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 장편 영화상의 주인공으로 선정된 <호랑이 소녀>는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가장 높은 관심을 모은 장편 경쟁작 중 하나다. 말레이시아 출생의 아만다 넬 유 감독은 최근 여성 감독들이 선보이고 있는 유년시절의 경험과 감성을 바탕으로 한 섬세한 연출을 보여줬다. 독특한 점은 그 장르가 오컬트라는 부분이다. 이 작품은 신체의 변화에서 오는 혼란을 종교와 사회라는 배경을 통한 공포로 담아냈다.
12살 소녀 자판은 여느 사춘기 소녀처럼 활발하고 낙천적이며 약간의 반항심도 지니고 있다. 절친 파라, 마리암과 함께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그녀는 변화를 겪는다. 또래 친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생리가 찾아온 것이다.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이슬람교가 국교인 말레이시아의 학교는 자판의 예배당 출입을 금지한다. 이 사실이 소문이 나면서 남들과 다른 존재가 된 자판은 우정 이면에 열등감을 지녔던 파라의 주도하에 집단 따돌림을 당한다.
그리고 자판에게는 기묘한 변화가 벌어진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기다란 수염이 나며 손톱과 발톱이 길어진다. 흡사 호랑이와 같은 외형으로 변해가며 점점 야생성을 지니게 된다. 이런 자판의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악령이 들어갔다며 거리를 둔다. 이 지점에서 다수의 관객들은 이 생소한 말레이시아 영화에서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대표작을 떠올렸을 것이다. 클래식 공포영화 <캐리>가 그 주인공이다.
자판과 캐리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생리 현상을 겪는 순간 혼란을 느끼며 주변의 따돌림을 경험한다. 이 고통으로 인해 자판은 ‘호랑이 소녀’라는 외적인 변화를, 캐리는 염력이라는 초능력을 얻게 된다. 이 현상의 근저에는 종교가 자리 잡는다. 자판은 예배당에 출입을 금지당하며, 캐리는 종교에 미친 어머니에게 억압을 받으며 자신의 2차 성징이 죄악이라는 생각을 품게 된다.
생리는 과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심지어 불교에서도 불결하게 간주되어 왔다. 중세 유럽 시대까지 여성의 생리는 태초의 인류인 이브의 저주로 간주가 되었고 속죄를 위한 현상으로 인식되었다. 힌두교 국가인 네팔에서는 법적으로 금지되었지만 차우파디라는 관습이 있다. 여성을 생리 기간 동안 가족과 격리하는 악습이다. 이 관습은 초경을 시작한 뒤 여성을 오염된 존재로 여기며 생리적인 현상을 혐오의 대상으로 취급한다.
몸의 변화는 개인의 영역이지만 이에 대한 인식은 사회 그리고 집단의 반응에 큰 영향을 받는다. <캐리>의 도입부는 남들보다 늦게 생리를 시작하게 된 캐리가 학교에서 샤워를 하던 중 몸에서 피가 나자 당황하는 장면이다. 도움을 청하는 그녀에게 친구들은 놀림과 함께 생리대를 던지며 괴롭힌다. 주변에서 보이는 혐오의 반응은 내 신체가 오염되었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준다.
자판 역시 첫 생리 후 어머니와 교사에게 현상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하며 방황한다. 친구들의 따돌림 속 피 묻은 생리대를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우왕좌왕 거리는 모습도 보인다. 누구나 겪는 2차 성징의 발현을 오염과도 같은 혐오 현상으로 바라보는 안타까움은 신체적인 변화를 통해 강렬하게 표현이 된다. 호랑이로 변해가는 자판의 모습은 어른이 되어가는 몸에 대한 혼란과 공포를 보여준다.
호랑이는 두려움의 대상이자 신성함의 존재, 멸종위기종이라는 다양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사춘기 시절 신체변화에 대해 누구나 겪었을 두려움, 이 혼란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신성함, 남들과 다른 모습이더라도 그 자체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점 역시 강조한다. 성장 장르의 주제의식을 확고하게 다지며 오컬트 요소를 접목해 오락적으로 빠져드는 매력까지 갖추었다.
아만다 넬 유 감독은 유년 시절의 보편적인 기억을 종교의 특수성과 엮어 흥미로운 장르물로 풀어냈다. 신체적인 변화로 인해 친구, 가족, 집단에서 겪는 변화의 아픔이 지닌 보편성과 그 변화를 불결한 것으로 인식했던 종교의 특수성이 맞물려 독창적인 문법을 창조해냈다. 동시에 할리우드 영화가 떠오를 만큼 대중적인 시각에서의 만족감 역시 자아낸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가 선사한 가장 특별한 선물이라 칭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