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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 ‘고마움’과 ‘기시감’ 그 사이에서…

누구보다 영화를 아끼는 ‘키노라이터’들에게 이번 주, 화제의 영화는 뭘까요? 가벼운 감상부터 깊은 비평까지 다양한 글들이 키노라이츠를 채워주고 있습니다. 비평가 못지않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영화를 더 풍성하게 해준 키노라이터들의 글을 볼 수 있는 시간, 키노라이츠‘s Pick! 지금 시작합니다.


“너 내가 누군지 아니?”를 외쳤던 장첸이 변했습니다. <말모이>에선 조선어학회의 대표로서 “이 글자 뭔지 아니?”를 묻게 되었죠. <말모이>는 나라를 빼앗긴 조선 사람들이 그들의 정신을 보전하고자 조선어를 모으고, 사전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입니다. 일제의 탄압에 맞서 소시민들이 힘을 모아, 한글을 지키는 모습이 감동을 주는데요. 이 소시민의 얼굴을 대표하는 건 유해진입니다. 윤계상과 유해진은 이미 <소수의견>에서 합을 맞춘 적이 있었죠. 이번엔 어떤 모습을 보여줬을까요?

(글의 맞춤법을 일부 손봤으며, 방대한 내용을 다 담을 수 없어 일부 생략한 글도 있습니다. 리뷰의 전문은 키노라이터의 아이디에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말모이>는 2017년 여름 유일한 천만 영화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택시운전사>의 각본을 쓴 엄유나 감독의 첫 장편영화 연출 데뷔작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택시운전사>가 성공한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전달한다. 물론, <택시운전사>에서 관객에게 호불호가 갈렸던 대목인 ‘분노의 질주’가 연상되는 클라이막스 액션 장면을 덜어내면서 좀 더 사실적으로 다가가려 한 모습도 엿보였다.

– 양기자 님의 “천만 영화의 냄새가 나는 작품!” 중(초록, 3.5점)
유해진의 명품 연기는 작품을 더해갈수록 빛을 발하는 느낌이다. 사소한 신부터 굵직한 신까지 무엇 하나 나무랄 데 없이 그만의 끼를 오롯이 쏟아붓는다. 가히 유해진의, 유해진에 의한, 유해진을 위한 영화라고 해도 될 만큼 그의 활약상은 두드러진다. 역사적 사실을 근간으로 하고 있고, 여기에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지다 보면 간혹 신파 등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 이 작품은 그러한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덕분에 무척 담백하게 다가온다.

– 새날 님의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 중(초록, 3점)
배우들의 열연과 시의적절한 소재에 비해 엄유나 감독의 예산상 한계를 타개하지 못한다. 음악으로 이야기하면 박치처럼 편집에서 서툰 구석을 노출한다. 그래도 우리 역사를 진지하게 다루려는 감독의 진정성은 느껴진다. 윤계상과 유해진의 갈등이 봉합된 후부터는, 올곧이 영화 주제인 ‘소중한 우리말’을 부각하려 노력한 점은 높이 살만하다. 전체적으로 만듦새가 투박하지만, ‘조선어학회 사건’의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감동적으로 했다.

– 영혼아이TERU 님의 “진심은 통한다” 중(초록, 2.5점)


많은 키노라이터들이 <말모이>를 한글의 소중함을 돌아볼 수 있어 값진 영화라 평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한글의 전통과 우리의 정신을 지켜낸 이들을 생각할 수 있어 고마운 영화라는 의견도 있었죠. 잊혀서는 안될 기억을 살리고, 무분별한 한글 사용이 문제가 되기도 하는 이 시점에 필요한 영화였습니다.


엄유나 감독은 소시민이 우연히 역사적 대업에 참여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에 유머와 감동의 코드를 잘 버무려내고 있습니다. <택시운전사>에 이어, <말모이>도 구성과 전개가 유사했고, 덕분에 안정적으로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으며 거대한 감동을 주는 지점도 있었죠.

유해진을 향한 찬사도 쏟아졌습니다. 그의 입은 평범한 대사도 특별하게 하는 힘이 있죠. 심심할 법한 상황에 활력을 불어넣고, 웃음을 주기도 합니다. 잔잔하고, 조금은 밋밋할 수 있던 <말모이>를 구해낸 건 유해진의 힘이 컸죠. 상반된 성격의 윤계상과의 관계 변화에서 오는 개그와 브로맨스도 잘 살아있었는데요. 둘의 캐미는 역시나 좋았습니다. 또한, 조선어학회 구성원들의 캐릭터도 잘 잡혀 있었습니다. 천천히 흐르는 영화 속에서 그들은 각자의 특징을 뽐내며 빛나고 있었죠. 특히, 영화 및 드라마에서 악역으로 친숙한 김홍파의 사람 좋은 웃음을 볼 수 있는 순간이 기억에 남네요.

이런 호평과 달리, 예리한 비판을 남긴 키노라이터들도 있었는데요.

<말모이>는 일제 강점기에 대한 영화의 공식은 그대로 따른다. 일제 강점기 영화는 스토리 상의 선과 악이 이미 명확히 전제된 장르다. 주제, 전개와 결말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판에서는 결국 기본에 충실해야 성공할 수 있다. 최근에 나온 일제 배경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인 <동주>나 <밀정>은 주인공들의 심리에 집중하며, 일제라는 어둠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속을 보여줬기 때문에 가슴에 와닿을 수 있었다. 이 두 영화는 개인을 구성하는 꿈, 자아, 정체성 같은 요소들이 일제의 폭압과 대립하는 구도를 만들며, 관객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게 했다. 안타깝게도 <말모이>는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계몽 영화처럼 느껴졌다.

– 조항빈 님의 리뷰 중(빨강, 1.5점)
영화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말이 되지는 않지만, 최소한 어느 정도 팩트의 뼈대를 중심으로 만들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실제로 한글 대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애썼던 한글학회 회원들의 분투가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택시운전사>처럼 왜곡되고 가공된 영웅만이 존재할 뿐이다. 실화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극적인 소재를 이런 식의 신파로밖에 다룰 수밖에 없었는지 의문이다.

– 야구곰 님의 “신파와 허구로 무엇을 우리에게 주려고 한건지?” 중(빨강, 2.5점)
<말모이>는 대부분의 일제강점기를 배경을 한 영화들이 그렇듯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여러 명의 사람을 다룹니다. 보통 이런 플롯을 가진 영화들이 가지는 가장 큰 단점은 캐릭터 개성의 문제인데, 이 영화도 그 단점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김판수와 류정환의 성향만이 대립하며 갈등을 끌어내고, 나머지 캐릭터들은 개성조차 살리지 못한 채 하나의 카드처럼 소비되는 모습입니다. 주제에 의하면 하나하나의 의지와 노력이 세세하게 표현되어야 했지만, 실상은 서브 캐릭터인 일본 순경보다도 존재감이 없습니다.

– 시네마 오네스트 님의 “마냥 울기에도 마냥 웃기에도” 중(빨강, 3점)


다수의 키노라이터는 <말모이>의 전개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산만하다, 지루하다, 러닝 타임이 너무 길다’ 등은 모두 시나리오에 아쉬움을 말하고 있죠. <말모이>는 사전 편찬 작업과 두 남자의 브로맨스를 모두 보여주려다 방황한 것 같네요. 많은 사건 중에 관객의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이 없었습니다. 여기에 캐릭터들의 성격은 뚜렷했지만, 그들의 내면을 묘사하지는 못해, 그들이 도구적으로 소모되었다는 문제를 꼬집어 주신 분들도 있었죠.

일제 강점기를 재현하면서, 여러 가지 한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대를 다룬 작품들이 보였던, 인물의 대립과 갈등 구도가 뻔했죠. 선과 악이 뚜렷하나, 이미 보던 이야기를 또 보는듯한 기시감에 긴장감을 잃었습니다. 이 기시감이 지루함으로 이어진 거겠죠. 일제 강점기의 분위기를 잘 못 느꼈다는 평도 있었는데요. 세트장 같은 느낌이 강해 몰입하기 어려웠다고 하네요.

<말모이>는 한국 영화 중엔 2019년 첫 번째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입니다. 대작들이 물에 쓸리고 주먹왕에게 맞아 암울했던 연말의 분위기를 살려줬죠. 하지만, 키노라이츠 지수는 68.5%로 아쉬운 편이며, 이마저도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택시운전사> 만큼의 흥행은 힘들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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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라이츠 매거진 편집장 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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