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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 연기와 연출 모두 잡은 이정재 감독 데뷔작

팬데믹 이후 본격적인 극장 활성화 시기, 텐트폴 영화의 네 번째 작품 <헌트>는 제75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진출 작품이다. 여름 시장에는 소위 관객을 모을 수 있는 대표 선수를 매치하는 게 관례다. 스타 감독과 배우가 총출동하고 제작비도 최고치를 경신한다. 그중 <헌트>는 이정재 배우의 감독 데뷔작이란 이유로 기대치가 낮았었다. 솔직히 좀 의아한 대표 선수였다. 지난 5월 칸 현지의 호불호 반응도 그렇고, [오징어게임]의 명성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우려와 달리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놀라운 작품이었다. 조심스럽게 빅 4 대전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르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단 한 순간도 늘어지지 않는 긴박함,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무한한 상상력, 치밀한 각본과 구멍 없는 배우의 호연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당연히 유럽 현지 반응이 이해되었다.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정서를 건드리면서 첩보 액션의 진수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이정재 감독은 칸영화제의 불호 평가를 적극 수용했다. 두 남자의 심리 변화를 관객도 느낄 수 있게 재편집했다. 확연히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후반부 변화된 행동을 납득 가게 하면서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했다. 편집의 힘을 재확인하는 마법이라 할 수 있다.

이 안에 두더지가 있다!

1980년대 대한민국 안기부. 3년 전 서로 다른 사건으로 심적 변화를 맞이한 두 사람은 껄끄럽게 재회한다. 80년 광주에서 학살을 목격했던 군인 출신 김정도(정우성)와 일본에서 활동했던 박평호(이정재)는 호시탐탐 서로를 저격할 빌미를 찾기 위해 안달이었다.

그러던 중 해외팀 박평호와 국내팀 김정도는 조직 내 동림 색출 작전에 열 올리게 된다. 누가 누구의 뒤통수를 먼저 칠 것인가. 오늘의 동지도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는 야만의 시대에는 선뜻 예측하기 어려웠다. 두 남자는 서로를 향해 헛다리짚게 되면서 더 큰 야욕을 부르고, 비밀이 노출되면서 고비에 직면하게 된다.

두 팀은 각자를 용의선상에 두고 경쟁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생각지도 못한 대한민국 1호 암살 사건에 휘말리며 의심과 경계, 신념을 건 작전이 한순간에 터져버린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모든 것이 전복되고 어디로 흘러갈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을 속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배우가 만든 영화 중 최고의 제작비

<헌트>는 이정재 정우성의 23년 만의 만남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1999년 <태양은 없다> 이후 오랜만에 호흡을 맞추었다. 두 사람의 아름다운 투샷을 떠나 이야기가 탄탄하다 보니, 미장센과 화려한 액션이 눈에 들어온다. 온전히 러닝타임에 빠져들어 집중하면서도 재미까지 추구할 수 있어 놀랍다. 연출에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동림 색출 사건 이후 예상외로 치닫는 반전이 극적 쾌감까지 잡아냈다.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져 예견된 파국으로 치닫는 듯 보였다. 속아주는 건지 진짜 속는 건지 알 수 없는 심리전이 계속되며 가족과 팀원을 지켜야 하는 위기와 맞물려 쉴 틈 없이 돌아간다. 쉽게 답을 주지 않고 엎치락뒤치락하는 동림 색출의 긴장감은 결말까지 이어진다.

과연 영화의 피사체에서 적극적인 주체가 되고 싶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처음 <헌트>의 배우로 제안받았던 이정재는 각본을 읽다 매료되어 제작을 결심했다. 4년간 공들인 각색을 통해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했다. 거기에 평소 절친한 사이인 정우성과 연기까지 잡은, 그야말로 성공적인 데뷔작이라 할만하다.

30년 관록이 묻어나는 노련한 배우의 감각이 제대로 응집되어 있다. 최근 김윤석, 조은지, 하정우, 정진영, 문소리 등 감독으로 변신한 배우 중 230억 원 제작비를 쓴 연출자가 되었다. 눈을 뗄 수 없는 오프닝과 클로징의 위력이 상당하다. 무엇보다 배우를 빛나게 하는 연출력이 돋보인다. 배우 출신답게 살아 숨 쉬는 입체적인 조. 주연 빌드업이 인상적이다.

특별출연의 의미를 재정의하기도 했다. 이정재와 정우성과 한 번이라도 옷깃을 스친 인연이라면 단 한마디 대사 없이도 출연에 응한 톱스타 찾기도 빠질 수 없겠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배우가 등장해 놀라움을 안긴다. 영화계 오랜 관록이 드러나는 인맥관리 면모도 들여다볼 수 있다.

절대적으로 믿었던 서로의 신념이 흔들리는 3년 전 사건 및 실제 역사를 재해석하는 영리한 선택이다. 역사와 상상이 만난 시너지를 이룬 사례다. 신념과 대의는 달랐으나 공통의 목표를 좇던 두 사람은 대통령 암살 앞에서 폭발하고야 만다. 스파이 영화에서 가장 큰 관건은 믿음과 배신이 점철되는 반전이다. 초반에 탄탄한 서사를 쌓아 올려 후반에 터트리는 호기, 먹고 먹히는 관계가 잘 빠진 상업영화가 <헌트>다. 이정재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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