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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 황정민 혼자 끌고가는 무거운 수레

천만 배우 황정민이 어느 날 밤 괴한에게 납치당한다. 황정민이 황정민을 연기한 이 영화는 초반부터 기선 제압에 이른다. 지금부터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모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재미를 주겠다며 선언한다. 어쩌면 무모하고도 당찬 포부다. 주인공은 배우 황정민 혼자다. 여기에 박성웅까지 실제 이름을 쓴 캐릭터를 연기하며 기름 붓는다. 94분 동안 실존 인물, 실명, 그리고 직관적인 제목을 무기 삼아 달리겠다고 말한다. 이 레이스 과연 완주에 성공할것인가.

최근 들어 한국 영화계에서는 스타를 주인공으로 한 모큐멘터리가 심심치 않게 만들어지고 있다. 넷플릭스 영화 <차인표>는 대놓고 왕년의 대스타 차인표가 전성기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렸다.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약했지만 아직도 <사랑은 그대 품안에>의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시도된 처사였다.

그 이전에는 <여배우들>이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대한민국 여성 배우들이 모여 펼치는 팽팽한 심리 대결이 압권인 영화다. 성역 같아 보였던 여성 배우들의 평소 모습, 카메라 불이 꺼진 이후를 집요하게 탐구했다. 그래서일까. 모큐멘터리,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띤 영화들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실제 성격인지, 연기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상황을 관객 스스로 즐기면서도 리얼리티와 허구 사이를 넘나드는 게 포인트다. <인질>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착안했다.

갑자기 납치된 유명 배우

잘나가는 대한민국 최고 배우 황정민은 영화 개봉 며칠 전 언론시사회와 기자간담회 후 일정을 마치고 새벽이 돼서야 귀갓길에 나섰다. 집까지 태워주겠다던 매니저를 더 놀다 가라며 보내고 홀로 집으로 향했다. 평소 친분이 있던 근처 편의점 앞에 주차 한 뒤 돌아서다 무례한 행동으로 불편하게 하는 청년 셋을 마주한다. 황정민은 배우 이미지 관리를 위해 그냥 지나갈 수 있었지만 한마디 거들었다. 이해심 부족한 꼰대처럼 보일지 몰라도 먼저 예의 없이 행동했기에 그 정도는 훈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삼키며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겨간 순간. 길을 가로막은 트럭에서 내린 괴한 셋에게 납치당한다. 대체 몇 시간이 흘렀을까. 피투성이가 되어 알 수 없는 창고에서 깨어나서야 실감한다. 이 모든 게 실제 상황이며 살아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보니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편의점 사장과 아르바이트생 납치도 이놈들 짓이다. 그들은 같은 교도소 출신으로 출소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또다시 범죄를 모의하고 있었다. 그들은 황정민에게 다음날 밤 10시까지 현금 5억을 준비하라 요구한다. 황정민은 자신은 물론 또 다른 인질(이유미)까지 구해 온전히 집으로 돌아가야 할 의무가 생겨버렸다.

장단점이 확실한 영화

영화 <인질>은 스타 납치라는 번뜩이는 발상과 중견 배우와 신인 배우의 합이 돋보이는 영화다. 대놓고 꾸며진 허구와 상상의 경계인 ‘영화’와 현실의 줄타기를 노린 컨셉이다. 황정민은 그동안 보여준 다양한 캐릭터와 본인을 연기하며 자기 복제와 패러디 대사, 이스터에그를 뿌리며 고군분투한다. 거기에 황정민을 괴롭히는 5인방을 채워 낯선 얼굴로 리얼리티를 가미했다. 이들은 스크린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연, 연극계에서는 이미 인정받았거나 데뷔를 앞둔 배우들이다. 대놓고 베테랑 배우가 신인 감독과 배우를 위해 멍석을 깔아준 무대인 거다. 황정민의 유명한 수상 소감처럼 다 차려진 밥상을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

두목 최기완(김재범)을 필두로 조직의 이인자 염동훈(류경수), 황정민의 팬 용태(정재원), 동훈과 연인 사이인 샛별(이호정) 등이 등장해 살벌하고 악랄하게 위협한다. 특히 조직의 홍일점이자 JTBC 드라마 [알고는 있지만]에서 동성 연인과 섬세한 로맨스를 보여주는 이호정은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관객을 압도한다.

하지만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피할 수 없었다. 전반적으로 젊은 피 수혈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아쉬웠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겠지만 충동적으로 벌인 납치극에 일말의 연관이나 논리가 다소 부족했다. 신인배우들의 고군분투가 느껴지지만 이미 존재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 같은 기시감이 컸다.

“나를 찾아줘”라며 호기롭게 시작한 영화는 딱 거기까지다. 초반의 긴장감과 의문이 금방 휘발되어 버려 재미가 반감된다. 추적 과정과 단서의 퍼즐도 유명인 납치라는 특별함 때문인지 쉽게 풀려 버린다. 허술한 경찰의 수사와 뻔한 상황은 이후 결말까지 예상하게끔 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황정민의, 황정민에 의한, 황정민을 위한 영화다. 황정민의 독보적인 존재감은 두드러진다. 혼자서 이 모든 짐을 지고 이끌어가려는 황정민의 능력과 한계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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