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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트]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나쁜 아빠 이야기



<아네트>는 레오스 카락스 영화 중에서도 단순하고 명확한 서사의 영화다. 이전 영화에서 보여준 강렬함은 유지하면서 스크린에서만 누려볼 수 있는 순간을 이끄는 매력이 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아담 드라이버)와 오페라 가수 안(마리옹 꼬띠아르)이 사랑에 빠진다. LA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슈퍼스타이자 셀럽인 두 사람은 어울리지 않는 만남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결혼한다. 곧 딸 아네트를 낳지만 관계는 속수무책으로 나빠진다. 안의 동료이자 지휘자(사이몬 헬버그)와 모종의 관계였을지 모를 안. 결혼 이후 내리막길을 걷는 헨리와 여전한 인기를 누리는 안은 어긋난다.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스탠드업 코미디언과 고상한 오페라를 부르는 가수는 처음부터 함께 할 수 없는 불편한 관계다. 이 같은 상황은 슬프지만 매번 반복되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아침 드라마에서 자주 보았던 클리셰가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족의 비극이면서도 개인의 비극으로 읽을 수 있으며, 인간의 희로애락이 담긴 보편적인 삶이다. 캐릭터 직업을 통해 코미디가 저급하고 오페라가 고상하다는 편견을 유보한다. 예술이란 개인 취향의 영역이고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거나 순위를 매기는 게 아닌 즐기고 사유하는 것이라 꼬집는다.

행복한 가족을 꿈꾸지만 자꾸만 이상하리만큼 차이가 느껴진다. 결혼 전에는 무대, 관객, 연기라는 공통점을 공유하는 게 좋았다. 하지만 부부의 불화는 세간의 관심으로 떠올랐고 연일 뉴스로 보도되며 왜곡된다. 영원할 것 같았던 둘 사이는 금세 시들해져 버린다. 아이가 생겼지만 상황은 더 나빠진다. 연이어 헨리의 폭력성에 대한 여성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안은 점점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러던 중 관계 쇄신을 위해 바다로 여행을 떠났지만 폭풍우를 만나 안은 죽고 만다.

레오스 카락스의 오랜 숙원사업

레오스 카락스가 9년 만에 선보인 신작이자 다양한 이슈가 있는 영화다. 뮤지컬, 오페라, 록이 혼합된 음악영화다. 올해 칸영화제 개막작이자 감독상을 받았다. 불어가 아닌 영어로 만들었으며 주연 배우인 아담 드라이버가 연기뿐만 아닌 제작에도 참여해 화제가 되었다. 감독은 그를 드라마 [걸스]에서 보조 점찍어 두었다가 세월이 흘러 아버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느껴 캐스팅했다는 비화도 전해진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해 팬들과 소통하며 영화적 철학을 논하기도 했다. 24시간이 걸려 한국에 도착해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과 모이기 쉽지 않은 상황 속 진심 어린 마음이 전해졌다.

20대 초반부터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다작 감독은 아니다. 데뷔작 <소년 소녀를 만나다>로 1984년 칸영화제 청년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두 번째 영화 <나쁜 피> 이후 <퐁네프의 연인들>, <폴라 X>를 만들었고, 이후 21세기 되어서는 <홀리 모터스>를 연출했다. 뮤즈라고도 불리는 드니 라방과 4번째 영화를 찍었으며, 이번 영화에서는 새 뮤즈를 찾은 듯하다. 거장들의 섭외 1순위로 불리는 아담 드라이버와 프랑스의 국민 배우인 마리옹 꼬띠아르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뮤지션 스팍스 형제가 만든 오리지널 음악을 토대로 만들었으며 전적으로 그의 노래에 영감받아 시작된 프로젝트다. 오랫동안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던 감독의 열망을 확인할 수 있는 140분간의 송스루 방식을 취한다. 배우들은 자는 순간 빼고 거의 모든 대사를 노래로 전달한다. 감정 연기와 몸의 표현, 상대 배우와의 동선까지 함께 고려하면서 노래까지 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아담 드라이버와 마리옹 꼬띠아르는 혼신의 힘을 다한다. 두 사람은 아름답고 조화롭다.

이번 이야기도 딸과 아버지의 이야기다. 딸 나타샤와 동반 출연했다. <홀리 모터스> 이후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심오한 고민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나쁜 아빠를 비난하는 딸과의 신경전이다. 영화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에서는 아빠와 딸, 스팍스 형제가 등장하고, 영화가 끝나면 딸 ‘나타샤’에게 라는 문구로 닫는다. 마치 공연의 커튼을 여닫는 행위처럼 보인다. 전체적으로 시작과 끝을 알려주는 무대 장치로 대사를 활용했다. 때문에 엔딩크레딧까지 모두 봐야 완전한 관람이라 할 수 있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아네트가 있는가

영화는 단순한 이야기 대신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유독 많다. 관객을 웃기는 스탠드업 코미디언과 죽음으로 치달은 비극의 오페라 가수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오페라는 기본적으로 여성들이 자살이나 목 졸려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죽을 때 가장 아름다운 노래인 아리아를 부른다는 게 아이러니인 셈이다. 헨리가 녹색을 즐겨 쓰는 반면 안의 붉은색을 아네트는 노란색을 주로 선보인다. 또한 바나나를 즐겨 먹는 헨리와 사과를 즐겨 먹는 안은 아담과 이브로도 읽힌다. 황-녹-적 이 세 가지 색은 영화 내내 등장해 회화적 미장센을 완성한다.

아네트는 헨리 양심의 가책이자 죄를 고발하는 존재다. 후반부 아빠와 딸의 독대 장면에서 폭발한다. 영감과 인기가 떨어진 헨리는 안을 질투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아네트는 애지중지한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도 아네트와 인생 2막을 시작할 거라고 자부한다.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아내와 달리 딸은 아직 아빠의 손길이 필요할 때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나를 멀리할 때의 텅 빈 마음과 아픔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창구라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의 꼭두각시였던 어린아이는 언젠가 자신을 찾아갈 것이다. 영원히 품 안의 자식일 수 없다는 말이다. 마리오네트의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던 아네트가 순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아이로 변화한다. 꼭두각시 아네트의 정체성의 확립이자 성장이지만 부모는 이 순간에 만감이 교차한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지만 나쁜 아빠가 되어가는 한 남자의 속죄 이야기다. 결국 돌고 돌았지만 사랑과 가족, 죄와 벌에 관한 영화다. 초기 혼돈으로 시작하고 다양한 에피소드를 거쳐 정리되며 끝난다. 화려한 무대 뒤 이면과 개인의 심연을 들추며 저변에 깔려 있는 욕망을 직시한다. 마치 커튼콜이 닫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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