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탄생>은 종교인이 아니라 역사책으로 알고 있던 김대건 신부의 일대기를 영화로 볼 수 있는 기회다. 1836년부터 1846년까지 10여 년의 청년 김대건을 만나는 대서사시다. 현대적 관점에서 짚어 본 신부 김대건의 전기 영화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은 영화다. 김대선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최초의 극영화로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되었다. 한국 영화 최초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바티칸 교황청에서 시사회를 했다. 2021년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기념 인물로 선정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종교인은 마더 테레사 수녀에 이은 두 번째이며, 우리나라에는 정약용과 허준에 이은 세 번째 인물이다.
열정 많은 청년 김대건의 얼굴
15세 김대건은 어릴 적 부모의 권유로 신학생이 된다. 천주교의 박해가 심한 조선을 피해 마카오 유학길에 올라 수학했고, 필리핀, 청나라 등을 돌아다니며 국제 정세를 파악했다. 중국의 아편전쟁을 보며 조선의 앞날을 내다보기도 했다. 그렇게 밖으로 떠돌던 청년 김대건은 10여 년 만에 어렵게 조선 땅을 밟는다. 하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길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동아시아 중 가장 늦게 천주교의 손길이 닿은 조선. 천주교는 조선에 학문으로 먼저 들어왔다. 양반들이 배움을 깨치기 위해 연구하다 종교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평등사상은 유교 사회와 심한 갈등을 유발했고 평민, 천민, 여성 사이에서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국내최초 바티칸 교황청에서 시사회를..
영화는 종교적인 색깔보다 19세기 조선 근대화 역사 혼란스러운 상황을 한눈에 정리하고 있다. 신분과 계급의 나라에서 평등과 존엄을 전파하다 스물다섯에 순교한 일대기와 당시 조선과 중국의 사정, 대항해 시대 서구 열강의 동아시아 침략의 역사를 파악할 수 있다. 신문물이 들어오던 시기, 다양한 세계인을 만나게 되는 설레지만 낯선 상황을 김대건의 눈으로 들여다본다.
성인이나 위인으로만 알고 있던 김대건 신부를 인간으로 만나보는 시간이다. 세계지도를 번역한 언어 천재이자 서해를 횡단한 모험가. 측량에 관심 많던 지리학자, 물건의 가치를 파악할 줄 아는 무역가, 위계질서가 강했던 유교 사회 조선에서 박애주의를 중심으로 평등한 나라를 꿈꾸던 선각자였다. 세계인과 대화가 통할뿐더러 그들을 통솔하는 글로벌 리더로서 진두지휘했다.
조선 최초의 사제이면서 근대화에 힘쓴 개혁가의 모습도 보인다. 그냥 ‘신부’로 갇혀 있기에는 너무 아까웠던 스물다섯의 청년이었다. ‘길은 걸어가면 뒤에 생기는 것’이라던 개척정신과 ‘바다는 모르면 공포의 대상이지만 알면 길이 되어준다’라며 세계를 누비던 거침없는 포부가 전해진다.
김대건 신부를 연기한 윤시윤의 맑은 얼굴을 볼 수 있다. 영화를 본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인의 얼굴을 가졌다”라며 극찬했다. 어리바리하고 장난기 많은 댕기머리 도련님부터 조선 최초 신부가 되어가는 모습이 경건하게 다가왔다. 무려 5개 국어(한국어, 영어, 불어, 라틴어, 중국어) 대사로 연기한 노력이 엿보인다. 또한 영화를 위해 짧은 분량도 마다하지 않고 출연한 배우를 찾는 재미도 포인트다. 안성기는 혈액암 투병 중에도 영화를 향한 열정으로 진정성 있는 연기를 펼친다.
마지막으로 <탄생>을 재미있게 봤다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사일런스>를 추천한다. 17세기 일본에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들어온 신학자들의 삶과 죽음 그 갈림길에서 종교인과 인간 사이의 갈등을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