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터를 켜라 #4 – 아이리시맨
라이터를 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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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영화는 테마파크를 닮았다. 그건 영화가 아니다. 감정적인 경험을 다른 인간에게 전하려고 애쓰는 영화가 아니다.” 최근 할리우드 최고의 이슈는 마블 영화에 관한 논쟁이었고, 거장 마틴 스콜세지는 이에 거침없는 쓴소리를 뱉었다. 켄 로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등의 감독도 이에 동참했고, 마블은 더욱더 뜨거운 감자가 되어가고 있다.
테크놀로지의 발달, 거대 기획사 중심으로 재편된 영화 제작 시스템, 그리고 관람 문화의 변화는 전통적인 영화의 기준을 위협한다. 한 예로 <알리타>는 배우 없는 영화의 가능성을 말했고, 넷플릭스는 영화관이란 성역에 도전했으며, 마블은 20편이 넘는 조각으로 하나의 연대기를 만들며 한 편의 영화가 가진 제약에서 벗어났다. 필름 시대부터 영화를 만들어 온 마틴 스콜세지의 입장에서 이는 낯선 광경이고, 어떤 건 그가 지켜왔던 ‘시네마’의 본질을 무너뜨리는 요소일 수 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마틴 스콜세지의 신작 <아이리시맨>은 마블 영화와 무엇이 달랐을까.
Green: 감정적 경험의 공유를 위한 시네마
Red: 엄청난 상영 시간
테크놀로지의 활용
<아이리시맨>에선 노년의 로버트 드 니로가 청년의 얼굴로 활약하는 걸 볼 수 있다. 안티 에이징을 위해 최첨단 CG 기술을 동원했고, 그렇게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을 구현했다. 스펙터클과 화려함을 전시하기 위해 마블이 그린 매트로 CG를 활용하는 것과 달리 <아이리시맨>은 인물이 겪는 인생의 변화를 한 번에 보여주기 위해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렸다. 로버트 드 니로와 알파치노의 위대한 연기를 젊은 시절의 이미지로 볼 수 있다는 건 무척 설레는 일이다.
마블 역시, <캡틴 마블>에서 닉 퓨리(사무엘 L. 잭슨)의 젊은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CG를 활용했지만, 그 시대의 감성과 이미지를 전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마틴 스콜세지의 말을 빌리면, 복고 테마파크를 위해 필요했던 장치였다. 이와 비교해 <아이리시맨>은 한 조직의 흥망성쇠와 한 인물의 희노애락이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CG를 활용했다. 덜 화려하더라도 묵직함과 울림만큼은 마블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복잡한 삶을 담은 이야기
마블 영화는 영웅 신화의 구조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영웅의 탄생과 성장의 서사를 보여주는데, 중간에 조력자가 있고 중요한 관문을 통과하며 영웅은 강해진다. 그러다 죽음에 가까운 패배를 통해 성숙하고, 이후에 결국 승리한다. 20편이 넘는 마블 영화는 모두 유사한 전개를 보였고, <아이언맨> 1, 2, 3처럼 시리즈물에도 공식화된 경향성이 있다. 이는 어떤 ‘장르’보다도 큰 틀인데, 마블 스튜디오는 이 구조를 반복하면서도 세련되게 변주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아이리시맨>은 마블 영화처럼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전개를 택하지 않는다. 선과 악, 혹은 아군과 적군이 명확하지 않으며, 극의 주인공 역시 생존을 위해 까다로운 선택을 해야만 한다. 조력자가 적이될 수 있고, 어제의 적이 조력자가 되는 조직의 세계에서 주인공에게 정의라는 가치만큼 무의미한 것은 없다. 쉽게 구분할 수 없고, 공식처럼 구조화할 수 없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 말하는 마틴 스콜세지의 생각과 철학이 보이는 부분이다. 덕분에 영화에서 더 복잡하고 아이러니한 삶의 단면을 목격할 수 있다.
어마무시한 상영 시간
<아이리시맨>이 최근 영화와 가장 다른 건 209분이란 상영 시간에 있다. 최근엔 거의 볼 수 없던 사이즈의 영화다. 마틴 스콜세지는 최근 경향을 거스르면서까지도 완결된 이야기, 단 한 편의 이야기로 모든 걸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시도했다. 하나의 서사를 20편이 넘는 영화로 쪼개서 시리즈화한 것과 달리 하나의 인생을 단 하나의 영화로 보여주려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갖출 것을 잘 갖췄다면) “이야기는 길면 길수록 좋다”고 했지만, 최근엔 극장의 회전율 때문에 영화엔 보이지 않는 시간의 제약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틴 스콜세지는 <아이리시맨>처럼 긴 것도 영화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혹은, 이 때문에 넷플릭스라는 제약이 없는 새 플랫폼에 도전했을 수도 있다.
키노라이츠 예상: 초록불
<아이리시맨>이라는 작품은 마틴 스콜세지가 보고 기억한 영화라는 것을 기록하고, 지키기 위한 영화 운동에 가깝다. 마틴 스콜세지가 직접 관통했던 시대를 담으며, 자신만의 <대부>이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만들었다. 마블 영화 이슈를 생각하며 <아이리시맨>을 관람하면, 잊히고 있는 ‘시네마’의 형식과 본질, 그리고 감성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마블 영화도 재미있지만, 영화라는 바다를 위해서는 여전히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가 필요하다는 걸 <아이리시맨>은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