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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십개월의 미래’ 남궁선 감독 “임신을 보편의 경험으로 느껴보길 원했다.”

갑작스러운 임신은 축복보다는 당황스러움이 크다. 100km로 잘 달리던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급제동해야 하는 위험과 혼란이다. 지금의 삶을 잠시 멈춘 채 임신 이후 달라질 삶을 생각해야 한다. 과연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이러지어 3단 콤보는 여성의 몫이기만 할까.

안팎으로 매우 어려운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각종 OTT 콘텐츠가 난무하고 극장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때 6일 만에 1만 관객이라는 쾌거를 이룬 작품이 있다. 바로 임신의 과정을 톺아보는 <십개월의 미래>가 주인공이다. 지난 10월 25일 오후 그린나래미디어 사무실에서 남궁선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항상 힘들었지만 유난히 힘들었던 다양성 영화의 축제이자 이후 영화의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 같다. 남궁선 감독에게 그 소감을 먼저 물었다.

“영화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코로나 가 터지기 이전에 찍었다. 대신 편집을 하고 세상에 나왔는데 이후가 나에게는 문제였다. 고생한 스태프들과 뒤풀이도 하고 해야 하는데 못했다. 바로 전주영화제라서 GV도 하고 싶었지만 모두가 금지되었다. 더 많은 관객과 만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는 점이 아쉬웠다. 특수한 상황이 계속되는 지금이야말로 어렵게 봐주신 1만 관객님들이 계셔서 기쁘고 극장에 오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영화라니까 감사하다. 제 영화를 다양한 관객층이 봤다고 들었다. 같은 영화를 봐도 미래의 눈으로 각자의 상황에 적용해 본 반응들이 재미있었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휩쓸며 수상 4왕관을 수집하고 왔다. 준비 없는 임신과 출산, 낙태. 진로 고민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도 있지만 한국적인 요소. 예를 들면 성인이 되어서도 자식과 떨어지지 못하는 부모 세대나 부모 세대의 인생 이모작으로 유행인 치킨가게 오픈 등. 해외 반응이 궁금하다.

“같은 상황이라도 한국이 가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아시아 문화권과 서양 문화권의 차이도 있겠다. 부모가 자식에게 계속해서 금전적이든 도적적이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있다. 미래 아빠는 퇴직 95%가 망한다는 치킨집을 하려는데 탐탁지 않다. 실패 확률이 너무 뻔히 보이는 거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윤리적으로 부모의 말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아 속만 끓인다. 해외에서 가족이 치킨 레스토랑을 여는데 왜 화가 나있냐는 반응이 있었다. 한국의 은퇴 후 치킨 장사의 흥망성쇠를 친절히 설명해 주기도 했다.

그 밑바닥에는 아이를 키우기 쉽지 않은 사회 제도까지 포함이다. 아이 키우기에 협조적이지 않다.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좋겠지만 어찌 되었든 부모에게 의존하는 구조가 반복된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이 주권을 찾기 힘들어진다. 삶이 부모 때문에 흔들리고야 만다. 그 내용도 영화 속에 반영하고 싶었다.”

단편 <세상의 끝> 박정민, <최악의 친구들> 김수현, 정소민, <십개월의 미래> 최성은 까지. 반짝이는 신인을 먼저 알아봤다. 배우를 발굴하는 선구안이 있을까. 백현진, 류이든 배우 캐스팅 계기도 궁금하다.

“내가 한예종 미다스 손이라는 별명이 있다. (웃음) 청년이 주인공인 영화를 주로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인 발굴로 이어지는 것 같다. 미래도 스물아홉이지만 더 어린 감각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찍을 때만해도 최성은 배우는 연극 하나 한 신인이었다. 소년과 소녀, 아이와 어른의 중간 같은 이미지를 찾고 있었는데 보자마자 ‘이 친구다’라는 감이 왔다.

실제 최성은 배우는 미래와는 반대의 성격을 가졌다. 다부지고 예쁘고 단단한 성격이다. 무엇보다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신비로움과 에너지가 느껴지는 배우다. 다소곳이 있는 듯 보이지만 배역을 통해 다양한 곳을 유영하고 싶어 하는 친구다. 욕심 있는 많은 친구다. 어디든 데려다 달라고 말하는 듯싶었고,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기꺼이 뛰어들어가 알고 싶은 욕망이 느껴졌다.

그래서 미래를 어떻게 연기할지 걱정이 앞섰다. 미래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임신)을 모든 경우의 수와 오차 범위, 오류 등을 고려해 정답을 도출하고 싶어 한다. 미래를 코딩 프로그래머로 설정한 이유와 맞물린다. 사회가 임신과 출산을 다루는 도덕, 법적인 방식에 큰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 내가 진상을 부리는 손님처럼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래서 계속 의사를 붙잡고 질문을 하는 거다. 백현진 배우는 촬영 당시 지금 같은 괴상한 필모가 없었다. (웃음) 산부인과 의사 역으로 특이한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같이 하게 되었고 류이든 배우는 그냥 김김 같았다. 영화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캐스팅하게 되었다.”

‘요즘 나는 이름이 없는 곳에 들어서는 것 같은 기분이야’처럼 유독 주옥같은 대사가 많다. 그게 다양한 관객이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잘 풀리지 않는 내 인생을 위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시나리오가 경험에 의한 건지, 영감을 받은 작품이 있는지, 또는 배우의 애드리브인지도 궁금하다.

“자전적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내가 임신을 했을 때 이상한 경험으로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나는 똑같이 나인데 다른 사람 같았다. 갑자기 엄마, 모성애라는 프레임 속에 끼워 두고 나를 바라보더라. 임신을 둘러싸고 있는 정해진 개념이 불편했다. 임신에 대한 흑백논리나, 부조리가 만연해 보였다. 엄마의 존재는 특별하다는 모성 신화가 덧씌워졌다. 때문에 처음부터 한 여성이 그 경험(임신) 자체를 통과하는 영화를 만들고자 기획했다. 사람, 젊은 여성, 엄마라는 존재가 별개가 아님을 말하고 싶었다. 준비도 없이 그 세계 속에 떨어져 버린 사람의 감각이었던 것 같다. 그 이름 없는 곳을 비춰 보자는 의도가 반영되었다.

임신이 흔한 소재지만 그때 발생하는 혼돈에 대해 다루어 보고 싶었다. 미래의 대사를 빌어 임신 중이면 할법한 말을 대신 쏟아 냈다. 카오스라는 아기의 태명이 미래의 혼돈을 뜻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는 시작이기도 하다. 삶이란 혼돈 안에서 평생 질서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게 아닐까 싶다. “

미래는 영화가 끝난 후 잘 살고 있을까? 미래의 이름은 십개월 후 자신의 미래기도 하다. 최미래지만 최’악’의 미래가 되기도 한다. 중의적이면서도 영화 성격과 잘 맞아떨어지는 이름이다.

“어떤 이름은 어떤 인물과 잘 맞을 것 같다는 나름의 확신이 있다. 캐릭터의 성격이 바뀌면 이름도 바꾼다. 나만의 이름은행에 보관하고 있는 이름이 많다. (웃음) 미래는 딱 ‘최미래’ 같았다. 원래는 <십개월>이라는 제목이었다. 미래가 통과해야 하는 기간이 딱 십 개월이다. 제목 이대로 괜찮을까 고민하던 중 배급사와 논의 끝에 좀 더 확장된 제목으로 수정했다. 그리고, 최’악’의 미래라는 카피는 홍보사에서 지은 거다. 젊은 층은 최악이라는 단어를 재미있어하는 분위기가 큰데 반면 중장년층은 그게 왜 최악이냐는 반응이었다.

<십개월의 미래>는 여성 영화, 독립영화, 다양성 영화라 불리는 요즘 성향에 대해 입장을 듣고 싶다. 이 영화는 이런 영화야라고 규정 짓는 상황이 어떤가. 그리고 앞으로 차기작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 달라.

“준비하고 있는 시나리오는 많다. 시대와 상황이 맞물리면 나오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십개월의 미래>를 여성 영화라고 하는데 사실은 인간에 대한 영화다. 인간의 이야기를 너무 작게 축소하는 카테고리가 ‘여성 영화’라는 타이틀이다. 만약 20개의 장르가 있다면 그중에 하나인 여성 카테고리로 묶는 거다. 물론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는 영역이 존재하지만 수천 개의 이야기가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인간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속에 여성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십개월의 미래>를 여성 영화라는 프레임 속에 규정하지 않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키노라이츠 회원들에게 추천해 줄 만한 영화를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최근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아네트>를 보았다. 어떤 답을 내는 영화가 아니다. 그래서 주된 반응이 이렇다. 영화가 불친절하다, 해답을 내놓아라, 닫힌 엔딩으로 해달라는 주문이있다. 하지만 <아네트>는 해답이 아닌 인간의 조건, 혼돈 자체를 감각적으로 담고 있더라. 그 영화가 <십개월의 미래> 속 혼돈(카오스)과도 매우 유사하다. “

한편, <십개월의 미래>는 예정에 없던 임신으로 주인공 미래의 삶과 가족, 연인 등 주변 삶이 변하는 십개월을 다루고 있다. 진지한 주제지만 무겁지 않고 통통 튀는 빠른 호흡으로 이끌며, 쉬어 갈 수 있도록 챕터를 나누며 달려간다. 미래의 십개월을 따라가다 보면 최고의 미래와 최악의 미래를 각자 인생에서 찾을 수 있는 재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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