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일까요 예언가인가요? 트럼프 시대를 겨냥해 만들었고 작년 개봉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 영화 <돈 룩 업>이 넷플릭스를 통해 오는 12월 24일 공개됩니다. 크리스마스와 함께 이 영화를 보는 시청자의 마음은 어떨지 궁금하기만 한데요. 그전에 미리 극장에서 <돈 룩 업>을 만나 본 소감은 빠르지만 쉽고, 아담 맥케이 영화 같지만 조금 타협을 본 것 같은 러닝타임(?)과 재미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난 12월 8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본 상영 분위기는 가관이었습니다. 영화의 말도 안 되지만 곧 일어날 것 만 같은 상황 때문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는데요. 박장대소, 피식 거리는 웃음, 씁쓸한 썩소까지. 다들 139분이라는 압박감 있는 러닝타임 동안 마스크를 쓰고 강제로 밀폐된 극장에 있지만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 영화 작정하고 만들었구나!’라는 일종의 전율 같은 경험 말입니다.
작정하고 만든 약 빤 풍자극
<돈 룩 업>은 아담 맥케이 감독 작품 중 전문 용어가 가장 적게 나오는 영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빅쇼트>, <바이스>처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 정치 영화라는 백신을 맞은 관객과 미친 캐스팅에 이끌려 들어온 첫경험자까지 모두 만족스러울 것 같은데요. <딥 임팩트>, <아마겟돈>처럼 미국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먹는 지구방위대 영화와는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죠.
천문학 용어 하나도 몰라도 영화 이해하는데 지장은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만 알면 되니까요. ‘지금 막 혜성을 발견했는데 곧 망하게 생겼다는 것’. 그게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이고 눈 감고 귀 막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입니다.
조금 더 파볼까? 실화를 바탕으로 했던 <빅쇼트>, <바이스>처럼 미국 경제와 정치를 논하지만 실화는 아니죠. 하지만 어쩌면 실제가 될지 모르는 이야기라고 내내 떠들고 있습니다. . 감독조차도 어디까지 캐스팅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을 것 같은데요. 그의 영화 중 출연진이 가장 많이 나오는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합니다. 자진해서 출연했다고 할 정도로 이 영화가 가진 의미에 힘을 모은 결과치라 할 수 있겠는데요. 기후변화, 미국, 전염병, 경제 등등. 이대로 갔다가는 정말 전멸할 것 같은 위기의식 같은 거죠.
영화 <돈 룩 업> (넷플릭스)
얼마 전 본 <프렌치 디스패치>가 유럽 부분 캐스팅 끝판왕이라면 <돈 룩 업>은 할리우드 부분 캐스팅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제니퍼 로렌스가 앞에서 끌고 뒤에서 매릴 스트립과 조나 힐이 밀면. 케이트 블란쳇, 타일러 페리, 롭 모건, 론 펄먼, 아리아나 그란데 등 말로 다 읊기도 어려운 배우들이 들러리를 서죠.
두 영화 다 대세 배우 ‘티모시 샬라메’가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티모시 샬라메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하며 귀하게 모시는 배우로 성장 했습니다. <돈 룩 업>에서는 중후반부에 짧게 등장하지만 존재감은 큽니다. 그의 팬이라면 인내심을 장착하고 엉덩이를 좀 더 붙이고 있어야만 한다고 일러 드립니다.
6개월 시한부 지구를 앞두고..
지구 멸망까지 남은 시간 6개월이라면 무엇을 할 것 같으세요? 남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고 투덜거릴 시간조차 아깝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쌓은 문명은커녕 꿈꾸었던 미래가 모두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좀 이상해도 이상합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태연합니다.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미국 대통령과 언론, 재벌이 천하 태평입니다.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내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데요.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날도 어김없이 최애 음악을 들으며 맛난 잼을 발라 토스트 한 쪽을 먹으면 천체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던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는 혜성을 발견합니다. 최초 발견자에게 붙여지는 이름을 따 디비아스키 혜성이라고 들떠 있던 것도 잠시. 좀 이상합니다. 이쪽으로 오고 있는건 뭔가요.
담당 교수 랜들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궤도를 계산하다가 잘못 계산한 거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혜성이 6개월 후면 지구와 충돌해 인류가 사라질 값으로 나왔기 때문인데요. 이때부터 발 빠르게 케이트와 랜들은 대통령을 만나러 백악관으로 향합니다. 최대한 빠른 시간에 면담을 요청했지만 백악관의 반응은 어째 뜨뜻미지근하기만 합니다.
멸망마저도 정치적 이익을 위해 계산기 두드리는 상황이 연출되죠. 어디서 많이 본 상황 같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코로나19 사태에 선거 때문에 미온적 대응했던 트럼프 정부가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거들먹거리며 아무 말이나 하는 태도하며, 주요 인사에 가족을 대놓고 낙하산으로 앉힌 행보, 히어로를 자처하는 보여주기식 정치와 명품과 돈에 환장한 속물적 근성까지 닮았습니다.
대통령과 측근이 다 같이 뭘 잘 못 먹었나 싶어요? 곧 죽게 생겼다는데 코앞으로 다가온 중간 선거 생각만 합니다. 이에 실망한 두 사람은 언론에 제보하기로 마음 먹죠. 케이트의 남자친구 찬스를 이용해 시청률 최고의 TV 쇼에 출연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두 사람의 굴욕은 끝없이 반복됩니다. 톱스타 결별설 때문에 묻히고 고군분투하다가 화를 내고 나가버린 케이트는 인터넷에서 밈이 되어 떠돌게 됩니다.
그 사이 속수무책으로 시간을 흐르고 다시 백악관 콜을 받고 가보니, 혜성의 궤도를 수정해 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뭐.. 다행이네요. 뭐로 가도 서울만 하면 되지 않나 싶은 생각에 내키지 않지만 성심성의껏 돕기로 합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혜성에 돈이 되는 광물이 발견되었다며 끼어든 IT CEO 때문에 무너지고 맙니다. 기업 배시의 수장 피터(마크 라이언스)는 묘하게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가 떠오르는 이미지로 상황을 뒤틀어 놓는 숨은 복병이었습니다.
대 환장 파티, 피할 수 없다 그냥 즐겨라!
영화 <돈 룩 업> (넷플릭스)
누구도 지구 멸망이란 진실을 믿지 않는 상황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불편한 진실을 애써 손바닥으로 가리고, 눈 감고 귀 막는 상황이라 할 수 있죠. 진실은 감출 수 있는 대로 감추고 진짜가 아닌 환상을 쫓으려고만 합니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간의 무지한 선택이 불러온 결과는 불 보듯 뻔합니다.
마치 전 세계가 기후변화에 앞장서야 한다며 각종 캠페인을 벌이지만, 당장 플라스틱 컵에 빨대를 꽂아 커피를 쉽게 마시는 행동과 같습니다. 처음에만 놀라고 호들갑이지 “늑대다! 큰일 난다”라는 양치기의 말도 반복되면 식상한 거짓말이 되고야 마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영화는 세울 수 있는 대립각을 끝도 없이 세우기만 하다가 끝납니다. 룩 업 파와 돈 룩 업 파. 다시 말하자면 하늘에 떨어지는 종말을 직시하자는 자와 무시하자는 자의 날 선 대립입니다. 당신은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누구와 무엇을 할 것 같은가요? 러닝타임이 짧아질수록 그 질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씁쓸한 웃음이 입안 가득 피어납니다.
참, 쿠키 영상이 2개나 있습니다. 현재 넷플릭스 스트리밍 전 극장 상영 중이니 영화가 끝나고 자리를 뜨지 말고 더 앉아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까지 에르메스 가방은 영롱하게 빛나네요. 역시 명품은 명품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