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이 울린 거리를 절뚝거리며 빠져나가는 소녀를 카메라에 담게 된 소년. 소년은 홀린 듯 소녀의 사진에 집착하고, 점점 그의 일상에서 이탈해 나간다. 이 소녀에 홀린 건 소년뿐만이 아니다. 소녀는 총성이 울렸던 공간에 다른 여성을 우연히 끌어들이고, 그 여성의 삶도 완전히 바꿔 버린다. 소녀와 얽힌 인물들은 삶의 새로운 활력을 얻는 동시에 삶의 일부가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지쳐 보이는 인물들과 일상의 무력감이 느껴지는 <공포분자>는 그런 도시의 삶이 공포라 말하고 있었다.
대만이라는 국가의 표정을 담다
‘에드워드 양’이라는 감독과 <공포분자>에 관해 쓸수록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나 글을 완성할 수 없었다. <공포분자>가 카메라에 담은 대만 도시의 인상이 불안정해 보인다는 것. 더불어 그 속에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표정이 희미하며, 그들이 방황하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영화는 크게 네 명의 인물을 따라가며 대만 도시의 그림자를 훑는다. 연관성이 없어 보이던 이 그림자들은 우연한 계기로 하나로 모인다. 이를 통해 그들이 공유하고 있던 도시인들의 불안한 정서가 불쑥 필름을 넘어와 퍼져 나간다.
한국도 겪었을 도시화 이후의 여러 문제에 관해 <공포분자>는 스케치하듯 펼쳐 보이고 있지만, 끝내 더 다가갈 수 없었다. ‘대만’이라는 국가의 근대화와 도시화, 더 나아가 아시아의 그것에 관해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어야 에드워드 양이 비춘 카메라가 무엇을 담고자 했는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관객이 나의 영화를 볼 때 마치 시를 읽듯 영화를 읽어주길 바란다”라고 말한 에드워드 양 감독의 말처럼 <공포분자>는 그가 1980년대 대만에서 느꼈던 정서를 무수히 많은 컷에 새긴 시다.
현실적이며 영화적인 이야기
꿈과 현실, 여기에 소설이라는 허구의 이야기를 오가며 에드워드 양이 펼쳐놓은 대만의 파노라마는 리얼하면서도 영화적이다. 느리고 여백이 많은 이 영화엔 ‘필름’이 가진 힘이라는 게 느껴진다. 그러나 결국, 이 영화에 관한 사유를 유예하려 한다. 무척 감명받았지만, 무엇에 감명을 받았는지 쓸 능력이 없다. 아직은 이 파노라마의 작은 부분조차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버겁다. 영화 속 소년이 이어붙인 사진이 거대한 소녀의 얼굴이 되고, 그 조각들의 합에서 그녀의 경계심과 불안함을 드러내듯 <공포분자>도 당대 대만이 거대한 공포를 담고 있었으리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엄청난 러닝 타임을 자랑하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비롯해 <타이페이 스토리>와 <공포분자>를 묶어 에드워드 양 감독의 ‘타이페이 3부작’이라 한다. 이들과 함께 언젠가 ‘그와 <공포분자>에 관해 깊은 사유를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 혹은 다짐하며 부끄러운 미완성의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