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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 사랑은 결혼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닌 걸까

주의 1. <결혼 이야기>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 2. 혼란스러운 감상이 섞인 잡문이 될 예정입니다.


<결혼 이야기>를 어떤 이야기라고 규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결혼’에 관한 이야기도, 사랑하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로 한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혼’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지만, 뜻밖의 지점에서 사랑이란 감정이 튀어나와 혼란을 준다. 감정의 복잡함을 표현한 영화고, 배우의 연기가 중요하며 돋보인 영화였다.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에 매료되었으며, 그들이 만든 감정이 지나간 자리엔 어떤 씁쓸함만이 남아 이렇게 뭔가를 쓰게 한다.

<결혼 이야기>는 이혼의 과정을 통해 결혼의 시작과 끝을 담았다. 제목에 배신감을 느낄 정도로 결혼 생활엔 관심이 없는 영화다. 카메라는 이혼을 앞둔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찰리(아담 드라이버)를 오가며, 이 두 사람이 왜 결혼했고, 이혼하려 하는지 찾아 헤맨다. 균형 잡힌 카메라의 시선은 관객이 니콜과 찰리 모두에게 이입할 수 있게하며, <결혼 이야기>는 이들 중 누가 더 잘못했는가를 따지려는 구도에서 벗어난다.

영화엔 뉴욕과 LA의 거리만큼이나 달랐던 두 사람이 있을 뿐이고, 결혼이란 제도가 이 다름을 가리고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처럼 니콜과 찰리는 거의 모든 게 달랐다. 복잡한 뉴욕과 그보다는 한적한 여유가 있는 켈리포니아, 작품 전체를 창조하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연출가 찰리, 캐릭터에 몰입해 감정적 경험을 공유하는 감성적인 배우 니콜. 이혼의 과정에서 서로 맞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알면 알수록 두 사람은 함께 하기 힘든 배경과 성격을 가졌다.

이 두 사람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건 ‘사랑’이라는 것인데, <결혼 이야기>에선 니콜의 사랑이 더 잘 드러난다. 니콜은 LA를 떠났고, 자신의 커리어를 중단하면서까지 찰리를 사랑했다. 찰리가 강요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니콜은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 이를 당연하다 생각한 듯했고, 찰리는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부류의 인간이다.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 둘의 관계에선 조금 다른 뉘앙스로 다가가야 한다.

영화 내내 알 수 있는 건, 니콜은 능동적이고 찰리는 수동적이란 거다. 그녀가 자신의 것을 정리하고 결혼을 시작했듯 이혼의 과정도 주도한다. 찰리는 남은 선택지를 쫓는다. 그렇게 <결혼 이야기>는 니콜이 찰리를 더 사랑했던 마음을 정리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여정이 된다. 이 때문에 영화에서 슬픔을 드러내는 것도 주로 그녀였다.

반대로 찰리는 슬픔보다는 분노와 당혹감과 마주한다. 그는 끌려다니는 이혼의 과정 속에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갑작스러운 아들과의 이별, 선택지가 없던 변호사 등 믿었던 아내에게 계속 뒤통수를 맞는다. 니콜에게 이혼은 사랑의 상실에서 오는 슬픔이라면, 찰리에게 이 이혼은 신뢰의 붕괴에서 오는 분노였다.

이 상실과 붕괴의 속도는 변호사들의 언어를 통해 가속화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더 상처가 되는 말을 고르려다 모두가 후회할 결과만 만든다. 어떤 건 언어로 튀어나왔을 때, 왜곡되고, 상처를 주며, 찌질하기도 하다. 변호사의 입을 통해 튀어나온 두 사람의 이야기가 그랬다.

그렇다면 <결혼 이야기>가 말하고 싶었던 건 뭘까. 영화는 찰리가 LA로 왔고, 니콜은 새로운 가정을 만들었으며, 이혼 이후에도 두 사람이 한 아이의 부모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찰리가 뉴욕을 떠날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는 건 조금 특별하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좀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영화의 마지막에 찰리는 니콜이 자신에 관해 썼던 글을 읽는다. 이는 영화의 시작, 즉 본격적인 이혼이 진행되기 전에 서로에게 썼던 글이며, 결국은 전달되지 못했던 감정이다. 뒤늦게 본 글에서 찰리는 니콜이 자신을 많이 사랑했었다는 진심을 봤고,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많은 게 스치는 장면이다. 그걸 미리 읽었다면 두 사람은 달라졌을까. 니콜은 이혼을 원치 않았을까. 찰리에게 이혼의 과정은 마지막 기회였을까.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역전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영화의 시작엔 니콜이 찰리를 더 사랑하고 있었지만, 마지막엔 장면에서는 찰리가 니콜의 사랑을 깨닫고, 그녀를 더 사랑하게 되며 끝난다. 찰리는 이제 뉴욕을 떠날 수 있을 만큼 변했고, 니콜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그들을 묶어주고 있지 않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사랑을 인지하지 못한 채 유지될 수 있는 결혼. 그리고 결혼이 끝난 후에 시작된 한 남자의 안타까운 사랑. 결국, <결혼 이야기>는 결혼과 사랑의 타이밍이 다를 수 있으며, 이 두 가지가 서로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님을 말한다. 결혼한 상태임에도 서로의 사랑을 잊거나 모를 수 있고, 결혼이 깨져도 사랑이 시작될 수 있다는 복잡함. 이렇게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가 <결혼 이야기>엔 있다. 부유하는 혼란과 어지러움을 벗어나고자 서둘러 펜을 놓아야겠다.

키노라이츠 매거진 편집장 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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