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싱크홀>은 상경해 11년 동안 고생하며 산 내 집이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땅 아래로 꺼진 한 가장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다. 이사 오는 날 비가 억수같이 내려 오히려 잘 살 거라는 미신과는 달리 주차 문제로 얽혔던 만수(차승원)와 사사건건 부딪친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자주 얼굴을 붉히지만 하나의 공통점으로 엮여 있다. 바로 ‘이 집에 하자가 있을 수 있다’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끼고 서울에 번듯한 집을 마련한 동원(김성균)은 어찌 되었든 행복한 날을 꿈꾼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아들이 가지고 놀던 구슬이 끝도 없이 굴러가는 것이다. 지반이 심하게 기울어진 상태를 발견한지 얼마 되지 않아 베란다 문도 잘 닫히지 않아 걱정이다. 아니나 다를까. 공동현관 유리가 깨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단수가 되는 등 본격적인 이상 현상이 벌어진다. 얼마 되지 않아 집들이를 핑계로 김 대리(이광수)와 인턴 은주(김혜준)가 만취해 기억을 잃고 집에서 자고 간 다음 날. 빌라가 통째로 아스팔트 밑으로 떨어졌다. ‘설마 우리 집이..’라는 기우가 현실이 되는 악몽 같은 순간과 마주하는 순간 내 집 마련의 꿈도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싱크홀>은 몇 년 전 흥행한 <터널>과 <엑시트>의 장점만 모아 만든 재난형 블록버스터를 표방한다. 같은 빌라에 사는 이웃들의 사연과 부모 세대와는 판이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의 아픔까지도 전하려 노력했다. 짠한 감동과 풍자적인 웃음을 중심으로 절망 속에도 피어나는 희망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극복에너지와 묘하게 겹친다. 김지훈 감독은 전작 <타워>에서 불이 난 고층건물에서 벌어지는 재난 상황을 그려낸 바 있다. 소재가 바뀌고 한층 신파 분위기를 줄여 또다시 건물에서 벌어지는 사투를 그렸다.
한국인의 숙원사업, 내 집 장만의 꿈도 무너져
과연 한국인에게 ‘집’이란 무엇이며, 공간이 갖는 의미는 생각하다 고민이 깊어졌다. 인류가 생겨나고 수렵 생활을 하다 농사를 짓고 정착하게 되면서부터 집은 꼭 필요한 요소가 되었다. 안락하고 편안하며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맞이하는 ‘집’은 생존과 주거 기능을 넘어 현대사회로 오자 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대한민국의 내 집 마련은 일생일대의 목표로 통했다. 발만 뻗고 누울 수 있는 공간이라도 내 소유여야만 했다. 그래야 남부럽지 않은 인생이고 뒤처지지 않는 평범한 시민으로 인정받는 것 같았다.
대체 내 집 마련의 꿈과 집착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1950년대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황폐해진 나라를 재건하는데 모든 국민이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통하던 시절이었다. 70-80년대까지 열심히 잘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너도나도 죽어라 일만 해왔다. 그 결과 수출로 나라가 급히 성장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일한 만큼 돈 벌었고, 착실하게 은행에 저축하면 소시민도 집 한 채 장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꺼질 줄 모르는 부동산 열풍은 뒤틀리고 고도화되었다. 현재 서울 한복판에서 내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꿈을 넘어 닿을 수 없는 목표가 되어버렸다. 앞만 보고 열심히 일한 만큼의 성과와 비례하지 않고 멀어져만 갔다. 하면 할수록 동기 부여나 얻는 것 없이 맥 빠지는 게임과도 같았다.
동원은 얼떨결에 사무실 직원들과 얘기하다 장만한 집이 아파트가 아닌 빌라임을 밝히고 겸연쩍어한다. 왜 아파트를 사지 빌라를 샀냐는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빌라 바로 옆에는 철로가 있어 시끄럽기까지 하고 서울 변두리의 오래된 동네라 세월이 지나도 집값이 뛰지 않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빌라는 투자 가치가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동원에게는 이마저도 감지덕지할 뿐이다. 평생 대출을 갚아야 하고 실소유자가 은행일지라도, 저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한강뷰를 즐기며 내 가족이 쉴 수 있고 내 힘으로 장만한 공간에 대한 자부심은 커진다.
그렇게 한국인에게 집은 생활 공간 이상으로 의미가 있다. 2억을 대출받아 겨우 빌라를 사고 비록 가구를 저렴한 것으로 채워 넣었지만, 물려줄 수 있는 가구 하나만은 비싼 진짜 나무로 만든 의자이길 바랐다. 그 의자가 싱크홀 때문에 저 아래로 꺼져버려, 추위를 피할 땔감으로 쓰이는 장면은 무너져 내린 것이 비단 집만이 아님을 상징한다. 가장의 자존심과 한 사람의 인생마저도 산산이 부서진 안타까운 상황이다. 중년의 꿈과 청년의 미래도 쉽게 잡히지 않아 씁쓸하다.
싱크홀이란 글자 그대로 지반이 가라앉아 생긴 구멍을 말한다. 땅속에서 지하수가 빠져나가면서 생긴다. 침식되기 쉬운 퇴적암과 석회암이 많은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 자연 현상이었지만 요즘은 도심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인재로 발전했다. 무분별한 개발과 부실 공사가 원인이다. 결과적으로 피할 수도 있었지만 피할 수 없는 게 싱크홀인 셈이다.
<싱크홀> 속 ‘집’은 꼭 필요하지만 소유할 수 없는 신기루처럼 누구에게나 허락되지 않았다. 아파트를 동경하지만 빌라를 장만할 수밖에 없던 동원, 빌라에 세 들어 사는 만수, 평생 전세 원룸조차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아득한 김 대리와 인턴 은주에게도 말이다. 일생일대 이루어야 할 숙원이었던 내 집 장만은 천정부지로 솟아오른 집값을 등에 지고 몸과 마음 편히 쉴 곳을 찾아 정처 없이 떠돌아다녀야 하는 시시포스의 숙명과 닮았다. 뻥 뚫려버린 도로의 구멍은 곧 메워지겠지만 채워지지 않은 허한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