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놉>은 ‘눈’이라는 시각을 관장하는 인체 기관을 통해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말한다.
영화 속 인물들이 하늘 위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면서 관객이 카메라(눈)로 찍은 영상을 바라보는 제3의 눈이 된다. 본다는 것의 확장 즉,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타인의 눈에 비친 나를 바라볼 때의 다양한 관념이 담겨있다.
조던 필 감독은 <겟 아웃>을 지나 <어스>로 시각적 세계관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공간과 메시지를 넓혀 동물과 인간, 인류와 외계 생명체의 관계를 조명한다. 등장인물은 전작 보다 단조롭지만 세계관은 훨씬 넓다. 표면적으로 인종차별을 논하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 담긴 수많은 계급의식, 쇼비즈니스의 폐해를 다루고 있다.
호러와 SF, 서부극의 기묘한 조합이다. 공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에서 출발하며, 본질은 대상을 보여줄 듯 말 듯 긴장감을 주다가 마지막에 전체가 드러나며 터지는 쾌감에 있다. 관객은 이건 영화일 뿐 안전한 극장에 앉아 있다는 안도감에 적응하게 두었다가 뒤통수치는 후반부가 짜릿하다.
장르 영화의 뻔한 공식을 따르지 않아 신선하고 날 서 있다. 그게 조던 필 작품의 매력이자 시그니처다. 감독이 좋아하는 영화를 향한 오마주 장면도 찾아볼 수 있다. 특정 장면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미지와의 조우>, <E.T>, <죠스>를 떠오르게 하며,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캐리>도 연상된다. 달리는 기수는 19세기 영국의 사진가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의 작품을 인용한 것이다. 기수가 진짜 흑인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충분히 조던 필 유니버스에서 상상해 봄직하다.
나와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의 두려움은 <어스>에서 그것이 나인지 타자인지 질문하는 길을 터줬다. ‘어스(US)’가 미국 (United States)의 약자라는 말처럼 ‘놉(NOPE)’은 ‘아니다’라는 뜻과 외계의 것(Not Of Planet Earth) 즉, 지구의 것이 아니라는 약자라는 은유라 볼 수 있다. 이런 해석은 지극히 개인의 것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조던 필 감독은 늘 작품의 다양한 해체를 원해왔다.
과거의 영광에 취한 사람들
평화롭던 말 목장은 6개월 전 의문의 사건으로 침체된 분위기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동전에 맞아 아버지(키쓰 데이빗)가 사망했다. 슬픔과 충격이 채 가시지 않던 OJ(다니엘 칼루야)는 헤이우드 목장을 일으켜 세워야만 한다. 그 소식을 듣고 타지에서 귀환한 동생 ‘에메랄드(케케 파머)’는 축 처진 오빠를 토닥이며 활기찬 모습으로 목장을 누비기에 바쁘다.
둘은 겉으로는 티격태격하는 듯 보여도 우애 좋은 남매다. 어린 시절 OJ는 아버지의 차별에도 불구하고 에메랄드를 물심양면으로 챙겨주었다. 이제는 세상에 단둘뿐인 피붙이다. 그들은 할리우드를 관통했다는 자부심이 크지만 지금은 그저 그런 위치에 있는 집안이다. 언젠가 다시 부흥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영화를 찍을 형편도, 유명해질 계기도 찾아오지 않는 외딴 말 목장 주인일 뿐이다.
한편, ‘주피터 파크’에는 ‘리키 주프 박(스티븐 연)’ 가족이 살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할리우드에서 알아주는 아역 스타였다. 하지만 TV 쇼 출연 중 예기치 못한 상황에 휩쓸렸고 혼자만 살아남았다. 현재는 연예계에서 물러나 자신의 이름을 건 서부극 테마파크를 운영하며 쇼를 보여주며 생계를 잇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세 사람은 하늘 위 이상한 현상을 보게 된다. 움직이지 않는 구름, 구름 너머 있는 게 UFO라 확신한다.
명성을 얻고 싶다는 욕망
영화는 총 다섯 챕터로 구성되며 인물과 메시지를 명확하게 따라간다. 먼저, 백인 위주의 시스템에서 밀려난 유색인종의 반격을 보여준다. 말 조련사로 일하는 헤이우드 가(家)는 할리우드와 함께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초의 영화라 할 수 있는 2초짜리 활동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고조부라는 것. 업계가 인정하기 싫다고 해도 미국 영화는 흑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헤이우드 목장은 할리우드의 유일한 흑인 소유 말 조련장이자 영화의 역사적 기여자다.
하지만 변두리로 밀려났다. 안정적인 말 출연 계약을 따내야 그나마 먹고사는 신세다. 따라서 남매는 모두의 관심이 쏠리기 전에 하늘에 떠 있는 그것을 반드시 찍어야만 한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야 함은 물론이고 이 영상으로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고 싶다. 지구를 구하는 위대함 따윈 관심 없다. 그저 핫한 머니샷을 찍어 성공하고 싶을 뿐이다.
두 번째는 관심을 먹고 사는 현대인을 향한 비판이다. 셋 다 전성기를 되찾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다. 주프는 잔혹한 과거에서 살아남은 운을 또다시 믿었다. 그날 이후 완전히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배제되었지만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내다. 반면 헤이우드 남매는 운보다 노력으로 승부하려고 했다. 먼저 그것의 정체를 알아챘고 소유하려 하다가 실패한 주프를 통해 깨닫는다. 그것은 인간이 절대 가질 수 없는 존재였다. 아버지 밑에서 오랫동안 동물을 조련해온 OJ는 이 사실을 직감했다.
헤이우드 남매는 동물 조련사의 경력을 제대로 써먹는다. 할리우드의 관행과 차별에 익숙했기 때문일까. 그것을 소유하지 않고 길들이고자 했다. 집요한 모니터링으로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영민한 혜안으로 카메라를 설치해 증거를 남겼다. 습성만 잘 안다면 세상에 길들일 수 없는 생명체는 없다고 믿었던 게 적중했다. 수동 아이맥스 카메라까지 대동한 촬영감독 홀스트(마이클 윈콧)의 욕망까지 끌어모았다.
앞서 말한 눈과 카메라는 나아가 입, 구멍으로 확장된다. 상대와 눈을 마주치면 뭐든 담아내는 렌즈는 흡사 UFO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거대한 눈이자 입이다. 조리개를 닮은 형상은 기괴해서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먼지를 흡입하듯 하늘 위 그것은 지상의 것을 모조리 빨아들인다. 보이는 것을 찍는 카메라와 보이는 대로 먹어 치우는 청소기. 남매는 그것을 철저히 상품 가치로 여긴다. 반드시 찍어서 오프라 쇼에도 나가겠다고 다짐한다. 인플루언서가 되려다가 오히려 폭망한 사람들의 말로가 재현되는 듯 보인다.
IMAX 포맷에서 극대화되는 공포
영화는 광활한 서부지역의 말 목장이 배경이지만 관찰당하고 있다는 관음적 시선으로 꽤 답답하고 폐쇄적이다. 대자연에 있지만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이 갇혀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분위기가 러닝타임 내내 지속되어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미스터리한 정체는 진중한 OJ의 성격처럼 서서히 까발려진다. 그럴수록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과 조바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러닝타임 중 40여 분이 아이맥스 촬영으로 이루어져 최적화된 포맷으로 즐긴다면 온전히 영화적 체험과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겠다. 사운드까지 극한 몰입감을 선사해 마치 그 공간에 초대된 듯 고압적이다. 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테넷>을 함께 한 호이트 반 호이테마 촬영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결과다. 15/65mm의 상징적인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해 몰입감에 일조했다. 반드시 IMAX 관에서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