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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클라우드] 10초의 자유와 맞바꾼 목숨, 팬데믹을 예견한 영화

팬데믹이 장기화되고 있다. 2년째 접어든 팬데믹 이후 백신 접종으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로 인한 피로감은 커지고 있고 코로나 블루와 포스트 코로나의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 와중에 올해 부천국제영화제에서는 독특한 영화를 소개했다. 마치 팬데믹 상황을 예견한 듯한 영화였다. 감독은 그 상황 훨씬 이전에 만들었기 때문에 순전한 우연이지만 너무나 맞아떨어지는 시의성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해 본다. 우리의 삶은 그 이전과 이후에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리고 어떻게 흘러갈까.

짜릿한 하룻밤을 즐기던 지오바나(르나타 렐리스)와 야고(에두아르도 멘돈카)는 닿는 순간 10초 안에 사망하는 분홍색 구름 때문에 집 밖을 나갈 수 없다.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 국민의 외출을 금지했다. 기약도 없이 집에 있으라는 말만 반복한다. 방송에서는 원인을 밝히지 못한 채 구름과 접촉하지 말 것을 권고할 뿐이다. 답답하기만 한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시간은 흐른다.

지오바나와 야고는 몇 시간 전에 만난 사이지만 지금은 유일한 동지가 되어버렸다. 뭘 해야 하나 어색한 기류도 잠시, 상황을 파악해 보니 이쪽은 나은 편이었다. 지오바나의 여동생은 친구 집에 갔다가 발이 묶여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절친한 친구는 남편이 외출하고 돌아오지 않는다며 혼자 고립되어 버렸다고 토로한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야구의 집에는 나이 든 아버지와 간병인 둘뿐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 약도 얼마 남지 않아 걱정이다. 하지만 가볼 수도, 간병인 대신 돌봐 줄 수도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화상 전화를 걸어 상태를 확인하는 게 전부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평범하기 그지없던 일상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1년.. 2년.. 10년

오래 고립된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수영이나 파티 등 북적이는 공간에서 사람 간의 온기를 즐겼던 지오바나는 금단 현상에 시달린다. 제한된 공간에서 제아무리 발버둥 쳐도 갇혀 있다는 숨 막힘을 참을 수 없어 분노하고 뒤틀린다.

야외 활동에서 느꼈던 자유로움과 행복은 기억도 나지 않고 우울함과 폐쇄성이 짙어지기만 한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운동과 취미 생활도 해보지만 일시적일 뿐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 반면 야구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집안일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혼자 명상도 하고 다른 사람도 만나며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결국 동거인에서 커플, 부부가 된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던 지오바나는 어느새 엄마가 되었다. 아이에게 비극적인 세상을 선물하고 싶지 않아 반대했지만 몇 년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자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조금만 있으면 끝날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은 아직 놓지 못하고 있다. 분홍 구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태어나 자란 아들만이라도 거짓말처럼 되뇌고 싶다. 구름은 일시적인 현상이며 곧 없어질 위험이라고 주문을 걸어본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아 두렵기만 하다.

코로나 블루 현상을 집대성

<핑크 클라우드>는 마치 코로나 시대를 예견한 듯 기시감을 안긴다. 2017년 시나리오를 시작해 2019년에 제작을 마쳤다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닮았다. 창작의 신이 미래를 알려준 건 아닐지 의심할 만큼 전 세계의 현실을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공감과 섬뜩함을 동시에 유발한다. 영화는 팬데믹 이후 당연하다고 여겼던 모든 행위에 제동이 걸린 이후를 다룬다. 아예 집 밖을 나갈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발생하는 심리적인 동요가 섬세하게 그려졌다. 곳곳에서 발생한 코로나 블루 사례의 다양한 모습이 재현된다.

필요한 물품은 드론으로 배달하고 창문에 달린 긴 튜브를 통해 받는다. 의료 행위는 의사와 온라인으로 상담받거나 보호 아래 직접 시술해야 한다. 떨어져 있는 가족과는 온라인으로 안부를 묻고 대면 직업을 가진 사람은 실업자가 된다. 그러다 보니 범죄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다. 밖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깨끗했다. 이게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알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다.

인지부조화에 다다른 사람들은 구름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미워하지만 말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적응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하지만 고립감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사람도 늘어났다. 뉴노멀에 적응하느냐, 낙오되어 죽느냐 두 갈래 길밖에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지구가 인간에게 주는 선물일까 벌일까. 아이러니함을 계속된다.

결국, 지오바나는 현실에서 도피해 가상현실 속으로 꼭꼭 숨어 버렸다. 식음 전폐하고 오직 VR 기계만 쓰고 생활하게 된다. 겉으로 봐서는 낭만적으로 보이는 붉은빛은 점차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절친한 친구는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고 여동생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는 아버지와 합의로 임신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유효기간을 알았다면…?

영화를 보며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의 극 중 대사가 뇌리를 스쳤다. “그때 그들이 15년이라고 말해줬다면 조금이라도 견디기 쉬워졌을까” 오대수는 원인도 모른 채 아내와 자식을 죽인 혐의를 안고 15년은 방 안에서 갇혀 지냈다. 매일 끼니때마다 나오는 군만두에 대한 단상을 향한 내레이션이 <핑크 클라우드> 상황과 맞물린다.

이미 2년째 진통을 겪고 있는 코로나의 맹위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사람들은 이제 될 대로 되라며 코로나와 함께 사는 일을 받아들인 듯하다. 곧 위드 코로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영화 속 분홍 구름이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절망적인 기운이 엄습해 온다. 그러나 미래는 정해진 게 없다. 그 열쇠를 쥔 우리의 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면 누구나 수정이 가능한 게 바로 미래라는 뜬구름이다. 유효기간을 알았다면 삶의 질이 달라졌을까, 희망을 품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을까. 인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많은 질문이 앞서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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