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라는 제목에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을 먼저 생각했다. 뒤늦게 이 영화와 전혀 관계없다는 걸 알았지만, 제목에 대한 집착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외국영화 ‘Vertigo’는 <현기증>이란 이름으로 국내 관객 앞에 섰는데, 정작 한국 영화 ‘Vertigo’는 영어 발음을 표기하는 방법을 택했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 제목부터가 패착일지도 모른다.
전계수 감독은 ‘버티고’라는 제목에 다양한 의미가 있다는 걸 강조했다. 이 제목엔 이미 언급한 ‘현기증’이라는 뜻이 있다. 또한, 항공 용어로 비행 중 균형 감각을 상실해 하늘과 바다를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도 뜻한다. 끝으로 한글 말 그대로 ‘버티고 있다’라는 의미도 있다. 전계수 감독은 하나의 제목으로 다양한 의미를 말할 수 있어 흥미롭다고 했는데, <버티고>는 이 제목처럼 많은 걸 하나의 프레임에 담으려 했다.
<버티고>는 계약직 여성 서영(천우희)의 불안한 심리를 시각화한다. 도시에 우뚝 솟은 고층 빌딩은 서영의 감정에 따라 흔들린다. 종종 그녀가 빌딩 아래를 내려볼 땐 스크린에 펼쳐지는 아찔한 광경에 함께 움찔하게 된다. 이 고층 빌딩은 각박하고 자비가 없는 냉정한 도시를 상징하고, 부서질 듯한 서영의 상황은 이 우직한 공간과 대비된다. 그녀는 빌딩 안에서 고립되고, 불안감은 점점 더 커진다.
영화는 한 시퀀스가 시작할 때마다 그날의 날짜와 날씨를 자막으로 알려준다. 이는 서영에게 일어날 일과 그녀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다. 그리고 이 날씨에 따라 빛과 의상 등 프레임을 채우는 미장센에 일관적인 규칙이 있다. 전계수 감독은 어두울 땐 단단함을, 밝을 때는 흔들림을 표현하기 위해 이미지를 세팅했다.
더불어 <버티고>는 클로즈업을 다수 활용한다. 이 샷은 인물을 좁은 프레임에 밀어 넣으며 갑갑함을 주고, 서영의 고립감을 더 극대화한다. 그녀는 고층 빌딩에 갇혀있는 것도 모자라, 작은 프레임 안에 가로막혀 있다. 동시에 클로즈업은 천우희의 작은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다. 큰 변곡점이 없는 영화의 서사 안에서 천우희는 절망 속에 숨 쉴 공기를 서서히 잃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연기했다. <버티고>는 그녀의 표정이 갈등이고, 리듬이며, 절정이다. 전계수 감독의 치밀한 미장센과 수많은 의미도 결국, 천우희의 얼굴이 없었다면,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없었다.
그렇게 <버티고>는 굵직한 사건보다 서영이라는 인물이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을 밀착해서 담았다. 그녀의 절망과 불안함이 커지는 감정을 거대한 스크린에 2시간가량 전시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절망이란 감정의 파노라마를 천우희의 표정으로 완성한 영화다. 천우희의 역량이 놀랍지만, 영화 자체는 여러 가지로 과한 시도로 넘친다. 많은 의미와 의도를 담기엔 프레임이 너무도 좁았고, 이야기의 특별함도 부족했다.
덕분에 관객이 현기증을 느끼는 지점이 있고, 전계수 감독의 수많은 의도와 의미를 함께 나눌 여유가 없다. 한 번에 많은 걸 시도하기보단, 조금 덜어내거나 이야기를 확장해야 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에 집착하게 된다. 이 영화의 제목이 다양한 뜻을 가진 <버티고>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현기증>이었다면, 더 간결하고 강렬한 영화가 도착하지 않았을까.
키노라이츠 지수 에상: 빨간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