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전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이 부산물로 거리가 멀어진 두 남자는 후쿠오카에서 만난다. 과거의 시간에 묶인 채 나아가지 못한 이들을 잇는 건 스물한 살의 소녀 ‘소담’. 그녀는 꿈과 현실 어딘가에서 기억을 건져 올리며 두 사람을 자극한다. 그리고 한국, 일본, 중국의 경계를 자유로이 오가며 후쿠오카라는 공간을 그녀만의 무대로 만들어 간다. 그렇게 장률 감독은 <후쿠오카>에서 그의 영화를 반복하고 확장해냈다.
‘꿈속의 도시를 떠도는 듯한 영화’ 최근 만났던 장률 감독 영화에 관한 인상이다. 실존하는 도시가 중요한 공간이자, 그곳의 정서가 영화의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던 <경주>,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 이어 <후쿠오카>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이들은 장률 감독의 도시 3부작으로 묶이며, <후쿠오카>는 이 여정의 마지막이라고 한다.
천년 신라의 흔적과 무덤들이 일상과 공존하는 경주, 일본 소유의 주택이 군집한 군산에 이어 후쿠오카에서 카메라는 시인 윤동주의 흔적을 담는다. 후쿠오카의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시인의 아픈 역사를 가진 도시에서 장률 감독은 윤동주 시인의 ‘사랑의 전당’과 ‘자화상’ 두 작품을 영화에 직접 인용한다. 옛 시인의 시와 함께 이 도시를 유령처럼 걷는 박소담과 과거의 기억을 부유하는 권해효와 윤제문은 영화에 다양한 레이어를 더한다.
<후쿠오카>는 이국적인 공간이 만드는 미장센에는 기묘한 분위기가 있고, 비현실적인 상황이 겹쳐지면서 영화는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분명 현실에 존재하는 도시 위에 카메라가 서 있지만, <후쿠오카>는 꿈과 기억 그리고 장률 감독의 이전 영화들까지 오가며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공간을 비춘다. 영화의 이야기는 모호해지는 면이 있지만, 덕분에 영화적 가능성과 필름의 힘은 조금 더 확장된다.
장률 감독의 영화는 과거의 흔적이 일상에 침범하는 공간이 중심에 있었고, ‘잠’을 중심으로 꿈과 현실을 대등한 무대로 활용해 왔다. 여기에 동력을 제공하는 에로티시즘이 함께했었다. 이는 도시 연작 외의 최근작 <춘몽>에서도 볼 수 있던 숨결이며, 이들을 반복하며 영화적인 실험을 이어나가는 듯하다. 기억이란 모호한 요소에 비과학적인 상황이 더해진 <후쿠오카>는 그의 최근 영화 중 가장 불투명해 보이는 영화다. 하지만 어렵다는 불쾌함은 전혀 없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후쿠오카 곳곳을 거닐자. 아련함이라는 정서에 흠뻑 취할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