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트>는 미궁 속을 걷는 듯한 영화다. 인물들의 행동은 완벽히 설명되지 않고, 관객은 그저 그들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들이 변하고, 심연에 갇혀 울부짖는 짐승이 되는 걸 목격할 수 있다. 살인범을 잡기 위해 그보다 더 지독하게 변해야 하는 인물들, 그리고 그보다 더 지독한 영화엔 ‘징글징글’하다는 표현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
지난 25일 진행된 메가 토크는 이 불친절한 영화에 다가가는데 좋은 기회였다. 배우들은 불확실한 인물에게 어떻게 이입했는지, 그리고 감독은 어떤 의도로 영화를 연출했는지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 시간 속에서 <비스트>에 조금 더 알 수 있었고, 키노라이츠 매거진에서는 그 현장에서 오갔던 이야기 중 일부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비스트>의 관람 포인트도 함께 꼽았다.
본 기사는 25일 진행된 <비스트> 메가 토크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스포일러가 되는 내용은 배제했으며, 맞춥법 등 일부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Q. <비스트>에 출연한 이유
이성민: 이정호 감독의 작품에 모두 출연했고, 감독님 작품은 무조건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비스트>는 사건보다는 인물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30배는 힘들게 촬영한 영화다.
최다니엘: <방황하는 칼날>을 보고 ‘영화 같은 영화’를 봤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저런 작업에 참여하고 싶었다. 분량과 관계없이 감독님 영화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유재명: 익숙한 스릴러에 대한 선입견을 깨주는 영화라 좋았다. 그리고 인물에 과하게 가까이 다가가는 영화였고, 그래서 더 궁금했다.
▶ <비스트>는 <베스트셀러>와 <방황하는 칼날>을 연출한 이정호 감독의 영화다. 그는 연출 외에도 <간첩>, <탐정: 더비기닝>, <석조저택 살인사건> 등 다수의 영화에서 각색을 맡았을 정도로 스토리텔링에 재능이 있는 감독이다.
특히, <방황하는 칼날>은 아버지의 뜨거운 감정을 잘 묘사하면서, 동시에 차갑고 절제된 분위기의 연출을 보여 호평을 받았다. 정재영과 이성민이 보여준 연기도 찬사를 받았고, 이성민의 얼굴이 처음으로 영화 포스터에 등장한 작품이기도 하다.
<비스트>는 <방황하는 칼날>에 이어 이성민과 이정호 감독이 함께 작업한 작품이다. 전작에 이어 이성민이 보여줄 극한의 감정 연기 및 장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이정호 감독의 연출이 보여줄 앙상블이 기대되는 영화다.
Q. <비스트>는 어떻게 연출된 영화인가?
이정호 감독: 인물들을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고 감정이 피폐해지는 걸 담으려 했다. 인물과 스토리 모두 묵직한 이야기다.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 멋진 분위기의 누아르가 될 수도 있지만, 관객이 보다가 지쳐서 나갈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 자체의 분위기를 조금 더 올리는 방법을 고민했고, 동시에 익숙한 느낌을 배제하려 했다.
의외로 실내 경찰서 장면이 아주 어려웠다. 큰 움직임 없이 시선의 엇갈림과 공기 중에 떠도는 감정을 담아야 했다. 정적이면서 긴장감과 감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많이 고민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다른 기교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편집을 발로해도 느낌이 좋았을 정도로 멋진 연기를 보여줬다. 다른 미사여구가 필요 없는 연기였다.
▶ <비스트>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영화로 충격적인 사건이 다수 등장한다. 사건을 풀어가는 스릴러 영화의 색깔이 잘 살아있으며, 긴장감도 상당한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건보다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더 집중한다. 한수(이성민)의 꼬여가는 상황과 극단적 선택, 그리고 민태(유재명)와의 충돌을 흥미롭게 표현한 독특한 분위기의 영화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성민: 극 중에 목을 조르는 장면이 있었다.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은 상대의 목을 조르는 장면인데, 감독님이 그 씬을 상당히 많이 찍었다. 당시엔 왜 그렇게 많은 테이크를 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감독님도 그때 한수라는 인물의 감정에 확신이 없던 것 같다. 몇 번째 테이크를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컷이 잘 붙었고 감정이 잘 전달된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정말 힘들었다. 엔딩을 촬영하는 시간이 다가오면서 걱정이 많았다. 영화의 중반부에 이미 엄청난 감정을 소모했는데, 마지막엔 어느 정도로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감독님에게도 물어봤지만, 감독님은 ‘나도 모르겠다’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그 마지막 씬을 징글징글하게 촬영했다. 마침 그 촬영 때 실핏줄이 터졌고, 덕분에 감정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유재명: 역시, 엔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전체적으로 무척 힘들었던 영화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면 고민하겠지만, 지금은 좋은 추억이 되어 있다. 다른 영화와 달리, 많은 걸 열어두고 촬영했다. 무엇이 맞는지 많은 분과 고민하고 탐구하면서 찍었다. 엔딩에서도 인물들에게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고, 모든 것이 가능했다. 여러분이 본 엔딩은 그 많은 선택지 중 가장 담백하게 표현된 장면이다.
최다니엘: 첫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크랭크 인’하는 날 처음 촬영한 장면으로, 그냥 평범하게 걷는 간단한 연기였다. 그냥 걸었는데, 감독님이 ‘컷, 스웩을 좀 넣어봐’라고 하셔서 놀랐다. 첫 촬영이라 긴장을 풀어주려 장난치시는 줄 알았는데, 계속 스웩을 넣어보라고 하셔서 당황했다. 첫 촬영 때부터 연기가 어렵게 느껴졌다.
<비스트> 촬영 중 한 시상식에 가서 상을 받을 때도 ‘연기를 계속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재능이 없는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로 지독하게 촬영했던 것 같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고민할 수 있던 좋은 시간이었다.
▶ <비스트>는 배우들이 받은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영화로, 이는 그들이 연기한 인물의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다. 초췌하고 피폐한 인물들의 표정은 다른 어떤 대사보다 많은 걸 드러낸다. 심연에 갇혀 방황하는 인물들의 감정을 볼 수 있다는 게 <비스트>의 특별한 부분이며, 가장 매력적인 지점이다. 배우들에게 ‘징글징글’했던 현장은 스크린에서 빛을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