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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온 컴온> 한 아이를 이해하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것

전국을 돌며 미래와 행복을 주제로 한 어린이 대상 인터뷰를 맡은 라디오 저널리스트 조니(호아킨 피닉스)는 여동생 비브(가비 호프만)와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한동안 소원했던 남매는 조카 제시(우디 노먼)를 통해 극적으로 화해하게 된다. 사실 다 잊어버렸다. 뭐 때문에 등 돌리고 살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저 사는 게 바빠 안부조차 묻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오랜만에 남매는 어릴 때 기억, 추억, 새로운 가족인 제시를 화제 삼아 이야기꽃을 피우게 된다. 그러던 중 비브는 제시를 며칠만 돌봐 달라고 부탁한 뒤 남편을 만나러 떠난다. 다음 날, 진짜 둘만 남게 된 조카와 삼촌. 아직 해소되지 않은 어색함이 밀려오지만 비브가 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며칠을 보내야만 한다.

아이스브레이킹의 가장 빠른 방법은 역시나 자기소개일까. 두 사람은 시시콜콜한 말을 주고받고, 갑자기 역할극도 하고, 사운드 녹음도 함께하며 꽤 친해진다. 숨길 수 없는 직업병이 발동한 삼촌은 은근히 부추겨 인터뷰를 시도하지만 쉽게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돌봐주는 내내 제시한테 질문 세례만 받던 삼촌은 앞만 보며 달려왔던 길을 비로소 멈추며 돌아보게 된다. 자기 삶을 조금씩 반추하며 생각할 여유를 갖는다. 뜻밖의 동행은 모두에게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조커보다 무서운 우리 조카님

영화 <컴온 컴온>은 <조커>의 모습을 완벽하게 지운 호아킨 피닉스의 변신이 돋보인다. 온 세상이 궁금한 것투성이인 조카를 난감해하는 다정하고 평범한 삼촌을 연기했다. 어른스러운 아이를 통해 어른도 성장하고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 담담하게 전개된다. 수많은 아이를 만나봤지만 정작 조카의 생각은 알 수 없었던 삼촌은 많은 것을 얻는다. 사랑한다고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아이도 인격체로 존중해 주어야 함을 발견한다.

조카는 사실 좀 특이한 아이였다. 갑자기 보육원을 탈출한 고아 놀이에 빠져 장단을 맞춰 주어야 하고, 잠깐 한눈판 사이에 없어져 온 동네를 찾아다니게 만드는 당황스러움은 일도 아니었다. 무계획이 계획이 되어가고, 육아는 험난한 산을 그저 올라갔다 내려갔다는 반복하는 일이란 회의감이 든다. 챙겨주면 잃어버리고, 치워두면 5분 만에 어질러지는 시시포스의 형벌 같다.

제시의 물음표에 조니는 쉽게 답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직업상 수많은 어린이를 만나 생각을 수집했지만 정작 조카는 어렵기만 했다. 무슨 생각으로 하는 이야기인지,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 사랑한다고 해도 모든 것을 알 수 없었다. 답 없는 물음에 답하는 기분이다. 이해하려고 해봐도 안되고, 외계인이 아닐까 싶은 불통도 경험한다.

우리도 누군가의 아이였다

육아의 어려움을 동생에게 토로하다 보면 되돌아오는 대답은 늘 이러했다. “애들은 원래 다 그래..” 고작 9살짜리가 삶과 죽음, 종말, 외로움을 논한다.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게 행동할 때는 놀랍기만 하다. 그렇게 삼촌은 며칠을 보내면서 드디어 머릿속의 떠오르는 마구잡이 질문을 정리하기에 이른다. 아이들의 생각이 미래고 이는 곧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었음을 말이다.

아이가 없는 조니는 제시를 만나며 삶이 변한다. 어린이도 한 사람으로 대해야 함을 배우고, 긴 간병으로 힘들었을 동생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워킹맘이던 동생이 갑자기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결국, 조카를 돌보다가 쓰러져 버린 삼촌.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와 함께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인상 깊은 장면이다.

<컴온 컴온>은 아이처럼 그냥 해볼 수 있는 용기를 되찾아주는 일상의 쉼표 같은 영화다. 이리저리 재고 따지는 어른에게 날리는 일침과도 같다. 아이와 어른이 떠나는 로드무비, 가슴 따뜻해지는 가족 드라마이기도 하다. A24 배급 작품답게 빼어난 영상미와 완성도를 보장한다. 흑백으로 찍어 인물의 심리와 목소리에 집중하게 하고 미국의 광활함까지 담아냈다. 감독 마이크 밀스의 전작 <우리의 20세기>와 비슷한 분위기의 성찰을 느끼고 싶은 관객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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