 코미디, 신파 등의 자극을 추구하는 영화계에 <증인>은 독특한 위치에 서 있다. 이한 감독의 연출을 ‘정직함’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 우직한 믿음이 얼마나 많은 관객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이 순수함과 담백함에 응답할 관객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