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잡아줘>는 흥미로운 두 얼굴을 지닌 영화다. 이야기의 구성만 보자면 설레는 로맨스의 아련함을 지니고 있다.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한 연애세포는 다 죽었다 여긴 직장인 마츠코가 연하남 타다와 썸을 타게 되면서 벌어지는 순간들을 담아낸다. 직장생활은 만렙이지만 연애에서는 서툴기만한 뚝딱거리는 마츠코와 마츠코 못지않게 연애는 초보인 타다의 모습이 순수하고 풋풋한 모습으로 재미를 준다.
그 이면에는 마츠코가 내면에 만들어낸 또 다른 자신인 a가 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분신친구를 만들어내듯 마츠코는 연애를 비롯해 힘든 순간이 생길 때마다 남자 목소리의 a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 a는 극중 두 가지 역할을 한다. 마츠코와 만담 콤비를 형성하며 코믹함을 더한다는 점과 마츠코가 남들에게는 이야기하지 못하는 내면의 상처와 두려움을 품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이면의 또 다른 심리를 반전의 요소로 활용하는 작품들과 달리 <나를 잡아줘>는 최근 일본 소설원작 작품들이 선보이는 흐름을 따라간다. <구름 위에 산다>, <사랑이 뭘까>, <별의 아이> 등 최근 일본 소설원작 작품들은 사건을 통한 감정적인 격화보다는 한 인물의 표면적으로는 잔잔하지만 내면에서는 마치 태풍처럼 요동치는 심리를 따라간다. 이 심리에는 서로 상반되는 요소가 작용한다.
<구름 위에 산다>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순을 주인공이 거주하는 두 공간을 통해 표현한다. 이사한 고층빌딩과 1층 건물인 직장은 이런 모순의 간극을 표현하는 키워드로 작용한다. <사랑이 뭘까>에서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헌신하나 외부에서는 자신과 같은 사람을 호구로 본다는 사실에 고민하는 한 여성의 모습을, <별의 아이>에서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부모를 사랑하는 딸의 갈등을 그려낸다.
<나를 잡아줘> 역시 연애 없이 혼자서도 잘 살아가고 싶지만 내면에는 사랑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을 품고 있는 마츠코가 타다를 향한 마음의 갈등을 보여주는 내용을 주로 다룬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타다와의 직접적인 충돌 대신 주변 인물 또는 본인 내면의 심리갈등을 보여주며 잔잔함 속에 격렬한 심리드라마를 그려낸다. 때문에 늦깎이 사랑의 설레는 로맨틱 코미디만 생각한다면 예기치 못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이 작품의 심리 드라마와 비슷한 작품으로는 카호와 심은경이 주연을 맡았던 <블루 아워>를 들 수 있다. 이 영화에서 CF 감독인 스나다는 일상에 지쳐 친구 기요우라와 함께 고향을 향한다. 줄거리만 보자면 마치 <리틀 포레스트>처럼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힐링을 즐기는 무공해 영화처럼 보인다. 허나 극의 중반부 이후 스나다 가족의 이상한 행동과 이들로 인해 스나다가 마음에 상처를 품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 여행의 과정이 내면의 치유였음을 드러낸다.
마츠코는 내면의 상처 때문에 a라는 인물을 만들어냈으며 겉으로는 굳세고 독립적인 존재처럼 보이나 실상은 타인에게 또 상처를 입을까봐 거리를 두며 스스로를 외로움에 가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아픔이 사회 초년생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문제임을 보여주며 마츠코의 심리가 특별한 것이 아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독과 슬픔임을 조명한다. 앞서 <블루 아워>처럼 오오쿠 아키코 감독은 여성감독 특유의 섬세함으로 이런 여성의 심리를 그려낸다.
시점에 따라 마츠코의 아픔이 심리적인 나약함으로 비춰질 우려도 있다. 소설에 비해 영화는 거창한 사건이나 갈등이 있어야 한다는 기대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는 마츠코가 a에게 격렬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절규하는 장면이나 이탈리아에서 혼인생활을 하는 친구가 낭만과 함께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조금 더 마츠코의 내면에 다가설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한다.
이런 마츠코의 캐릭터는 주연배우 논을 만나 더 큰 힘을 얻게 된다. 마치 원작이 논을 주인공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착각이 들 만큼 마츠코에게서는 논의 얼굴이 보인다. 논은 드라마 <아미짱>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영화 <핫로드>와 <해파리 공주>가 연달아 히트를 치며 일본의 국민여동생으로 자리매김했다. 허나 소속사 내부 직원들의 알력다툼으로 제대로 연기활동을 할 수 없었고 소속사의 모함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까지 얻게 되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원 소속사를 나오면 제대로 된 연예계 활동을 할 수 없는 일본 엔터사업의 악습 때문에 논은 2014년 <해파리 공주> 이후 원치 않게 연기활동을 할 수 없었다. 본명인 노넨 레나 역시 원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쓰지 못하고 가명인 논으로 활동 중이다. 이 과정에서 논이 느꼈던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두려움과 고통, 염증이 마츠코의 캐릭터에 담겨 있는 기분이다.
때문에 마츠코가 a를 부르며 관계에서 오는 두려움에 대해 호소하는 장면은 깊은 몰입과 함께 슬픔을 보여준다. 마치 인생캐릭터를 만난 거처럼 설렘부터 공포까지 모든 감정을 완벽하게 담아내는 논의 얼굴은 마츠코 그 자체임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로맨스부터 심리 드라마까지 폭 넓은 감정을 담아낼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캐릭터의 몰입에 있다. 공감을 넘어 응원을 보내게 만드는 힘이 논이 연기한 마츠코에게 있다.
<나를 잡아줘>는 ‘정말’ 연애세포를 깨워줄 영화라 할 수 있다. 달달한 장면이나 선남선녀 주인공보다 현대인에게 더 필요한 연애세포는 내면의 두려움을 끄집어낼 줄 위로다. N포 세대라 불릴 만큼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아가는 현대인은 여기에 더해 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염증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큰 용기를 지녀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여긴다. 이 영화가 건네는 응원과 용기는 그 어떤 로맨스 영화보다 따뜻한 온기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