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OTT가 지닌 힘을 보여주고 있다. 해당 국가의 시장에서 접하기 힘든 작품을 자사 플랫폼을 통해 공개하며 하나의 문화 콘텐츠가 지닌 파급력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은 넷플릭스와 ‘Win-Win’ 관계를 맺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다. 넷플릭스의 자본력과 창작자의 자유를 인정해주며 기존 국내 시장에서 볼 수 없었던 콘텐츠의 생산에 일조하고 있다.
수위가 높은 좀비 호러를 보여준 <킹덤>, 고등학생이 미성년자 성매매 포주라는 파격적인 설정의 <인간수업>, 웹툰 원작의 크리처물 액션 스릴러 <스위트홈> 등 넷플릭스의 자금력과 창작자의 자유 보장은 국내에서 시도하기 힘들었던 장르물을 선보인 건 물론 세계적으로 K-콘텐츠 열풍을 가져오는데 일조했다. 그 최고의 결실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 지난 달 공개되어 전 세계에서 1위를 기록한 <오징어 게임>이다.
추억의 게임을 바탕으로 한 이 서바이벌 데스 매치 드라마는 넷플릭스 점수 신기록을 세우며 말 그대로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오징어 게임>은 황동혁 감독이 2008년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다. 13년 만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국내에서 투자받기 힘든 작품이란 점에 있다. 투자는 시나리오를 세상에 내놨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투자자들을 설득할 만한 매력을 지녀야 한다.
투자자들의 경우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는 만큼 손해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때문에 흥행이 확실한 소재, 스타배우의 출연, 히트 시리즈의 후속편 등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작품을 선호한다. 할리우드에서 히트 시리즈의 후속편이나 리메이크, 스핀오프 등이 계속 제작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시장 역시나 새로운 소재, 흥행이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에는 투자를 꺼려하는 분위기다.
다양한 소재를 선보이는 일본 역시 다양성영화의 시장은 넓지만 상업영화의 경우 흥행이 보장된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 여기에 시리즈물 역시 성행한다. 그러다 보니 이름값이 높은 감독이라 하더라도 확실하게 투자를 받기가 쉽지 않다. 황동혁 감독의 경우도 데뷔작 <마이 파더>부터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 등 꾸준히 흥행력과 작품성을 고루 인정받은 감독이나 자신의 아이디어가 세상에 나올 때까지 13년이 걸렸다.
넷플릭스는 창작자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시도를 선보였다. <킹덤> 김은희 작가는 ‘넷플릭스는 돈만 주고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제작자가 작품에 간섭하는 환경이 아님을 말한 바 있다. 이런 창작자의 온전한 자유는 복불복에 가깝다. 초기 넷플릭스가 선보인 오리지널 영화의 경우 제작비를 빼돌린 게 아닌가 의심이 들 만큼 낮은 퀄리티로 제작에 있어 어느 정도의 간섭은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았다.
허나 이 기조를 잃지 않으며 세계적인 거장들을 플랫폼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거장들 역시 창작에 있어 제한을 받는 제작환경에 있었고 넷플릭스는 그 갈증을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아이리시맨>과 데이빗 핀처 감독의 <맹크>를 들 수 있다. 두 작품 다 현대의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에서 제작되기 힘든 영화였지만 넷플릭스를 만나면서 꿈을 이뤘고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오르는 쾌거를 맛보았다.
<아이리시맨>의 경우 3시간이 넘는 갱스터 무비로 과거 <대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등이 떠오르는 영화다. 현대 할리우드에서 3시간이 넘는 대작은 MCU로 대표되는 히어로물로 넘어갔다. <글래디에이터>, <늑대와 춤을> 같은 거대한 규모를 지닌 대작이 등장하지 않는 할리우드에서 <아이리시맨>은 모험이다. <좋은 친구들>, <택시 드라이버>, <카지노> 등 같은 장르의 대작을 만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라 할지라도 제작 시스템에서 예외가 아니다
데이빗 핀처 감독 역시 그의 아버지가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맹크>를 제작하고 싶었지만 오랜 시간 반대에 부딪쳤다. 90년대부터 작업에 착수했지만 흑백영화를 선보이는 걸 꺼려하는 제작환경에 의해 성사하지 못했다. 두 작품 다 넷플릭스 플랫폼이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할 작품이었을지 모른다. 넷플릭스는 모험을 택했고 여전히 완벽한 성공이라 할 순 없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다.
국내 드라마 제작환경 역시 tvN과 종편의 등장으로 변화를 겪었다. 기존 지상파가 꺼려했던 높은 제작비에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소재의 작품들이 tvN과 종편을 향했고 성공을 거두었다. <싸인>, <유령>을 선보였던 김은희 작가는 로맨스가 없는 타임슬립 추리물을 tvN에서 선보여 성공했고, 로맨스 장르에 특화된 작가로 여겨졌던 김은숙 역시 tvN에서 시대극 <미스터 선샤인>을 통해 본인의 대표작을 완성했다.
주인공 사이의 로맨스, 한류스타 기용, 적절한 PPL 삽입 등 작가의 역량보다는 드라마 제작환경에 맞춘 작품을 원했던 지상파는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고 최근 다양한 장르의 시도와 한류스타보다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들을 주연으로 기용하는 등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의 등장은 창작자가 선보이고자 하는 콘텐츠의 자유 보장이 알아서 시청자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되어줌을 보여줬다.
아이돌이 열심히 활동을 하면 알아서 홍보를 해주는 팬이 모이는 거처럼 플랫폼이 지닌 확장성과 별개로 좋은 콘텐츠는 시선을 사로잡고 그 플랫폼의 확장성을 만들어준다. 가입자들만 볼 수 있다는 갈라파고스화 되기 쉬운 OTT의 한계를 넷플릭스는 뛰어넘었고 오히려 자기들의 기준으로 창작자를 제작환경에 맞추고자 했던 기존 제작시스템이 갈라파고스화가 되었음을 보여줬다.
국내 OTT 시장 역시 콘텐츠를 모으는 단계를 넘어 콘텐츠 제작 활성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왓챠는 자체 영화제작을 시도 중이며, 웨이브 역시 지상파와 연계해 선보이던 오리지널 콘텐츠에 이어 플랫폼 자체 오리지널 드라마와 영화 제작에 나섰다. 티빙 역시 마찬가지다. 이 단계에서 좋은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서는 뛰어난 창작자가 필요한 만큼 조급한 시도보다는 자유를 보장하며 장기적인 투자를 시도해 글로벌 플랫폼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