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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 ‘스토리텔러’보다는 ‘테크니션’ 같은 크리스토퍼 놀란

2020년 최고의 기대작 <테넷>이 개봉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명성과 함께 그 기대감이 무척 높았던 영화다. ‘영화의 새로운 영역에 도달했다’는 평가와 함께,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라는 상반된 반응들이 공존하며 흥미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키노라이츠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간단히 정리한다면, <테넷>은 크리스토퍼 놀란이란 감독의 위대함과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준 영화다.

이와 함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작품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궁금증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기술 분야를 제외하면 아카데미가 추구하는 영화와는 조금 떨어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번 글에서는 <테넷>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세계에 관한 짧은 잡담을 해보려 한다. (<테넷>에 관한 해석과 비평적 시도가 없는 글입니다.)

<테넷>은 어떤 영화인가

<테넷>은 세상을 파괴하려는 악당에 맞서 싸우는 첩보물이다.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 이 첩보 작전에 현재와 미래, 과거를 오가는 시간 여행이 더해지면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시간의 레이어가 많다는 게 <테넷>의 특징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한 공간 안에 다양한 시간대를 섞어 두면서 복잡한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뒤집는다는 ‘인버전’이라는 개념을 통해 반대로 움직이는 기이한 영상 이미지를 연출해내며 관객에게 놀라운 순간까지 선물했다. 

엔트로피, 양자역학 등 인버전과 시간 여행을 과학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많은 설명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를 첫 번째 관람에서 완벽히 이해하는 건 꽤 힘든 일이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그냥 느껴라’라고 넘어가 버린다. 하지만 그냥 느끼기엔 하나의 공간에서 너무도 많은 사건이 일어난다. 분명 크리스토퍼 놀란이 엄청난 걸 연출해냈다는 인상은 받았지만, 핵심에 쉽게 도달할 수 없는 이 영화가 ‘좋은 이야기였는가’라는 의문은 남기고 있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평소 007 시리즈에 대한 애정을 말해왔다. 그가 영화관에서 처음 본 영화가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였고, <인셉션>의 스키 추격전은 <여왕 폐하 대작전>을 오마주 한  것이었다. <테넷>이 선택한 첩보 장르로 보건대, 크리스토퍼 놀란은 평소 흥미 있어 하던 007을 다른 방식으로 조립해낸 듯 하다. 심플한 스토리를 복잡한 플롯으로 보여줬다고도 할 수 있는데, 단번에 이해할 수 없는 타임라인의 조합으로 기이한 영상을 완성했다. 덕분에 인물의 감정선과 이야기의 메시지가 독특한 이미지보다 잘 보이지 않는 한계도 따라왔다.

<테넷>과 함께 언급되는 영화를 살펴보면 크리스토퍼 놀란 본인의 <메멘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이터> 시리즈, 고마츠 나나 주연의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로버트 저메스키의 <빽 투 더 퓨처> 시리즈 등이 있다. 단순히 이야기로만 봤을 때, <테넷>은 언급된 영화들과 비교해서 엄청나게 특별한 매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앞의 영화들이 과학적 디테일을 생략하면서 관객에게 좀 더 친절하면서도 즐길 수 있는 영화였다는 인상을 준다.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놀란은 스토리텔링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아카데미가 사랑한 영화들

아직 아카데미 감독상이 없어 이상한 감독을 꼽으라면, 크리스토퍼 놀란은 반드시 언급될 감독이다. 그래서 개봉 전부터 <테넷>으로 감독상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팬들이 많았다. 단 한 번 관람한 입장에서 에측한다면 촬영과 편집 등의 기술 분야에서는 이번에도 좋은 소식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작품상과 감독상 부문은 미국 아카데미가 좋아했던 영화와 조금 거리가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테크놀로지 분야보다 이야기에 방점이 찍혀 있는 영화를 사랑해 왔다. 관객에게 뭔가를 느끼게 하고, 현사회상을 반영한 작품을 좋아했다. 촬영, 편집, 음악 등에 방점이 찍힌 영화는 그 부분에 상을 주는 것으로 그쳤다. 최근 작품들을 보면, 크리스토퍼 감독의 전작 <덩케르크>는 ‘편집’이 인상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편집상을 받았다. 그리고 작년 <기생충>과 경합했던 <1917>은 압도적인 ‘촬영’을 보였다는 평가와 함께 촬영상으로 만족해야 했다. 

<테넷> 역시 촬영 및 편집이 스토리텔링보다 인상적이었다는 평가가 있고, 이 때문에 기존의 아카데미 경향대로라면 감독상과 작품상은 어려울 수 있다. 만약, 이 부문에서 수상한다면 아카데미의 경향성이 변하는 이정표로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스토리텔러보다는 테크니션

<테넷>으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관해 조금 더 생각할 수 있었던 건 그의 관심사였다. 이 영화에서 본 크리스토퍼 놀란은 고전적인 스토리텔링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했고, 새로운 타임라인으로 영화를 조립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그는 ‘어떻게 하면 여태 없던 창조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조르쥬 멜리에스의 초기 영화 및 에드윈 포터의 <대열차 강도> 이후 영화엔 ‘편집’이라는 개념이 생겼고, 이는 영화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 이를 통해 영화라는 매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이야기를 전개하며 특별한 이펙트를 줄 수 있었다. <테넷>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편집을 더 특별한 영역으로 가져가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새롭게 시도하고 있었다.

스토리텔링을 가진 예술은 문학부터 시작해 무수히 많다. 그리고 이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편집을 하고 스토리에 속도감과 몰입감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이 <덩케르크>에서 보여줬던 서로 다른 시간대의 이야기 전개와 교차 및 <테넷>에서 한 공간 속 다층적인 시간대의 이야기를 펼쳐놓는 건 아직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만이 제대로 보여준 영역의 결과물이다. 가령, <테넷>을 글로 된 소설이나 컷으로 분절된 만화로 봤다면 이런 충격을 줄 수 있었을까.

여기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복잡한 물리학적 지식을 동원해 우리가 느끼거나 경험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필름에 포착하고 구현하려는 시도까지 하고 있다. 덕분에 그는 스토리텔러보다는 영화 운동가이자 실험가, 테크니션에 더 가까워 보인다. 미국 아카데미가 상상하지 못하는 곳까지 영화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는 셈이며, 오스카 트로피보다 더 빛나는 순간을 위해 영화를 만들고 있다. ‘영화는 어디까지 기록할 수 있고, 어떤 것까지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천재 감독의 후속작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키노라이츠 매거진 편집장 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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