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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서로를 향한 팬심 보여 준 봉준호 X 하마구치 류스케 특별 대담



한국과 일본의 거장이 부산에서 만났다. 지난 7일 오후 5시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펼쳐진 두 사람의 ‘스페셜 대담’은 서로의 팬심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봉준호 감독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이번 대담은 부산국제영화제의 핫이슈였다.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살인의 추억>을 직접 GV 했던 하마구치 류스케는 봉준호 감독의 애정에 “질문을 받는 것만으로도 날아오르는 듯한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직접 모더레이터가 된 봉준호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를 보고 난 후 봉준호 감독이 평소 궁금했던 개인적인 생각과 전작들과의 연결성을 아우르는 자리였다. 소위 ‘탈탈 털렸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봉준호 감독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를 철저히 분석했다.

제한된 상황으로 극장을 꽉 채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200여 명이 치열한 경쟁 끝에 자리를 채웠으며 두 사람은 10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봉준호 감독은 끊임없이 본인만 질문하는 상황이 못내 아쉬웠는지, 행사 끝에 깜짝 이벤트를 마련해 관객의 갈증을 해소했다. 제한된 시간 때문에 애초 관객 질문은 없을 것이라는 공지가 있던 차였다. 200여 명의 관객 중 단 2명의 질문을 받아 역시 봉준호 감독이란 찬사가 이어졌고,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거장의 모습을 선보였다.

봉준호, 동료이자 팬으로서 영업 비밀을 캐다

봉준호 감독은 직업적인 동료이자 창작의 비밀을 개인적으로 캐내겠다는 장난기 섞인 오프닝으로 시선을 모았다. 두 영화에서 자동차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촬영 비하인드스토리를 물었다. <기생충>은 정지된 차 안에서 송강호와 이선균이 연기하고 배경은 CG로 처리했다며 운을 뗐다. 이에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주행하는 차에서 찍었다. 달리는 차가 아니면 원하는 장면을 찍을 수 없다. 나는 트렁크에 탔다”고 답해 웃음을 유발했다.

이어 봉준호 감독은 시선처리 즉, 앵글에 대해 말했다. 자동차 장면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않는 상황이라 묘한 기분이 든다며, 본인 아버지 일화를 곁들였다. “아버지는 눈을 보며 직접 대화하길 어려워하던 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차만 타면 말이 많아지셨다”라며, 자동차 안에서 나누는 긴 대화 장면도 궁금해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 항상 대화 장면부터 시작한다. 카페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움직임이 덜한 장면을 생각하다 차 안에서 대화하는 장면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사실은 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작했다. 평소 조수석에 앉아 대화를 이어가는 게 운전자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생각 외로 진심이 튀어나올 때가 많다. 마법 같은 순간은 주로 자동차 대화에서 진행된다”라고 답했다.

결국 단점이 장점이 된 사례 중 하나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유독 대화 장면이 많아 프랑스의 에릭 로메르, 한국의 홍상수 감독 영화와 자주 비견된다. 두 사람은 좋아하는 거장도 닮아 이에 대한 대화도 이어갔다.

1인치의 장벽이 무너지는 시간

봉준호 감독은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을 언급하며 자신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팬클럽 회장을 놓고 열띤 경쟁을 했을 거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 <큐어>를 잊을 수 없다며 <살인의 추억>을 만들 당시 경찰, 주민 등 수많은 사람과 인터뷰했지만. 정작 살인범과 만날 수 없어 답답했었는데 <큐어>의 살인범을 참조해 구축할 수 있었다며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을 칭송했다.

이 자리에 내가 아닌 홍상수 감독이 앉아 있다면 구로사와 기요시가 아닌 에릭 로메르를 인용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연과 상상>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시그니처인 당겨 찍는 촬영 방식이 담겨 홍상수, 에릭 로메르, 하마구치 류스케의 묘한 관계가 형성됨을 알렸다.

이어 봉준호 감독은 홍상수 감독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던졌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너무 좋아한다.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처음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봤는데 현대 거장이라고 느꼈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스승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을 향한 존경도 덧붙였다. “2년의 대학원 생활 당시 그분을 통해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라며 감사를 표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최근작 <스파이의 아내>의 시나리오를 맡기도 했다.

그러면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나로서)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감독이라면, 에릭 로메르는 흉내 내고 싶은 감독이라고 할까”라는 말로 일축했다. “대사가 많은 영화를 쓰고 찍는데 늘 콤플렉스였지만, 에릭 로메르 감독의 작품을 보니 재미있게 대사를 쓸 수 있구나”라고 용기를 얻었다고 털어놨다. 대사가 많으면 관객이 캐릭터를 더욱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 자주 활용하는 연출법이라 전하며, 카메라와 배우의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앵글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가 오고 갔다.

봉준호 감독은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 중 전문 배우와 아닌 배우가 섞여 나오는 영화를 언급하며 배우 발굴에 관심을 보였다. 자신은 배우의 독립영화를 보고 캐스팅하는데 <기생충>의 박명훈이 그런 사례라고 말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오디션은 하지 않고 배우와 만나 한 시간 동안 수다만 떤다. 대화를 오래 하다 보면 진심이 느껴지고 그런 배우와 작업한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진짜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때가 온다.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보다 진심이 중요하다. 연기자와 비연기자가 섞여 있으며 다소 불안하지만 협력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기본적으로 세밀한 디렉팅을 하지 않고 <드라이브 마이 카>처럼 대본 리딩을 많이 한다. 배우 스스로 대사에 익숙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다 보면 (배우) 스스로 알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라며 캐스팅 비화를 밝혔다. 하지만 애로사항도 많다며 작업 방식을 공개했다. “배우에게 닦달하지 않고 그 순간이 찾아올 때까지 여러 회차를 찍는다. 인내심으로 버티며 연기의 순간이 오길 기다린다. 그래서 내 영화는 시간 확보가 생명이다.”라고 작업 방식을 전했다.

현장은 봉준호 감독이 말한 ‘언어의 1인치 장벽’이 무너지는 열띤 자리였다. 순수하게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 직업적인 동료인 감독으로서 서로의 영화를 통째로 외우거나 낱낱이 뜯어 분석했다. 동시통역이 있었지만 한일 두 거장의 만남은 정치, 외교, 팬데믹을 뛰어넘는 서로를 향한 애정과 존경을 표현하는 이색적인 자리였다.

한편,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6일 개막해 오는 15일까지 이어진다. 이례적으로 영화제에 두 편의 영화를 선보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이을 차세대 감독으로 꼽힌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드라이브 마이 카>,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우연과 상상>으로 관객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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