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아이들이 ‘세상의 끝’을 찍어오라는 숙제를 받고 지하철 1호선의 끝, 신창역을 향하는 내용을 담은 <종착역>은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섬세한 표현과 시적인 감수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영화다. 네 명의 아이들을 관조하듯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에는 따뜻함이 담겨 있고 상황과 주요대사만 주어지고 배우들이 직접 대화를 만들어낸 장면 하나하나에는 자연스러운 모험과 성장이 녹아 있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네 명의 배우들은 실제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며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직접 대사를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자연스런 연기와 처음부터 끝까지 시나리오가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인상적인 대사들을 통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전학생 시연 역으로 조금씩 새로운 친구들을 향해 마음을 열어가는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 설시연 배우와 활발하고 개구진 모습으로 웃음을 안긴 소정 역의 박소정 배우를 키노라이츠에서 만났다.
-작품 속 캐릭터와 실제 본인 모습의 싱크로율이 어떤지 궁금하다
설(설시연 배우) : 100%에서 98% 정도라고 생각한다. 2%는 캐릭터 설정이 전학생으로 되어 있어서 새로 만나는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 낯설게 연기를 해야 했다. 내가 지닌 밝은 모습을 어느 부분에서는 절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박(박소정 배우) : 80%라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그때(촬영 당시)가 더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함께 촬영했던 배우들)과 촬영 중에 대화를 나눈 거 같다.(앞서 언급했듯 <종착역>은 상황과 주요대사만 주어지고 나머지 대사는 배우들이 만들어냈다)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더 생각해 보고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까 싶다.(웃음)
-영화에서 필름카메라를 사용한다
박 : 인스타그램에서 볼 법한 사진들처럼 나오더라.(웃음) 사용하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버튼 하나만 누르면 사직이 찍혀서 신기했다.
-오디션 때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박 : 2차 오디션 때 방탈출 게임을 했다. 탈출을 위해 수학문제를 풀어야 했는데 공부를 못하는 편이라 어려웠다.(웃음) 저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도 있었고 어린 친구들도 있었는데 다들 방정식을 활용해 문제를 잘 풀어서 아, 나는 틀렸구나 싶었다.(웃음)
설 : 저도 2차 오디션 때 했던 방탈출 게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때 정말 예쁜 언니가 있었다. 얼굴도 예쁘고 저와 달리 방탈출 문제도 거의 다 풀어서 그 언니가 되겠구나 싶었다.
여기서 서한솔, 권민표 감독은 방탈출 게임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설명을 덧붙였다.
서(서한솔 감독) : 저희가 원래 네 명이 다 친구인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싶었는데 그게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1, 2차 오디션을 진행하면서 유대감을 빨리 이끌어내기 위해 방탈출 게임을 진행했다.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지 절대 미션이 아니었다. 이 친구들이 다 미션으로 오해했나 보다.(웃음)
덧붙여 두 감독은 네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권(권민표 감독) :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네 캐릭터에 대해 생각한 이미지가 있었다. 먼저 설시연 배우는 전학생이지만 밝은 이미지가 필요했는데 딱이었다. 박소정 배우는 처음 보았을 때는 수줍음이 강한 인상이었는데, 그런 모습 속에 장난끼가 있더라. 네 친구가 친해졌을 때 그런 모습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 : 배연우 배우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대화를 주도했다. 방탈출 게임도 이 친구가 주도해서 주변을 이끄는 느낌을 받았다. 한송희 배우는 방탈출 게임 때 분위기를 위해 으스스한 음악을 틀었는데 음악만 들어도 무섭다고 그러더라. 헌데 무섭다면서 게임을 잘 해내는 모습을 보고 아, 이 친구가 (캐스팅) 조합에 들어가면 리액션을 잘 이끌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과 함께 촬영을 했다
설 :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 털 색깔이 하얀색이고 잘 돌봐줘서 깨끗하다. 촬영 때 본 강아지들은 좀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귀여웠는데 실제로 만지지는 못했다. 성격은 좀 사나웠던 기억이다.
박 :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강아지는 좋아한다. 촬영 중에 고양이랑 함께하는 장면이 있어서 처음 가까이서 봤다. 좀 무서웠는데 볼수록 고양이가 예뻤다.
고양이 이야기에 서한솔 감독은 운명과도 같았던 고양이와의 만남을 덧붙였다.
서 : 처음에 고양이 장면을 찍었는데 마음에 안 들었다. 다시 촬영하고 싶었는데 우리가 고양이를 데리고 간 것도 아니라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촬영 준비 중에 운명처럼 고양이가 나타났다. 모습을 보니 한 이틀에서 삼일은 굶은 거 같더라. 시골이라 사료를 사러 가는데 1시간 정도 걸렸다. 그 시간 동안 고양이를 만져주고 놀아주고 하면서 붙잡아 놨다. 그러다 한송희 배우를 투입해서 촬영했다. 이 고양이가 송희 배우랑 정이 들었는지 따라와서 옆에 붙어 있더라. 그래서 뒤에 마을회관 장면에도 함께했다.
-촬영 중 기억에 남는 디렉팅이 있다면
설 : 다른 영화는 대본이 있어서 캐릭터에 대해 분석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 이 영화(종착역)는 캐릭터도 정확하게 주시지 않으셔서 처음에는 어떻게 연기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너 대로 하면 된다”는 디렉팅을 주셨는데 ‘내가 뭐지?’ 이런 느낌이라 캐릭터를 잡는 게 어려웠다.
-시골에서 촬영을 했다
설 : 할아버지 고향이 전라북도 고창이다. 여름에 굉장히 덮다. 우리 영화 촬영장이 고창이랑 느낌이 비슷했다. 마을회관도 할아버지 고향 집이 떠오를 만큼 비슷해서 편안했다.
박 : 고향이 시골이라 어렸을 때 논이나 밭을 많이 봤다. 우리 영화 촬영장도 시골이더라. 보면서 반가운 느낌이 강했다. 마을회관에 갔을 때도 개인적으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