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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선언> 인간 민낯을 체험하는 140분 동안 긴장감

<비상선언>은 팬데믹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몰입과 이입이 확실한 영화다. 하늘 위 비행기라는 극도의 밀실 공간, 재난 앞에 인간 군상이 발현된다. 비행기 안에서 함께 갇힌 듯 온몸이 아파졌다. 때때로 “나라면 어땠을까” 자문하게 했으며, 현실을 옮겨 온 영화의 시의적절함에 몸서리쳤다.

올여름 텐트폴 영화들이 하나씩 베일을 벗고 있다. 빅 4 중 쇼박스의 <비상선언>은 CJ의 <외계+1>처럼 멀티캐스팅에 볼거리와 체험까지 얹어 다채롭게 준비했다. 제74회 칸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된 후 개봉이 연기되다가 올해 선보이게 되었다. 한국에서 드문 항공 재난 블록버스터의 오락적 재미와 평범한 소시민에 관한 이야기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이상한 남자

한 남자가 공항에서 행선지를 정하지 않고 표를 구하고 있다. 이 남자의 질문은 지극히 이상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여행지가 어디인지, 많이 타는 비행기가 뭔지 묻는다. 공항에서 목적지 없이 점심 메뉴 고르듯, 행동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 남자 진석(임시완)은, 얼마 더 공항을 부유하다 하와이행 티켓을 끊고 비행기에 오른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딸의 치료를 위해 비행 공포증을 딛고 비행기를 탄 재혁(이병헌)은 공항서 실랑이를 벌였던 그 남자와 같은 비행기에 탄 것을 알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비행기 안에서도 딸아이와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자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는다. 재혁은 더욱 불안해진다. 아까 옆자리에서 본 테러 예고 영상의 범인이 그 남자 같기 때문이다.

한편, 베테랑 형사 인호(송강호)는 바삐 업무를 처리하던 중 아내가 하와이행 비행기에 오른 것을 알게 된다. 장난인 줄만 알았던 테러 영상 속 남자의 집을 수색하던 찰나 의문의 시체가 발견되자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직감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와이행에는 승객 150여 명이 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 시각 비행기에서는 원인불명의 사망자가 나오자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소식을 전해 듣고 대테러센터를 꾸리던 국토부 장관 숙희(전도연)는 각계 인사를 총동원해 비행기를 안전하게 착륙시켜야만 할 임무와 마주하게 된다. 비행기 안,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부기장(김남길)은 비상선언을 선포한다.

재난에 직면한 다양한 인간군상

‘비상선언’이란 항공기가 재난 상황에 직면했을 때나 정상 운항이 불가능할 때 무조건적인 착륙을 선언하는 비상사태를 뜻한다. 대놓고 테러범이라 선포한 무차별적 함정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미 이륙한 비행기는 독 안에 든 쥐와 같다. 어디로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가 관건이다.

그래서일까. 캐릭터 각각의 사연에 집중하기보다 생화학 테러라는 현대 재난에 직면한 다양한 인간을 전시한다. 사람 사이의 불신과 믿음이 뒤섞인 인간시장 말이다. 다큐멘터리처럼 거리 두며 인물을 포착하고 핸드헬드로 현장감을 더했다.

뚜렷하게 하늘과 땅에서 고군분투하는 인물이 그려진다. 그 과정에서 <부산행>의 이기적인 상황도 비슷하게 연출된다. 지상에 <부산행>이 있었다면 항공에는 <비상선언>이라 하겠다. 땅에서는 형사 인호와 국토부 장관 숙희가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다. 애초 협상을 시도했지만 결렬되자 최소한의 피해와 국민 안전을 위해 신속히 대응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발목 잡는 상황은 산 넘어 산이다. 사망자가 속출하지만 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최근 여러 재난을 겪고 뼛속까지 새겨진 본능이 고스란히 재현되는 순간이다.

그저 재난의 자극적인 시청각적 상황만을 담지 않았다. 최대한 묘사는 피하고 상황에 대처하는 인물을 폭넓게 훑는다. 부기장 김남길과 사무장 김소진의 투철한 직업정신은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의 톰 행크스를 떠올리게 한다. 피해를 최소한으로 할 방법을 찾고 자기희생도 마다하지 않은 승무원의 태도는 묵직한 울림을 준다.

체험하는 영화의 정석

비행기에서 겪을지도 모를 상황이 저릿할 정도로 피부에 와닿는다. 누구나 공감할 힘이 영화에 깊이 들어 있다. 상업영화와 재난 영화의 장르적 클리셰를 이용하면서 색다른 편집과 한국에서 시도되지 않던 시각효과로 관객의 허를 찌른다. 이 부분이 호불호로 예상된다. 초반 선악 구도를 달리다가 중후반부터 다른 장르로 탈선하는데 한국적 신파 요소의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관권이다.

전반적으로 베테랑 배우의 연기 궁합이 뛰어나다. 특히 연기 변신을 시도한 임시완의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선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눈빛만으로 광기를 잡아낸 임시완의 낯선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기생충>의 기택이 생각나는 송강호의 농익은 연기와 치고 빠지는 유머 타이밍이 다시 한번 명배우임을 확인토록 한다.

현대 재난은 그저 거기 있었다는 우연으로 벌어지는 무작위 참사가 많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고 의도치 않게 재난 한가운데 떨어진 사람이 대부분이다. 지금이 아니어도 나와 가족, 친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설정은 실제 상황처럼 다가온다. 한 명의 영웅에 의존하는 뻔한 이야기가 아닌, 모두가 영웅이라는 희망적 메시지다. 시의적절한 영화 한 편이 재난을 극복하고 있는 인류에게 박수와 찬사를 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DX, IMAX, 돌비 시네마 등 특수관에서 관람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체험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140분 동안 관객은 승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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