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은 <그레이트 뷰티>, <유스>, <그때 그들>의 연출과는 확연히 다르다. 냉소적인 시각, 비판과 풍자를 곁들인 철학적인 주제와 미학적인 미장센으로 유명한 파올로 소렌티노의 최신작이라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특유의 세련된 감각과 강렬한 이미지는 살아 있다. 직접 각본, 연출, 제작까지 참여했으며 고향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찍은 자전적인 영화다.
데뷔작 <엑스트라 맨> 이후 정확히 20년 만에 나폴리를 배경으로 했다. 연어의 회귀본능과 맞먹는 완벽한 금의환향이다. 더불어 여행이 힘든 시기에 낮과 밤의 차이마저도 아름다운 나폴리의 반짝임을 그대로 옮겼다. 넷플릭스 영화지만 부산국제영화제 아이콘 부분에 상영되었다. 넷플릭스라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보기에는 아까운 천혜의 자연환경과 문화유적, 건축물이 선명하게 담겨 있다. 마치 80년대 나폴리로 타임머신을 타고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다.
한 소년을 통해 나폴리를 소개하며 힘들기도 했지만 행복했던 유년 시절을 곱씹는다. 특히 축구선수 마라도나를 신격화한 제목답게 그와 관련된 개인사가 생생하게 구축되었다. 소년이 마라도나를 인생 롤 모델로 삼는 이유, 왜 영화를 사랑하는지, 지금의 이탈리아의 거장이 되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과거 인터뷰에서 마라도나가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했던 이유가 등장한다. 최근 다큐멘터리 <디에고>를 봤다면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상황의 이해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까지 언급하지만 깊게 들어가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감독의 사적인 감정과 가족의 역사가 마라도나라는 실존 인물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말을 드디어 토해낸 결과물이다. 1984년 FC 바르셀로나에서 SSC 나폴리로 이적한 마라도나는 1987년 세리에 A의 첫 우승을 이끌며 나폴리의 국민영웅으로 등극했다. 신으로 불렸던 축구선수 마라도나가 살아있는 거장 파올로 소렌티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묘사가 이어진다.
고등학생인 파비에토는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랐다. 엄마와 아빠는 오랜 결혼 생활에도 변치 않는 사랑을 보여주는 닮고 싶은 부부다. 장난기 많은 소녀 같은 엄마와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내 바라기인 아빠를 보고 자란 파비에토는 언젠가 자신에게도 멋진 사랑이 찾아오길 꿈꾼다. 몰래 짝사랑하는 소녀에게 감히 말도 못 붙이는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열성적으로 축구를 좋아하고 마라도나를 동경한다. 그도 그럴진대 나폴리 전체는 마라도나의 이적 이야기로 들뜨기 시작했기 때문, 그를 우상처럼 여기던 파비에토도 덩달아 흥분한다.
파비에토 가족은 친척들과 동네 주민들과 자주 왕래하며 친분을 유지하는 돈독한 사이다. 서로 미워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사랑하고 아낀다. 가끔 폭력적인 이모부와 정신이 불안정한 이모네 집에 가는 것 빼고는 말이다. 겉으로는 관심 없는 척, 싫어하는 것처럼 보여도 깊은 걱정과 사랑이 가득한 나폴리안들이다.
하지만 불행은 언제나 행복을 매개로 찾아온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평온한 날, 마라도나의 경기를 보느라 가족 여행을 가지 않은 파비에토는 뜻밖의 비극을 접하고 실의에 빠진다. 생각지도 못한 부모님의 사고는 한창 감수성 예민한 파비에토의 삶을 뒤흔들어 버린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가혹한 현실을 벗어나고만 싶다. 태어나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 파비에토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항상 곁에 있어 줄 것만 같았던 갑작스러운 죽음은 상처와 성장을 동시에 안긴다. 영원할거라 생각했던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온전한 위로를 받지 못한 파비에토는 심연 속으로 파고들어 간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지만 눈물조차 나오지 않아 이내 삼키기만 했던 슬픔은 의외로 내면의 성장을 돕는다. 좋아하는 것, 꿈, 친구 등 무엇 하나 뚜렷하지 않았던 소년이 드디어 남성으로 성장하는 통과의례인 셈이다. 가족, 친지, 지인을 진심으로 파비에토가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돕는 한편, 마라도나를 통해 끈기를 배우게 된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고아가 된 소년의 성장에 모두가 일조한 셈이다.
<신의 손>은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가족과 고향을 향한 따뜻한 러브 레터다. 영화를 통해 재미, 고통을 안겨 줄 것인지. 아니면 메시지를 심어 놓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감독 역량의 시작을 목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