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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버스턴] 낙원에서 본 암울한 ‘미국’의 환영

<갤버스턴>은 지옥에 있는 자들에게 천국이란 신기루를 맛보게 하는 영화다. 이 신기루는 달콤한 희망이면서, 잔인한 희망 고문이기도 하다. 지옥 속에 헤매던 남녀가 낙원 ‘갤버스턴’에서 찾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갤버스턴>이라는 영화가 미국의 지명을 제목으로 사용했다는 건, 결국 미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 혹은 지금의 사회 문화 현상까지 함께 이해해야 더 많은 걸 볼 수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사전에 의하면 ‘갤버스턴’은 미국 텍사스주 연안의 갤버스턴섬 북동쪽 끝에 있는 도시라고 한다.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가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을 사이에 두고, 그 정치 문화적 관계를 고려했을 때 더 섬뜩한 영화로 다가왔듯, <갤버스턴>도 이런 위치적 특성을 고려하며 봐야 할 영화는 아닐까.

영화 속 카메라는 미국의 그림자를 스쳐 지나가듯 무심히 담아낸다. 마약, 매춘, 빈민촌, 노동 문제와 가정 폭력이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또한, 영화 속 시간과는 무관하게 삭막한 집들을 담은 장면에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갤버스턴>은 미국이란 나라의 환영이 군데군데 새겨진 영화다. 영화는 누가 주인공들을 지옥에 빠뜨렸으며, 그들은 누구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를 묻는다. 당당히 미국의 실제 지명 안에서 말이다.

이런 복잡한 것들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갤버스턴>은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영화다. 두 배우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로이, 그리고 메마른 텍사스 땅에서 온 록키(엘르 패닝)가 세상의 끝 갤버스턴의 바다에서 공유하는 시간은 바다처럼 푸르고, 한편으로는 짜다. 그 속에서 그들은 ‘미래’라는 걸 상상해본다. 로이는 자신이 없을 세상에 남겨질 록키를, 그리고 록키는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를 그려본다.

벤 포스터와 엘르 패닝의 건조하고 삭막한 표정에서 느껴지는 암담한 현재, 그리고 추측되는 미래의 무게 앞에서 관객은 희망을 찾고자 할 것이다. 그 희망의 순간이 ‘갤버스턴’에 잠깐 보이고, 그 짧은 순간만으로도 보는 이들이 따뜻해질 수 있는 영화다. 삶에 지친 두 인간의 표정이 변화하는 걸 보면서 뭉클해지는 영화. 그리고 엘르 패닝이 앞으로 보여줄 것들이 많다는 걸 알려주는 영화다.

 

키노라이츠 매거진 편집장 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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