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뜻으로 부적절한 관계라도 본인에게 아름답게 느껴지면 세기의 로맨스로 다가온다. 로맨스 영화의 명작으로 불리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타이타닉> 역시 불륜이 소재며 국내 첫사랑 영화의 대명사인 <건축학개론> 역시 불륜 코드를 담고 있다. <아망떼>는 불륜을 소재로 한 작품들과 다른 결을 지닌 건조하고도 차가운 영화다.
로맨틱 스릴러라는 장르적인 구분과 달리 이 영화는 치명적인 로맨스도, 긴장감이 넘치는 스릴러도 보여주지 않는다. 불륜이 아닌 로맨스로 보이게 만들려는 포장보다 주력하는 건 세 주인공 사이의 관계다. 이들의 관계를 그려내는 방식과 각 캐릭터가 지닌 색깔을 진하게 우려내며 내적인 로맨스와 스릴러를 보여준다. 재료가 약하고 간도 싱겁지만 입에 넣는 순간 계속 씹게 만드는 요리를 먹은 기분이다.
영화는 세 개의 장과 세 명의 주인공, 세 개의 도시를 통해 세 가지 순간을 담아낸다. 첫 번째 순간은 파리, 욕망이다. 시몬과 리사는 서로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커플이다. 도입부 나체 차림으로 함께 침대에 누워있는 두 사람의 모습만으로 그 감정을 극대화한다. 어느 날 시몬이 사건을 벌이면서 두 사람은 함께 도피를 결정한다. 허나 시몬이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으면서 두 사람의 사랑은 끝이 난다.
예술이란 상징성을 지닌 파리는 젊은이들에게 낭만과도 같은 도시다. 젊음의 혈기와 열정은 때로는 예기치 못한 실수를 낳기도 한다. 두 사람은 각자가 품은 욕망으로 인해 서로의 삶을 망가뜨린다. 두 사람의 욕망은 서로를 향한 강렬한 사랑과 육체적인 탐닉과는 거리가 멀다. 보이지 않는 실체인 미래가 욕망의 대상이란 점에서 현 세대의 청춘들이 느끼는 불안이 욕망에 의해 발현되는 현상을 포착한다.
두 번째 순간은 인도양, 신중이다. 3년 후 레들러와 결혼한 리사는 남편을 떠나 인도양에 위치한 여행지에 온다. 이곳에서 리사는 리조트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시몬과 다시 만나게 된다. 다시 사랑을 만난 리사는 격렬하게 타오르는 감정을 느끼고 그의 곁에 머물고자 한다. 레들러는 리사와 가까운 시몬을 자기 아래에서 일을 시킨다. 세 사람은 인도양이란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리사와 시몬의 재결합은 여느 로맨스 영화처럼 격렬하게 감정을 분출하지 않는다. 욕망으로 인해 실패를 맛보았던 두 사람은 신중하게 서로의 욕망을 감지하고 조금씩 발걸음을 마주한다. 상황과 대사를 통해 서로를 향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다는 폭풍전야의 느낌을 심리적으로 전달할 뿐 장면을 통한 극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동시에 인도양 여행지란 배경이 지닌 따뜻한 이국적인 풍경으로 영화의 분위기가 우울과 건조로만 점철되는 걸 방지한다.
세 번째 순간은 제네바, 방점이다. 이 파트에서는 리들러의 비중이 이전보다 늘어난다. 시몬의 정체를 리들러가 알았기 때문이다. 리들러는 그 정체를 알고서도 영화의 색깔처럼 침착하고 건조한 모습을 보인다. 리사는 리들러와 시몬 사이에서 방황하며, 시몬 역시 확실한 결말을 내리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 순간 작품은 방점을 찍으면서 시선을 집중시킨다. 침묵 속에 울리는 총성처럼 후반부에 충격을 선사한다.
이 충격은 제네바란 도시가 지닌 속성과 상반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제네바는 평화의 수도로 불리며 중립국의 도시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이 도시가 마지막 장소라는 점에서 어쩌면 이들의 사랑은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풀 수도 있을 것이란 가능성을 보여준다. 허나 잘못 끼운 첫 번째 단추가 다른 단추들의 운명을 바꾸듯 리사와 시몬의 사랑도, 리사와 리들러의 사랑도 퍼즐을 맞추지 못한다.
건조하게 말라붙은 욕망을 그려낸 <아망떼>는 스테이시 마틴의 얼굴을 통해 그 마침표를 찍는다. 영화의 감독인 니콜 가르시아는 리사 역의 스테이시 마틴에 대해 특유의 우울함과 무심함이 리사 역에 잘 어울린다 평한 바 있다. 배우 출신인 만큼 스테이시 마틴이 지닌 이미지와 얼굴을 캐릭터를 통해 극대화시키는 연출을 선보인다. 분위기에 잠식되어 가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