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오해를 부르는 영화다. 제목 그리고 포스터와 줄거리만 보면 섹시하고 촉촉한 심리 로맨스 스릴러처럼 보인다. 부부는 별거 중이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걸 허락하나, 막상 아내의 삶에 다른 남자가 들어오자 남자는 위태로운 감정을 느낀다. 치명적인 매력으로 가득한 할리우드 영화가 탄생한 거처럼 다가온다. 허나 속살을 들여다보면 처절하고 축축한 감정으로 가득하다.
영화의 카메라는 남편 데이빗에게 고정되어 있다. 도입부에서 그가 총을 들고 함께 잠자리 후 잠에 든 아내 니키와 애인 데릭 앞에 서 있을 때만 하더라도 제목처럼 치명적이고 격렬한 로맨스가 펼쳐질 거처럼 보인다. 허나 데이빗은 울분을 삼키며 문밖으로 나간다. 작품은 이 한 장면을 통해 데이빗이 어떤 캐릭터인지 설명한다. 그는 그 어떤 억압과 울분도 속으로 인내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그에게 고정된 카메라는 그 답답한 내면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이 답답함은 4:3의 화면비와 와이드샷으로 잡은 카메라,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도 일상을 이어가는 데이빗의 모습을 통해 먹먹하게 다가온다. 4:3 작은 화면비는 그 공간에 갇힌 느낌을 주며 클로즈업 장면이 등장할 때 인물의 표정을 강하게 인식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와이드샷은 4:3 화면비에 멀리서 인물을 관조하는 시선으로 답답함을 배가시킨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하는 데이빗의 모습에 주로 이 샷을 사용하며 멀리서는 화목해 보이는 아이들과 아버지의 모습 속 응어리진 감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대비 효과를 연출한다.
충격적인 도입부 이후 데이빗이 보이는 행동은 인내다. 방금 전까지 니키의 침대에 함께 있던 데릭의 커피심부름을 들어주는가 하면 아이들을 보러 간 자리에서 니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저 마네킹을 때리면서 분노를 표출할 뿐이다. 데이빗이 니키와의 별거 후 아버지와 함께 사는 길을 택했다는 점도 그의 성향을 보여준다. 자신이 인내하고 견디면 모두 좋아질 것이라는 인내가 데이빗이란 캐릭터가 지닌 마음이다.
이혼과 관련된 삼각관계를 다룬 작품의 특징은 여성을 비련의 주인공으로 설정한다는 점이다. 남편에게 버림을 받아 고통을 받던 중 백마 탄 왕자님 같은 남자가 나타나고 아직 완전히 관계가 끝나지 않은 남편과의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또는 무력하고 나약한 남편과의 관계에서 소원함 또는 경제적인 곤란을 겪던 아내가 외부의 유혹에 흔들리는 모습을 그린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로는 <은밀한 유혹>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그 비련의 주인공을 남편으로 설정한다. 데이빗은 을과 같은 별거생활을 시작한다. 집도 자식도 모두 아내와 함께 한다. 별거 중에는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역시 허락한다. 데릭과 만나는 니키의 모습을 보고 품은 분노를 발산하지 않고 아이들 앞에서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자 한다. 귀책사유가 누구에게 있는지 드러내지 않는 영화에서 이토록 처절한 캐릭터를 설정하며 감정적인 울분을 담아내는 축축함을 준다.
영화의 영리한 점은 장소와 소재를 통해 이 로맨스를 그려낸다는 점이다. 배경인 유타 주 카노쉬는 동화 같은 집과 자연풍경이 인상적인 아름다운 시골마을이다. 허나 가까이서 보면 무너져 내리는 집이 있고, 집마다 거리가 멀어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 도시의 성격은 데이빗과 니키의 사랑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사랑은 와이드샷의 시점에서 멀리서 바라보면 아이들이 느끼는 거처럼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무너져 내리는 집처럼 위태롭다. 서로에 대한 거리감 역시 좁히지 못한다.
이 함께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사랑은 아이들과 로켓을 날리는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이 장면에서 데이빗은 날아가지 않는 로켓을 날리기 위해 계속 시도를 한다. 그 모습에 장녀는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부부의 관계를 인지하고 있는 딸은 이미 끝난 것과 같은 사랑을 붙잡기 위해 분투하는 데이빗의 모습이 날아가지 않는 로켓에 투영된 걸 느낀다. 아이의 눈에 아버지는 미련한 사랑을 하는 거처럼 보인다.
영화의 제목은 감독이 데이빗에게 외치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심리적으로 막다른 길을 향해가는 그에게 니키와 데릭, 두 사람의 사랑을 끝내야 네가 살 수 있다는 호소를 하는 것이다. 때문에 도입부는 감독이 준 기회라 할 수 있다. 그 기회를 스스로 져버린 데이빗에게 남은 건 울분이란 응어리를 품은 인내며 자기파괴에 가까운 심리적인 절망이다. 그 시선을 끝까지 유지하는 카메라의 힘은 강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할리우드의 섹시하고 치명적인 로맨스 스릴러나 유럽의 섬세한 감성 로맨스를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지 모른다. 대신 깨진 것을 붙이기 위해 분투하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따라가며 그 감정에 집중하다 보면 그 어떤 영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강한 감정이 주는 몰입감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신예 로버트 맥호이안 감독은 쉽지 않은 길을 택한 만큼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킬 영화를 만드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