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지닌 파급력은 우리가 몰랐던 역사의 시간을 돌아보게 만든다. 최근 미국 문화계에는 블랙무비가 유행하며 백인이 기록한 역사에 가려진 흑인의 역사를 발견하고자 한다.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축제의 여름>은 인류 최초의 달 착륙과 우드스탁 페스티벌 개최로 뜨거웠던 1969년의 미국을 조명한다. 당시 흑인들은 달과 우드스탁 보다 ‘할렘 컬쳐 페스티벌’에 열광했다.
이 공연은 무려 30만 명의 관객이 모인 건 물론 모든 공연이 녹화가 되었다. ‘더 루츠’의 드러머인 아미르 쿼스트러브 톰슨은 이 영상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당시 개최됐던 공연과 함께 그 의미를 조명하는 인터뷰를 담는다. 당시 공연에 참여했던 관객들과 관계자들, 흑인 사회의 유명 인사들의 인터뷰를 통해 왜 ‘할렘 컬쳐 페스티벌’이 역사에 기록되지 못했는지에 대해 언급한다.
1969년은 미국에서 히피족이 생겨나고 68세대의 부흥으로 반전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였다. 기존 질서에서 벗어난 새로운 물결이 요구되었다. 50년대 이후 흑인들의 거주지역이 된 할렘은 흑인들의 문화가 꽃피웠던 곳이다. 특히 음악의 경우 아프리카 주술문화를 바탕으로 미국 사회에서 당하는 억압의 정서를 담아냈다. 이런 흑인들의 한과 고통은 음악의 형태로 일종의 승화를 이뤄냈다.
이 아픔은 당시의 시대적 환경 역시 반영되어 있다. 흑인 사회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음에도 여전히 차별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비폭력 저항운동을 벌였던 흑인 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 암살을 당했다. 흑인 인권 운동 또한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눠졌던 때이다. 이에 흑인 사회는 그들 문화의 중심지인 할렘에서 공연을 개최해 자신들의 문화적 파급력과 단결력을 선보이고자 했다.
당시 이들의 공연은 모두의 예측을 뛰어넘는 시도였다. 당시 사회를 봤던 토니 로런스는 개런티와 보안에 문제가 있을 거라 여겼다고 한다. 할렘이란 도시가 지닌 우범도시라는 이미지와 흑인 사회의 빈곤은 같은 흑인에게도 의문을 자아냈다. 이들은 개런티를 전부 준비한 건 물론 흑표당이 보안을 담당하며 30만 관객을 통제했다. 여기에 촬영팀까지 준비해 온전하게 공연의 모든 과정을 담아냈다.
이런 준비에 걸맞게 당시 음악계를 대표하던 흑인스타들이 모두 참여해 여름을 뜨겁게 불태웠다. 대표적인 스타 스티비 원더를 비롯해 ‘Oh Happy Day’로 유명한 에드윈 호킨스 싱어스 등을 비롯한 당대 스타들의 공연은 흑인들의 소울을 담아낸다. 블루스로 대표되는 이들의 슬픔에는 인내와 고통의 정서가 담겨 있다. 때문에 흑인 가수들의 목소리는 흑인 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어쩌면 이런 점 때문에 이들의 공연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을지 모른다. 당시 어떤 방송국도 이들의 공연 영상을 방영하지 않았고 때문에 이 공연은 1회성으로 끝을 내게 되었다. 100마일 떨어진 곳에서 벌어졌던 우드스탁이 세계적인 음악축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어쩌면 세계적인 음악축제가 흑인들의 손에서 시작될 수 있었던 기회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미국의 가장 낮은 곳에서 펼쳐졌던 이 공연은 50여 년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현재 미국 문화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흑인 문화가 꽃을 피웠다는 점에서 시간을 초월하며 접촉을 시도한다.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가 흑표당을, <Da 5 블러드>가 베트남 전쟁 당시 참전한 흑인 군인들을 조명했던 거처럼 미국의 역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흑인의 시간을 재발견하는 순간이다.
<축제의 여름>의 부제는 (… 혹은 중계될 수 없는 혁명)이다. 음악은 국경을 초월하는 언어이자 소리 없는 아우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할렘 컬쳐 페스티벌’은 당대 흑인들의 목소리를 한 공간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큰 파급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더 일찍 꽃이 필 수 있었던 흑인문화가 시대의 억압 속에 적당한 토양을 얻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국내에서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선보인 이 혁명은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