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맨>은 마블 영화에 철학과 액션을 더해 극찬 받은 앤서니 루소, 조 루소 (이하 루소 형제)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다. 넷플릭스 공개 전 극장 개봉해 운 좋게 큰 화면에서 챙겨본 호사를 누렸는데 그 이유가 충분한 액션 블록버스터였다. 넷플릭스 역대 최고 제작비를 들여 힘준 대작으로 약 2,500억 원을 쓴 작품답게 전 세계를 누비는 첩보 액션이 시원시원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더위를 피해 극장으로 피서 온 관객에게 비싼 티켓값을 내고도 아깝지 않은 오락영화다. 초호화 캐스팅과 카 체이싱, 온몸 액션, 오래된 유적지를 가차 없이 날려 버리는 무모함이 아드레날린 분출을 돕는다. 골치 아픈 일, 지루한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관객에게 신나는 재미를 보장한다.
마크 그리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며 루소 형제의 신작으로 충분한 화제성을 더한다. 루소 형제는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와 <어벤져스> 시리즈를 연출한 스타감독이다. 지금은 다소 제안적이나 자율적인 연출 권한과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지원하기로 유명한 넷플릭스 방침에 따라 OTT 플랫폼용으로 만들었다.
이를 두고 형제 감독은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는 말에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팬데믹의 공포와 비싼 티켓값,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를 무시하는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다며, 극장이 신성한 곳이라는 말에 반박한 것이다. 창작자는 물론 극장을 통해 관객과 만나고 싶지만 디지털 유통과 다양성이 커지는 현재 영화의 진화 모델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헌신했던 조직의 타깃이 된 한 남자
과거 감형 조건으로 CIA의 ‘시에라 프로젝트’에서 일하게 된 남자 식스(라이언 고슬링)는 한 사건을 통해 조직의 어두운 비밀을 손에 넣게 된다. 식스의 타깃이었던 남자는 자신도 시에라 포라는 코드네임으로 활동했다며 죽기 직전 USB를 넘겨준다. 이후 의도치 않게 표적이 된 식스는 조여드는 위협과 사랑하는 이를 구해야 하는 위기 속에서 마지막일지 모를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줄거리만 두고 보자면 솔직히 말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캐릭터마저도 신선하지 않다. 라이언 고슬링이 맡은 식스는 그의 전작 <드라이브>와 <블레이드 러너 2049>와 비슷하다. 액션은 <본>, <존 윅>을 연상케 하며 아나 데 아르마스의 조력은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떠오른다. 유사 부자 관계였던 상관의 조카를 지켜야 하는 상황은 <레옹>이나 <아저씨>의 그늘에 있다.
식상한 이야기와 뻔한 캐릭터지만, 오로지 즐기는 데만 목적이 있다면 은근한 재미 요소를 찾을 수 있겠다. 약간의 변주를 통해 같은 배우의 다른 쓰임새를 활용한 시도다.
캡틴 아메리카를 통해 바르고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한 크리스 에반스는 <나이브스 아웃>의 악역 캐릭터를 확장했다. 얌생이 콧수염에 백바지를 입은 소시오패스로 분해 라이언 고슬링과 팽팽한 대립각을 세운다. 연기 변신이 돋보이는 눈에 띄는 캐릭터다.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에서 츤데레 공작을 연기한 레게 장 페이지는 시대극을 떠나 현대극에서 매끄러운 캐릭터를 선보인다.
여성 캐릭터는 굳이 성적 매력으로 어필하는 작전에 투입되지 않고 철저히 개인의 욕망과 사명에 따라 움직인다. 이를 연기하는 아나 데 아르마스와 제시카 헨윅도 매력적이다. 오히려 섹시함은 아무래도 라이언 고슬링과 크리스 에반스의 몫인 듯했다. 톱스타가 한 영화에 많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면 적극 추천한다. 유명 배우를 활용한 비슷한 컨셉의 넷플릭스 영화 <레드 노티스> 보다 훨씬 즐거웠다면 이해가 될까.
한편, 넷플릭스 영화 <그레이 맨>은 오는 22일 공개된다. 쿠키 영상은 없지만 카툰형식의 엔딩 크레딧이 볼거리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