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로 아이들의 세계를 탐구했던 윤가은 감독이 새로운 영화로 돌아왔다. ‘우리’라는 제목이 반복되는 <우리집>도 아이들의 시선을 섬세하게 담아낸 연출이 돋보인다. 영화는 한여름의 푸른 이미지, 그리고 그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영화의 온도가 훨씬 따뜻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속 배경만큼이나 뜨거웠던 8월의 어느 날, 키노라이츠에서 윤가은 감독을 만났다.
영화 <우리집>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벼운 질문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두 번째 장편 영화로 언론 및 대중과 인사를 하고 있으신데요. 신인 감독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이렇게 인터뷰한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요? 이전보다 여유가 생기셨나요?
무게감이 좀 더 생겼어요. 영화가 개봉하고, 보신 분들이 있어야 인터뷰도 할 수 있잖아요. 영화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밖으로 처음 꺼내놓는 자리가 인터뷰인데,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저도 새로운 걸 알아가요. 생각도 정리할 수 있어서 이런 순간들이 저한텐 정말 소중하죠. <우리들> 때는 정신없이 지나갔는데. 이제는 허투루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하고 있어요.
비슷한 질문인데요. 두 번째 촬영 현장은 얼마나 달랐나요? 배우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과정이나 스텝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우리집> 현장은 배우와 이야기가 이전과 완전히 달랐어요. 물론, 저를 포함해서 <우리들>을 같이 했던 스텝들이 거의 다 있었죠. 합을 한 번 맞춰본 상태라 잘 맞는 건 있었어요. 하지만 메인 배우들이 완전히 바뀌어서 프로덕션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죠. 이 프로덕션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때는 백지상태에서 어떻게 방향과 분위기를 잡아갈지 고민해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본격적으로 영화에 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우리집>은 유형과 무형의 집을 대비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집이라는 공간과 가족이라는 관계가 무너지는 걸, 같은 무게로 묘사하고 있었죠. 개인적으로는 이사보다 이혼이 훨씬 큰 문제로 보이는데, 이건 역시 때 묻은 어른의 생각인 걸까요?
제 안에서 ‘무엇이 더 무거운 문제인가’라는 생각은 없었어요. 이사라는 경험도 물리적인 변화지만 정서적으로 큰 충격을 주는 경험이라 생각했죠. 실제로 저도 그런 경험을 했어요. 그리고 이혼이라는 것도 가족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건강하게 받아들여질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죠. 그리고 나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을 비교할 수 있는 근거가 많이 없잖아요. 그래서 아픔을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모두 동등한 무게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사 경험을 말씀하셨는데, 영화에 나오는 상황이 감독님 경험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이사를 자주 다니지는 않았는데, 완전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간 적이 있어요. 여태 살아온 삶의 터전이 갑자기, 완전히 바뀌는 충격적인 경험이었죠. 모르는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들하고 학교에 다니면서 적응하는 게 큰 스트레스였고, 공포로 다가왔던 기간이 있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그런 상황일 때, 어른들이 그걸 챙기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어른들도 새로운 곳에 가면 그 상황에 적응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이 소외되기도 하죠.
<우리집>뿐만 아니라 <우리들>에 나오는 지아(설혜인)도 이사 경험이 있었잖아요.
그러네요. <우리들>에도 이사가 나왔었네요. 이사는 아이들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변화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혼자서 어디로 갈 수도 없죠. 그렇게 주변 환경이 완전히 달라질 때, 아이들에게도 큰 변화가 일어나잖아요. 그래서 이사와 전학이라는 설정을 영화에 넣었던 것 같아요.
하나(김나연)는 함께 밥을 먹는 것에 집착합니다. 하나에게 가족이란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을 뜻하는 ‘식구’와 동의어처럼 보였어요. 그리고 유미(김시아)와 유진(주예림) 자매와 함께 먹으면서 유사 가족이 되어가죠. 그렇다면, 감독님에게 가족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어떤 게 이상적인 가족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마음 깊이, 구석구석에 있는 것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가족이 아닐까요. 단순히 혈연관계나, 일정 시간을 같이 보낸다고 해서 가족이 되는 게 아닌 거 같아요.
좋은 가족은 뭔지 모르겠어요.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요. 가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소통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소통의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 가족이 아닐까’라고 영화를 만들면서 생각했죠.
그렇다면 감독님 영화에 나오는 가족은 불완전하고 좋지 않은 가족일까요?
좋지 않은 가족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뭐가 좋고 뭐가 나쁘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죠. 가족의 형태라는 게 계속 변하는 것 같아요. 어떤 것을 갖춰야 가족이 되는 게 아니고요. 이런 모양이었다가 여러 갈등과 고통을 겪으면서 또 다른 모양의 가족이 될 수 있는데, <우리집>의 가족은 그 과정 안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유미는 ‘상자’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죠. 유미에게 ‘상자’를 모은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아이들도 개성이 있고 취향이라는 게 있잖아요. 아이들의 개인적인 취향이 한 인간의 개성으로서 드러나면 좋겠다는 생각에 영화에 적극적으로 반영했어요. 동시에 재능처럼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죠. 유미는 이사를 많이 다니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집에 살죠. 이건 저의 경험이기도 한데, 수납공간이 없을 때, 상자에 뭘 넣어서 보관하는 버릇이 생겨요.
부모님이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장난감 같은 걸 사줄 수 없을 때, 아이들은 집에 있는 걸 갖고 놀면서 창의력이 생기잖아요. 그런 여러 가지 것들이 합쳐져서 유미가 상자를 만들고 꾸미는 취미가 생겼을 것 같아요. 그 상자 안에 뭔가를 담고 꾸미고 만들면서 놀고 싶은 마음이 상자를 모으는 것으로 표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아이들이 애써 만든 집을 부수는 장면이 있어요. 이 집은 아이들이 함께 만들고, 공유한 첫 번째 집이었는데요.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어떤 의미를 담으려고 한 건 아니에요. 저는 그런 생각을 잘못해요. 왜 그렇게 했을까요. 아이들이 좀 친해지고, 집을 지키기 위해서 같이 작전을 수행하잖아요.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모여서 집안에서 재미있는 걸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상자를 쌓을 생각을 못 했어요. 종이집을 만들 생각이었죠. 그 안에 유미는 자기가 원하는 방을 꾸밀 수 있고, 하나는 가족과 같이 식사를 하는 종이 인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돌을 쌓아서 소원을 빌 듯, 자신들의 바람을 담아 집을 만드는 거죠. 무의식적으로 그런 행위를 하는 거예요. ‘소원을 이뤄주세요’ 이런 마음으로 같이 뭔가 하는 행위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상자를 쌓는 행동으로 발전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정성스레 만든 집을 부수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어요. 이 집의 파괴엔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걸 아이들이 직접 발견하길 바랐어요.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아이들이 집안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문제를 다 해결해야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게 아닌 거 같아요. 오히려, 내가 이렇게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받아들일 때, 또 한차례 도약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노력해서 쌓아 올린 걸 내 손으로 부정하고, 거절하고, 무너뜨릴 수 있어야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모든 배우의 연기가 좋았던 영화입니다. 그중에서도 ‘주예림’ 배우의 연기가 가장 놀라웠는데요. 카메라가 없을 때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서 놀라웠어요. 스크린과 현실의 경계를 지워버린 놀라운 연기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떤 마법을 부리신 거죠?
제가 한 게 없어요. 주예림 배우는 현장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높아요. 본인이 어떤 걸 해야 하고, 어떤 씬을 만들 때 지켜야 하는 약속이 있다는 걸 알고 있죠. 그러면서도 주예림 배우는 그 상황에 존재하면서 뿜어내는 에너지가 있거든요. 그건 연기는 아닌 것 같아요. 즉흥 상황에 온전히 몰입할 때 나오는 존재함이라 해야 할까. 그래서 그 에너지를 최대한 흐트러뜨리지 말고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예림 배우의 연기가 마음에 드신 장면은 아마도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장면일 거예요. 아무런 디렉션을 주지 않은 장면을 가장 좋아하셨을 것 같아요.
놀라운 재능을 가진 배우였네요.
정말 그 순간에 몰입하는 친구였어요. “여기서 언니들이랑 밥 먹자” 그러면 카메라가 앞에서 찍고, 저는 뒤에 있고, 스텝들은 조명을 치고 있지만, 그 친구는 다른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여기서 밥을 먹어요. ‘밥을 먹자고 했으니까 밥을 먹어야지.’ 이렇게 정말 몰입하는 친구였죠. 물론, 다른 친구들도 그랬지만요.
종종 어떤 감독님들은 카메라가 돌아간다는 걸 인지시키지 않고 자연스러운 장면을 끌어낸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주예림 배우의 연기는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걸 정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나온 거였군요.
네, 저희 현장은 항상 카메라가 도는 걸 모두가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카메라가 돌고 있다는 것을 모르게 촬영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이 그런 방법으로 찍었다는 걸 책(『영화를 찍으면서 생각한 것』)에서 본 적이 있어요. 아이들이 대화하게 놔두고, 그걸 뒤에서 담았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도 모른다>엔 그렇게 찍었을 것 같다고 생각되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씬을 정확히 만들고, 원하는 방향을 향해서 가야 할 때는 분명히 프로덕션이 같이 움직여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저는 그것에 대해 배우들이 분명한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작은 아이들의 시선으로 어른의 세계와 유사하게 돌아가는 집단 문화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리얼한 모습이 놀라웠고 바라보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와 달리 이번 영화는 아이들의 시점에서 희망적인 분위기로 진행되는 따뜻한 느낌이 좋았어요. 고민하는 아이들의 세계를 연이어 보여줬지만, 그 느낌이 달라진 데 어떤 이유나 계기가 있을까요?
<우리들>을 하고 나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고민과 고통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계속 싸우고, 상처를 주고받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붙잡고 있으니 정서적으로 힘든 면이 있었죠. 그때 ‘다음에 영화를 찍게 되면 아이들이 저렇게 싸우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상처를 주는 게 아니라 서로 힘이 되고, 위로하면서 같이 어떤 일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죠.
그 전에 단편부터 쭉 생각해보면, 저한테 그런 태도가 생긴 것 같아요. 이렇게 좀 아픈 이야기에 한 번 쑥 들어갔다 나오면, 그다음에는 밝고 위로 솟구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렇게 하고 나면 또 깊이 들어가고 싶고. 이렇게 제 안엔 반대의 동력이 있는 것 같아요.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했어요. 그런데 가족 이야기에 깊게 들어가 보니 친구 관계에 관한 이야기보다 더 무겁더라고요. 어른이 된 저도 제 가족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데, 아이들은 더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무게감을 많이 느꼈죠. 그런데 그 무게감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게 맞는지 고민했어요. 그래서 영화적인 어떤 선택을 했고, 현실을 보여주면서 그 위에 현실을 새로 쓰는 시도를 하고 싶었죠. 이런 생각에 이런저런 걸 시도하다 보니 예전과는 좀 다른 톤이 생겨난 것 같아요.
톤 앤 매너는 변했지만, 아이들에게 완전한 행복을 준 것 같지는 않았어요. 언제쯤 아이들의 웃는 얼굴로 끝나는 영화를 볼 수 있을까요?
그러네요. 다음에는 그걸 목표로 해야 할까 봐요. 그래도 저는 하나가 행복해질 거라고 확신하면서 엔딩을 썼어요.
맞아요. 앞에서 말씀하셨듯 하나가 무언가를 깨닫고 성장했다는 걸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후에 더 건강한 삶을 살 것 같았어요.
네, 엔딩 그 이후에 조만간 하나가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말 아이들이 웃으면서 끝나는 영화가 없네요. 다음엔 웃는 얼굴로 끝나는 영화를 만들고 싶네요. 왜 이렇게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걸까요. (웃음)
이번 영화에서 지난 영화에 등장했던 친구들이 등장해 잘 살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줬듯이, 하나라는 친구도 언젠가 감독님 영화에서 ‘이렇게 잘 컸다’라는 걸 볼 수 있을까요?
그런 연작을 내야지 생각했던 건 아닌데, 그런 기회가 오면 좋을 것 같아요. 다음 영화에서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도, 그 안에 하나와 유미가 살짝 보이면서 ‘이 친구들 이런 일을 겪고, 또 이렇게 잘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다 괜찮을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언젠가 나오게 된다면, 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윤가은 감독님과의 인터뷰는 2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