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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종] 현혹된 마음에 깃든 그것의 존재감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을 봤을 때의 두려움은 상상 이상이다. 오랫동안 인간은 그런 존재 중 하나인 신을 숭배했고, 귀신, 도깨비 등에도 적용했다. 그래서 이들의 노여움을 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고 신과 인간의 중개인인 무당의 힘을 빌려 소통하고자 했다. <랑종>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따라가는 삼 개월간의 추적이다. 푸티지 영상을 통해 이미 찍힌 영상을 재생하는 형식은 실제 일어난 일이라 생각할 만큼 생생하다.

<랑종>은 <샴>, <셔터>, <피막> 등으로 유명한 반종 피산다나쿤의 신작이자 나홍진 감독의 기획, 각본, 제작으로 많은 화제가 되었다. 실제 태국 이산 지방의 무당 30여 명과 만나 세밀한 사전 조사를 통해 완성했으며 태국 샤머니즘에 대해 다룬다. 퀴퀴하고 음습한 끈적임과 기분 나쁜 끔적임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태국의 이산 지역의 시골 마을에는 대대로 바얀 신을 모셔 여성만이 무당이 되는 운명을 타고난 집안을 주목한다. 할머니, 이모를 거처 현재 랑종(무당)이 된 님(싸와니 우툼마)은 사실 언니 노이(씨라니 얀키띠칸)의 거부로 랑종이 된 케이스다. 사느라 바빠 연락조차 하지 않고 살던 남매는 최근 노이의 남편 장례식을 이유로 한자리에 다시 모이게 되고, 님은 오랜만에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켓)을 만난다.

하지만 어딘지 어두운 분위기를 감지한 님은 밍을 조심스럽게 관찰하기에 이른다. 밍은 차분한 모습이었다가도 갑자기 장례식장에서 욕설을 내뱉으며 난동을 부리며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든다. 때로는 멍하게 허공을 쳐다보거나 누구와 이야기하는 듯한 이상 증세를 보이는 밍이 서서히 걱정되기 시작한다. 님은 자신의 신이 밍에게 옮겨 가는 건 아닐지 섣불리 판단할 수 없어 일단 두고 보기로 한다.

며칠간의 장례를 마치고 집에 온 가족들은 오래전 노이에게 일어난 신병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밍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밍은 인력 사무소에서 일하는 평범한 20대이자 회사원이었다. 제작진이 담은 인터뷰 영상에는 님처럼 무당은 다 연기하는 것이라는 밝은 여성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반복되는 똑같은 꿈,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 복통, 계속되고 멈추지 않는 하혈이 계속되자 여러 병원을 전전해보지만 개선되지 않고 더욱 심해지기만 한다. 자신이 거부한 신내림이 동생을 거쳐 딸에게 오려고 하자, 팽팽히 거부 의사를 내비쳤던 노이는 고민 끝에 동생에게 신내림을 부탁한다.

그러나 님은 바얀 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들어와 있음을 감지하고 조카의 신내림을 거부한다. 점점 자신을 잃고 다른 사람이 되는 밍을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던 가족은 어쩔 수없이 다른 무당에게 신내림을 받으려다가 더 큰 화를 부르게 된다. 섣부른 행동으로 가족의 운명은 서서히 파국으로 치닫게 되고 상상할 수없이 조여오는 공포를 운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결국, 노이는 모든 일에 통렬한 책임감을 느끼고 밍을 괴롭히는 원혼을 쫓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그것의 존재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랑종> 스틸컷

<랑종>은 관람 때보다 영화를 관람한 후 비로소 체화되며 곱씹을수록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영화라 할 수 있다. 강렬한 시너지는 리얼해 마치 그 장소에 있는 듯 분위기를 압도한다. 태국 한마을의 지역적 이국적인 음산함과 언어, 구마 의식, 노랫가락 등이 비슷한 동양문화의 성격을 띠면서도 낯선 분위기가 공포심을 유발한다.

후반부가 되면 <곡성>의 무당 일광(황정민)이 떠오르는 남성 무당 샨티가 등장한다. 시나리오를 직접 쓴 나홍진의 캐릭터 확장처럼 느껴졌다. 일광이란 캐릭터의 전사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펼쳐지는 듯했다. 대물림되는 것은 무당의 운명뿐만 아닌, 피의 저주였고 이를 끊어 내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하다는 설정도 묘하게 얽혀있다.

그래서일까. 기시감과 낯섬을 동시에 양산하며 기묘한 현장으로 초대한다. 일등공신은 단연 카메라다. 관객의 눈이 되어주는 카메라는 몰래 염탐하고 흔들리다 떨어져지며 영상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한 현장감을 부가한다. 영화 속 VJ가 촬영하는 카메라를 따라가다 보면 태국의 낯선 풍경과 샤머니즘 속으로 자연스럽게 입장하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핸드헬드 촬영으로 페이크 다큐 스타일로 채워져 있다. <블레어 위치>,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연상되는 전반부와 모든 것이 파괴되는 후반부는 <곡성>과 닮아 있다. 태국식 구마 장면은 <곡성>의 굿 장면 보다 훨씬 수위가 센 고어적인 부분이 돋보인다. 카메라를 든 제작진까지 위험에 처하는 장면은 현실인지 연출인지 헷갈릴 정도다. 진짜 같은 리얼리티와 1인 관찰자의 도둑 촬영 방식까지 그대로 재현해 긴장감을 불러들인다.

또한 연극 무대로 탄탄한 경력을 쌓은 배우들을 발굴해 현실감에 힘을 보탰다.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을 연기한 싸와니 움툼바는 실제 무당이라고 믿을 만큼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며 중심을 잡는다. 이후 신들린 연기로 파괴적인 몰입감을 일으키는 밍을 연기한 나릴야 군몽콘켓은 10kg의 감량을 통해 후반부의 피폐함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믿음’의 실체에 질문을 던지며 심오한 울림마저 선보인다.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믿음의 균열은 한 사람을 장악하고, 전염되어 가족 전체를 잠식한다. 처음부터 의연함을 보이던 랑종 님 마저 후반부에는 그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에 찾아와 결국 무너트리고야 마는 죄의 근원은 결국 인간이다. 선함과 악함 모두 인간의 선택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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