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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달> 사라진 듯 보여도 동시에 공존하는 관계처럼

민희(유다인)는 남편과 사별 후 남편이 살고 싶어 하던 제주도에 살러 왔다. 남편은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언젠가 고향에 돌아가 살고 싶다며 의뭉스러운 글을 SNS에 남긴 채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어쨌거나, 남편의 흔적을 쫓으며 상처를 회복하려던 민희는 동네를 거닐다 성격 좋은 목하(조은지)와 뮤지션 아들 태경(하경)을 만나 친해진다. 어차피 연고 없는 제주도에서 어떻게 사나 싶었는데 좋은 이웃을 만나 두근거렸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친한 친구처럼 서로의 상처와 고민, 삶을 나누던 두 여성은 한 남자와 엮인 운명임을 알게 된 후 균열이 생긴다. 나만 알고 있었던 남편의 자작곡을 왜 목하의 아들이 불렀던 건지 이제야 이해되었다. 그이는 왜 목하와 태경의 존재를 숨긴 걸까.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자 민희는 심통 나기 시작했다. 제주도에 처음 왔을 때와 지금의 제주도가 다르게 보였다.

돌담에 새긴 둘만의 이니셜도 거슬리고, 아기자기한 귤나무도 밉다. 이 동네 사람들이 나만 빼고 다 알고 있는 것 같아 인생을 통째로 속은 기분이다. 곁에 없는 남편이 야속하고 아들까지 있는 목하가 심하게 질투 난다. 남편은 날 사랑하긴 했을까. 괜한 의심까지 들며 하루하루가 괴롭기 시작했다.

첫사랑의 또 다른 해석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남편의 첫사랑을 알게 된 아내와 잊고 지냈던 첫사랑의 아내를 만난 구여친. 그리고 출생의 비밀이 있는 아들까지. 살면서 마주치지 말아야 할 상대는 철천지원수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랑하는 상대의 첫사랑은 굳이 만날 필요도 없고, 만나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하지만 이영아 감독은 외국에서나 봐왔을법한 이야기를 엉뚱하고 귀엽게 그려냈다. 누구도 하지 않았던 참신한 시도, 아침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치정 요소를 다르게 해석해 발랄한 시너지를 풍긴다.

더불어 아름다운 풍경과 포근한 온기를 머금고 잊지 못할 장면을 선사한다. 신예 이영아 감독은 아버지 떠나보내고 힘든 마음을 정리하며 만든 영화다. 한낮에도 떠 있는 낮달이 마치 자신을 따라다니며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해 잘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영화 속 죽은 남편처럼 온종일 두 여성을 지켜본다는 설정은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게 아니라는 말도 죽음을 끝이 아닌 공존으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 기인한 듯 보인다.

때문에 목하와 민희 둘 사이가 티격태격, 위태로워도 휘어질지언정 무너지지 않고 오롯이 존재한다. 마치 아들 태경이 끈끈한 접착제가 되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평행선을 달리던 둘 사이에 태경이 부르는 노래는 언제든지 오갈 수 있는 다리가 되어 이어준다. 아버지를 모르고 자랐던 태경은 가슴이 뻥 뚫린 채로 태어난 쓸쓸함을 노래에 녹여낸다. 하지만 영화 속 ‘구멍’은 상실이 아닌, 삶의 풍파를 견디게 해주는 버팀목이다.

<낮과 달>은 유독 ‘나무’와 관련된 대사와 장면이 등장한다. 서로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목하와 민희. 정통으로 배운 건 아니지만 요가를 가르치며 나무 자세를 강조하던 목하의 이름에도 나무가 등장한다. 민희의 집이 사람도 가구도 없이 텅 빈 쓸쓸함이 느껴진다면 목하의 집은 파릇한 식물들이 넘쳐나는 생명의 기운처럼 활기차다. 공통의 슬픔을 함께 치유해 나가는 두 여성의 활기찬 서사가 제주도의 감성과 풍경과 어우러져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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