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매체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그 시대상을 담아내는데 주력한다. 특히 주류가 되는 작품은 공통적으로 시대가 추구하는 패러다임을 통찰한다. <기생충>과 <노매드랜드>가 근 2년간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해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이유는 현 시대의 주된 패러다임이 빈부격차로 인한 계층분화의 문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뉴 오더>는 다소 극단적인 형태로 이 문제를 담아내며 큰 충격을 준다.
영화는 제목처럼 새로운 명령을 통해 새로운 질서가 자리잡혀가는 미래 세계를 다룬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국가인 멕시코는 감독 미셸 프랑코의 고향이자 거대 카르텔로 국가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해 치안이 나쁜 곳으로 손꼽힌다. 감독은 자신의 모국을 바탕으로 끔찍한 디스토피아를 설정한다. 그것도 최고의 부유층이 사는 집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인 결혼식장을 배경으로 말이다.
작품은 결혼식이란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뉴스를 통해 시위대가 도로를 점령했다는 불길한 소식으로 폭풍전야와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결혼식의 주인공인 마리안은 유모가 몸이 아픈데 경찰이 도로를 통제해 병원에 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에 차를 몰고 직접 유모의 집을 향한다. 마리안이 집을 비운 사이, 그녀의 부모와 오빠, 그리고 남편이 될 남자가 있는 대저택 안으로 무장한 시위대가 들어온다.
이 영화는 날씨로 치자면 점점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소나기가 내리는 게 아닌, 쨍쨍한 날에 갑자기 태풍이 불어 닥치는 급발진을 보여준다. 시위대가 결혼식을 모인 사람들을 향해 총격을 가하며 디스토피아가 펼쳐진다. 거리에 모인 시위대는 폭력을 휘두르며 경찰로도 제압되지 않는 규모를 보여준다. 이에 국가는 군대를 동원해 시위를 진압한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한다. 군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가 확립된 것이다.
작품은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의 시체 위로 멕시코 국기를 앙각 숏으로 잡는다. 앙각 숏은 피사체가 시청자를 압도하는 느낌을 주며 시점의 주인공을 강력하고 지배적인 존재로 묘사한다. 국가의 명령으로 시위대를 제압한 군대는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 우리나라의 군사독재정권이 그러하듯 통행금지가 부활하며 불심검문을 시행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빈부격차로 인해 발생한 시위가 더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위 이후 유색인종이 주를 차지하는 중산층과 빈민계층은 통행금지는 물론 노동허가증을 받아야만 일을 할 수 있다. 반면 백인이 주를 이루는 상류층은 거주이전이 자유롭다. 때문에 마리안의 가족이 시위 후 이사를 하는 장면과 달리 유모의 가족은 집에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면은 상반된 모습으로 새로운 질서 속 계급의 차이가 더욱 공고해졌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작품은 군부독재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모습을 선보인다.
시위 이후 유모의 집에 숨어있던 마리안은 군부에 붙잡히게 된다. 군부는 마리안을 비롯해 납치한 사람들을 통해 돈을 뜯어낸다. 국가가 나서서 납치라는 범죄를 저지른다. 이것도 모자라 돈이 오지 않으면 사람들을 죽이는 건 물론 성폭력과 성고문까지 보여준다. 이는 계급을 향한 투쟁이 최악의 사태로 변질되며 넘을 수 없는 유리장벽이 있음을 보여준다. <기생충>보다 자극적이고 슬픈 우화(愚話)라 할 수 있다.
영화의 스타일은 감독 미셸 프랑코의 성향이 도드라진다. 미셸 프랑코는 개인의 심리를 극단적으로 이끌어 가는 작품들을 선보인 바 있다. <크로닉>에서는 환자에 깊게 감정을 이입해 그들의 모습을 하는 간병인을, <에이프릴의 딸>에서는 거리를 두고 살아가던 딸이 출산을 하자 손녀에게 모성을 품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엄마의 모습을 그린 바 있다. 그는 <뉴 오더>에서 그 극단을 심리가 아닌 세계관으로 확장시킨다.
지배계층을 향한 빈민층의 반란은 고전명작 <레 미제라블>을 비롯해 다수의 작품이 시도해 온 이야기다. 허나 자본을 바탕으로 강하게 결탁된 이들에게 더는 민주주의의 공식인 다수를 위한 다수의 지배가 성립되지 않는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에 대한 이 영화의 상상력은 불쾌하다 여겨질 만큼 큰 충격을 준다. 특히 영화가 그리는 결말은 그 어떤 디스토피아 세계관보다 끔찍하다.
<뉴 오더>는 <기생충>, <노매드랜드>와는 다른 스타일로 빈부격차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전 세계적으로 다포세대, 캥거루족, 욜로족이 등장할 만큼 희망을 잃어버린 현 세대에게 어쩌면 미래는 우리가 모두 힘을 합쳐 뒤집어 버린다 하더라도 새로운 질서로 더 강한 억압을 행하는 공포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드라마란 장르에 SF와 공포를 추가해도 될 만큼 장르적인 매력이 강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