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3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의 ‘준호’역의 이동휘를 만나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이동휘 배우는 10년 이상 만난 연인의 헤어짐을 다룬 영화에서 N년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남친 준호를 연기했습니다. 대학 때 만난 캠퍼스 커플이었지만 20대를 보내고 30대 중반이 되어버렸고 둘 다 미술을 전공했죠. 하지만 준호(이동휘)는 공부만 N년째입니다. 아영(정은채)은 경제적인 부분을 지원하고 있느라 바쁩니다. 이제는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건지, 꿈이 뭔지, 현실에 쫓겨 가물가물할 지경이 되어버린 연인으로 시작합니다.
오래된 커플이면서 흡사 모자관계처럼 보이는 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인데요. 여자친구 아영을 맡은 정은채 배우가 준호와 극명하게 대비되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초상화가 걸어 나오는 것 같은 아우라가 풍겼던 정은채 배우와의 작업도 전해주었어요. 유쾌한 질문과 대답이 오고갔고 연기 철학과 좋아하는 것들, 앞으로의 계획도 들려주었습니다.
=사랑에 관한 영화는 많지만 ‘이별’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잘 없기에 작지만 큰 영화를 선택한 동기가 궁금했어요.
“아무리 좋은 시나리오가 있어도 흥행 공식에 따르지 않으면 투자 받기 매우 어렵습니다.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투자에 자유로운 편이었고, 소재와 연출도 자유로워 신선해서 선택하게 되었어요.”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큰 사랑을 받았던 이동휘 배우. 평소 독립영화계의 이야기 화수분인 ‘형슬우’ 감독의 실력을 익히 들었다며 겸손함을 보였주었는데요. 참여 소감도 들려주세요!
“형슬우 감독님은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아요. (웃음) 독립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라고 들었고 꼭 만나보고 싶었죠. 감독님 작품은 <바겐세일 킬러>를 봤는데요. 제 절친이 나오기도 해서 인상적으로 밨어요. 만나보니 정말 무궁무진한 이야기보따리가 쌓아 두고 있는 분이셨죠.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통하는 것이 많았고요. 같이 작품 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스틸컷
=극중 준호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공무원 공부를 오랫동안하고 있는 인물이에요. CC였던 여자친구 아영(정은채) 집에서 얹혀사는 넉살 좋은 헐랭이 남자친구기도 하죠. 실제 성격과 준호는 어느 정도 싱크로율을 보일까요.
“실제 준호와는 성격이 아주 달라요. 준호처럼 느리게 사는(?) 건 적성에 안 맞는다고나 할까요. 하루를 허투루 쓰는 것을 못 견디는 스타일이에요.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반드시 해야 합니다. 준호는 공부한다고 해놓고 몰래 게임하다 걸리지 않나..요.. 민폐 그 자체죠.
준호를 어떻게 빌드업할까 고민하다가 주변에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지인 중에 이집 저집에 며칠씩 옮겨 다니면서 기거하는 친구가 있어요. 근데 이상하게 미움받지도 않고 연애도 끊이지 않는 능력자(?)죠. 그렇다고 월세를 내는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여러 집을 드나드는 그 지인을 참고했는데 좀.. 망한 거 같습니다. (폭소) 대체 아영과 안나가 왜 준호를 좋아하는 건지 저도 모르겠거든요.”
=준호에게 두 여성이 빠지는 이유는 뭘까요. 마성의 매력인 준호(?)를 어떻게 연기했나요?
“아영은 오랜 시간 지내 온 가족 같은 편안함이 컸을 겁니다. 준호는 사실 지질하지만 아영 만을 바라봐 주는 성격이죠. 바람 같은 건 안 피우는. 이후 안나와의 관계는 좀 빠르게 진행되는데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같아요. 안나는 집착하는 남자와 헤어진 뒤 반대 성격인 헐렁한 남자에게 매력을 느낀 거 같고요. 정리하자면 아영은 안정감, 안나는 새로움 때문에 빠진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사진: 안성진 작가
=기자간담회에서 노메이컵에 관한 소신을 밝혔죠. 남성들도 피부관리나 메이크업에 매우 신경 쓰잖아요.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 같아요.
“계기는 <국도극장>부터입니다. 캐릭터가 영화에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관객도 그렇게 느끼려면 거기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여야 했죠. 그런던 어느 순간, 틴트를 발라 촉촉한 입술을 화면에서 봤을 때 참을 수 없었어요. 이런 생각이 들게 한건 <노매드랜드>의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영향이 컸죠. 물류창고에서 일할 때 배우가 아니라 진짜 일하는 현장 사람처럼 보였거든요. 좋아하는 배우에게 많은 것을 배웠답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고 이번에도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던 겁니다.
근데 아직까지 사실 조심스러워요 영화는 공동작업이라, 내 소신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거든요. 다행히 [카지노]도 배경이 습하고 더운 필리핀이다 보니 괜찮았죠. 오히려 그을리고 더위에 찌든 얼굴을 보여줘야 했고 리얼리티를 추구할 수 있었습니다.”
=스타일리시한 배우로 알려져 있으세요. 극중 ‘준호‘는 집에서 입을 법한 티셔츠와 슬리퍼를 착용하는 캐릭터라. 패셔니스타라는 이미지와 거리가 있죠. 이동휘 배우가 생각하는 패션철학도 궁금해요!
“의상실장님이 있다면 거의 맡기는 편인데요. 스스로 패셔니스타라고 말한 적은 없어요. 그냥 옷을 너무 좋아해요. 술이나 술자리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라 유일한 취미가 ‘옷’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말고는 옷에 미쳐있고 봐도..(웃음) 공동작업을 많이 할수록 개인 시간을 가지려고 하거든요. 외동아들로 자라서 그런지 혼자 노는 게 좋아요. 그때 그림을 그리거나 옷을 고르거나 SNS에 뭔가를 올린죠. INFP라 그런 성향이 있는 것 같은데요. 주목받는 건 좋아하지만..완전 주목 받고 싶지 않은.. 구석에서 작게(?) 주목받는 걸 좋아하는편(?). 패션에 관심이 많은 건 그런 해소의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작품을 볼 때 배우들의 패션도 주목해서 봅니다. 옷에 신경 안 쓰는 캐릭터를 연기할 경우 거의 단벌 신사로 가짓수를 줄이죠. 반대로 신경 써야 하는 타입은 많이 준비해 가요. 과시해야 하는 <타짜 2>의 ‘짜리’나, 미팅이 많은 <뷰티인사이드>의 ‘상백’, 허세가 많은 <베테랑> ‘윤실장’ 같은 경우 말이에요.”
사진: 안성진 작가
=음악도 좋아하지 않나요? 예능 ‘놀면뭐하니?’에서 MSG워너비 유닛 정상동기(김정민 이상이 이동휘 정기석)로 활동했던 때도 이야기 해주세요.
“음악도 혼자 할 수 있어 즐겨 들어요. M.O.M이 꾸준히 앨범을 내고 활동하는 것도 부럽고요. 전 준비가 되어 있긴 한데 막상 시도하기에는 겁나고 고민이 많아요. 듣는 것도 좋아해요. 지난주에는 잔나비 콘서트에 갔고 내일은 거미 콘서트에 갑니다.”
=앞으로 맡고 싶은 역할이 있으세요?
“<극한직업>, <베테랑>, [응답하라 1988] 등 운 좋게 출연하게 되어 다작 배우로 알고 계신 거 같아요. 감사하지만 공백기도 많았어요. 아직은 하고 싶다고 영화가 만들어지는 수준이 아니라. 들어오는 각본을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근데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은 있어요. 실존 인물을 다룬 전기 영화요. 예전에 <엘비스>를 보다가 ‘오스틴 버틀러’에게 반했어요. <라 비앙 로즈>의 ‘마리옹 꼬띠아르’, <보헤미안 랩소디>의 ‘라미 말렉’등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놀란죠. 얼굴이 똑같지 않은데 어느 순간 실존 인물의 얼굴이 보이는 거 있죠? 먼 이야기지만 기회가 된다면 누군가의 모습을 연기해 보고 싶습니다. 그게 이왕이면 노래하는 사람이면 좋겠고요. 복서, 레슬러 같은 인물은 많은 분을 납득시켜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웃음)”
=얼마 전 ‘응답하라’ 멤버들을 만났는데..어떠셨나요?
“그 친구들을 만나면 마치 유년 시절을 함께 한 동창 같아서 편했던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키노라이츠에서 질문 드립니다. 최근에 본 작품 중에 기억에 남는 건 뭔가요?
“많은 작품을 봤는데 갑자기 기억이 안 나네요. 아하! 극장에서 <슬램덩크>를 봤어요. 짠한 감동이 밀려왔죠. 만화책이 찢어지게 봤던 작품인데 이번에 3D로 눈앞에서 펼쳐지니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집에서는 넷플릭스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일본 사회와 사람들을 다루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님의 차갑고도 따뜻한 시선에 반했다고나 할까요. 감독님은 배우들을 고르는 선구안이 있는 것 같다고 다시 느꼈죠. 제가 <브로커> 때 많이 웃겨 드렸거든요. 사실은 감독님이 정말 잘 웃어주시더라고요. 그때 잃어버렸던 유머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웃음)”
사진: 안성진 작가
=세계적인 거장의 러브콜을 받는 배우죠. 본인이 성장했다고 느낄 때는 언제였나요?
“운 좋게 좋은 흥행 작품에 출연하면서 인기를 얻었다는 생각해요. <극한직업> 이전에도 1년 동안 쉬었고 ‘놀면 뭐하니?’도 그전에 1년 공백기가 있었어요. 운 좋게도 ‘놀면 뭐하니?’ 이후에 쉬지 않고 일하고 있네요. 올해는 꽉 채워서 연말까지 활동해야 할 것 같아요. 5월에 독립영화를, 가을에 드라마 한편 준비하고 있습니다.”
=벌써 마지막 질문이네요. 영화<어쩌면 우린 헤어졌을지 모른다>를 선택할 관객에게 짧게 설명 부탁드려요!
“지인에게 이 영화를 소개할 때 이렇게 말해요. (웃음) ‘오랜만에 헤어진 여자친구를 만나는 상황인데 왼쪽에 담이 와서 왼쪽만 보는 영화를 찍었어’라고 말이죠. 그러면, 사람들의 반응이 꽤 좋더라고요. 대체 무슨 영화를 찍었길래 저렇게 이야기하냐고요.
이 영화는 현실감이 많이 느껴져요. 효과적인 대사전달력을 위해 애드립을 사용했고요. 평소 유튜브나 짤을 보면서 애드립을 연구하는 편이기도 한데요. 아무래도 영화라도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워도 다큐멘터리가 아니니까.영화는 일상을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상황과 대사랑 특별하게 들리길 바라는 마음도 있고요. 그게 내가 중요하게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