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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맨’은 정말, DC를 대표할 명작이었을까?

키노라이터들이 남겨준 많은 리뷰는 키노라이츠를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영화에 관한 다양한 의견이 키노라이츠를 더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주죠. 그런 키노라이터들을 위해 ‘키노라이츠 매거진’에서는 특별한 시간을 준비했는데요. 좋은 리뷰를 더 많이 알리고,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아쿠아맨>은 497만 관객을 동원하며, DC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제임스 완과 제인슨 모모아는 침몰하던 DC호를 물밑에서 구해냈죠. 키노라이츠 지수도 78.8%, 3.3점으로 초록불이 켜졌는데요. 흥행과 함께, 명작이란 호평도 쏟아졌습니다. 바다 밑을 구현한 환상적인 CG와 히어로 장르에 기대했던 액션, 그리고 아쿠아맨이라는 캐릭터의 매력 등이 이를 뒷받침하죠.

그런데, 정말 이 영화는 명작일까요? 꽤 많은 평엔 ‘DC치고는 잘 만들었다’라는 모호한 표현이 달려 있기도 했습니다. 세계적인 물붐 속에서 <아쿠아맨>을 향해 비판의 화살을 날리는 건 어려운 일인데요. 여기, 키노라이터 ‘ZERO’ 님이 남긴, 예리한 글 한 편을 준비했습니다.

(글의 맞춤법을 일부 수정했으나, 최대한 원문을 그대로 옮겨 왔습니다.)

심해로 떨어지는 DC
– ZERO (빨간 불, ★ 2점)


원문: https://kinolights.com/review/33736

<아쿠아맨>은 개봉 전부터 위기의 DC를 구원할 구원투수라 평가받은 기대작이었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아쿠아맨>이 정말 DC를 구원할 영화라면, 이제 DC 영화를 챙겨 볼 일은 없을 것이다.

2013년 <맨 오브 스틸>을 시작으로 DCEU(DC 확장 유니버스) 영화는 총 6편이 개봉됐는데, 지난 5년간 꾸준히 지적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스토리의 개연성 부족이다. 영화에서 개연성이나 스토리를 지적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플롯보다 화면과 연출을 활용한 다양한 표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고 취향일 뿐, 후자 요소들의 비중을 줄이고 플롯에 집중하는 영화들도 많다.

<아쿠아맨>은 당연히 플롯에 집중하는 영화다. 히어로 영화에서 주인공의 캐릭터 구축은 최우선 과제고, <아쿠아맨>처럼 후속편이나 다른 영화들과의 콜라보가 기정사실화된 영화에선 절대적인 목표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처럼 진부하고 얕은 서사, 중구난방의 개연성으로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 수 없다. <아쿠아맨>은 매력을 떠나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에서 괴리감이 느껴지고,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공감하기도 힘들다. 그냥 영화 전체가 아무 맥락도 없는 거대한 서커스처럼 다가온다.


극 초반 아틀라나 여왕(니콜 키드먼)은 자신을 잡으러 온 병사들을 멋지게 제압한다. 이 시퀀스는 영화의 첫 전투씬으로, 비주얼적으로 꽤 볼만하다. 하지만 이 씬 바로 뒤에 여왕은 아들과 남편을 지키기 위해 아틀란티스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자신을 아틀란티스로 데려가기 위해 온 병사들을 전부 제압하고, 1분도 안 되어 자기 발로 투항하겠다는 여왕의 변덕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결국, 앞선 전투씬은 그저 액션을 위한 서비스일 뿐, 빈 껍데기였다는 말이다. 아버지와 술을 마시던 아서(제이슨 모모아)에게 시비를 걸던 패거리가 사실, 사진 촬영을 부탁하려는 것이었다는 술집 씬 역시 같은 맥락의 서비스 씬이다. 이렇듯, ‘저게 뭐야’라는 한탄이 먼저 튀어나오는 변덕스러움과 속이 빈 서비스 씬이 <아쿠아맨>의 플롯을 진행하게 하는 동력이다.

<아쿠아맨>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전통적인 영웅 서사로 볼 수 있다. 왕과 평민 사이에서 나온 자식이 후에 정통성 문제로 권력 다툼에 휘말리며 왕으로서, 영웅의 자격을 시험받게 된다. 이 시험을 통과한 주인공은 전설의 무기를 얻게 되고, 평화를 지킬 힘을 얻는다. <아쿠아맨>은 이 전형적인 틀 안에서 큰 변주 없이 스토리를 진행한다. 다만, 왕으로서 인정받는 과정이 문제다. 아서는 정의 등을 고민하다 각성하거나 성장하지 않는다. 그저, ‘물고기와 말이 통하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인정받는다. 한탄이 나오는 반전이다.


혹자들은 이런 말을 한다. 이런 블록버스터 히어로 영화는 스토리보다 비주얼이 더 중요하다고.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플롯의 비중을 줄이고 비주얼로 모든 승부를 보는 영화 중에도 좋은 영화들이 꽤 있다. 파괴지왕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2012>와 <투모로우>, 독창적 비주얼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 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고질라>가 그런 영화 중 하나다.

그렇다면, <아쿠아맨>은 얕고 진부한 플롯을 만회할 만큼 훌륭한 비주얼을 보여주는가? 그런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비주얼이 뛰어나다기보단, 때깔이 좋은 영화다. 이는 <아쿠아맨> 뿐만 아니라, 다른 DCEU 영화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DCEU 영화들은 절제를 모른다. 아무리 비주얼이 뛰어난 화면을 만들었다 한들, 그런 화려한 화면을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반복하면 질리다 못해 피로감마저 쌓인다. 뛰어난 비주얼의 화면들이 마치, 백색소음처럼 소비되는 것이다. 이 영화 속 액션 시퀀스를 따로 떼서 2~3분만 보여준다면 감탄하며 칭찬할지도 모른다. 이런 점 때문에 DC 영화는 예고편만 보면 기대하게 된다.

<아쿠아맨>의 비주얼 문제는 연속성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반복성에도 있다. 독창적이지도 않고 비슷한 비주얼이 반복되어 피로감이 배로 쌓인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트랜스포머>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할 수 있다. <트랜스포머> 1편은 비록 개연성이나 스토리는 날림이었지만, 변신 로봇의 실사화는 그 자체로 비주얼 쇼크였다. 당시에 그 정도로 정교한 CG 기술은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시리즈를 이어 갈수록 유사한 구조의 액션 시퀀스(실제로 액션 연출을 통째로 자기 표절함)를 보여주자 관객들은 화려한 CG에도 질리기 시작했고, 결국 마이클 베이의 영화는 ‘멍청한 영화’라는 오명까지 쓰게 되었다.


<아쿠아맨>의 거의 모든 액션 씬은 느닷없는 폭발로 시작한다. 영화의 첫 번째 액션 씬은 아서 집의 한쪽 벽면이 갑자기 폭발하면서 시작한다. 아쿠아맨의 해적 퇴치 씬도 잠수함의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시작되고, 액션씬도 잠수함 입구를 부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벌코(윌렘 데코)와 메라(앰버 허드)의 비밀 아지트에선 병사들이 문을 폭발시키며 등장한다. 또한, 메라와 아쿠아맨이 삼지창의 위치를 알아내는 순간, 악당이 메라에게 폭격을 퍼부으며 액션이 시작된다. 갑작스러운 폭격과 함께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액션 영화의 오랜 클리셰라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다. 한 영화 안에서 집요하게 똑같은 방식으로 씬을 구성하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제임스 완 감독에게 묻고 싶다.

사실상 이 영화에서 비주얼로서 제 역할을 하는 건, 화면 연출이 아니라 배우들의 육체다. 제이슨 모모아, 엠버 허드, 니콜 키드먼에게 몸매가 드러나는 괴상한 타이즈를 입혀놓은 건 비주얼 사수를 위한 최후의 발악인 것이다.


<아쿠아맨>은 평작이라고 보기도 힘든 졸작이다. <원더우먼>이라는 평작에 걸작 수식어를 붙이며, 억지 부활을 선언했던 DC는 이제 아틀란티스보다 더 깊은 심해로 떨어지고 있다. 이제 DC가 MCU를 따라잡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MCU가 같은 수준으로 침몰하길 기다리는 것 말이다.




ZERO 님은 <아쿠아맨>의 스토리에 개연성이 부족하다 지적해주셨습니다. 이 영화는 영웅 탄생의 과정을 말하고 있지만, 아서가 성장하는 과정이 보이지 않았죠. 왕좌에 관해 고민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갑자기 왕이 되려고 합니다. 아서는 중반까지도 왕이 되는 걸 격렬히 거부하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단순히 무기와 왕위의 정통성에만 관심을 가지는 영화로 보입니다. 덕분에 캐릭터가 일차원적으로 표현되어 아쉬운 부분이 있죠. 이 영화의 매력이 아쿠아맨인지 제이슨 모모아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찬사를 받았던 비주얼과 액션의 문제점도 꼬집어 주셨습니다. 이 영화의 시각효과는 너무도 과하게 전시되어 질리는 지점이 있고, 화려함이 특별함을 가려버렸다는 의견을 남겨주셨죠. 그리고 액션 시퀀스의 유사한 구성 역시, 피로감을 느끼게 할 수 있었습니다. ZERO 님 덕에 화려함에 묻혀, 잘 볼 수 없던 지점들을 볼 수 있게 되었네요. 제 역할을 다하고 <아쿠아맨>이 떠나가고 있는 시점에, 영화에 관해 한 번 더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키노라이츠 매거진 편집장 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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