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드 버틀러는 매년 액션영화를 통해 관객들과 만나는 액션스타다. 그 결로 치자면 드웨인 존슨, 빈 디젤, 제이슨 스타뎀과 다른 노선이다. 강인한 피지컬에서 오는 파워를 바탕으로 한 파괴력 보다는 나름의 인간미가 느껴지는 액션에 주력한다. 굳이 따지자면 브루스 윌리스, 리암 니슨과 비슷한 그룹에 속할 수 있는 제라드 버틀러다.
2004년 영화 ‘오페라의 유령’에서 팬텀 역을 맡아 스타에 오른 그이기에 매년 제라드 버틀러표 액션영화를 기다리는 마니아층이 있다. ‘플레인’은 2023년을 맞이해 제라드 버틀러가 선보이는 재난 액션 블록버스터다. 최근 비평의 측면에서 그리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 그의 필모그래피를 생각하면 팬심으로 봐야 할 작품처럼 보이지만 은근 흥미를 자극한다. 낮은 기대치로 시작해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말이다.
영화는 재난으로 시작해 액션으로 종점을 찍는다. 제라드 버틀러는 기장 토렌스 역을 맡았다. 전직 영국 해군 출신의 그는 새해를 앞두고 비행을 맡는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 딸과 만날 생각에 들뜬 그는 폭풍우를 만나 위기를 겪는다. 필리핀의 한 섬에 불시착한 그에게는 다양한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번개에 타버린 배터리, 살인 범죄자 가스파레를 이송하던 형사의 죽음, 후덥지근한 날씨로 짜증이 극에 오른 승객들 등 내적인 문제를 겪는다.
다만 이 내적인 문제는 외적인 문제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들이 착륙한 곳은 필리핀 정부조차 들어가길 꺼려하는 무정부주의자 반군 무장단체가 점령한 섬이다. 이들은 승객들을 인질삼아 몸값 협상을 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위험한 존재들이다. 구조를 청하기 위해 떠났던 토렌스는 승객들이 인질로 잡히자 이들을 구하기 위해 분투한다. 이런 전개 속에서 영화는 재난과 액션 장르의 장점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유연함을 보여준다.
제라드 버틀러는 ‘300’ ‘모범시민’ ‘폴른’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원조 짐승남의 매력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악천후 속에서 승객들을 구한 능력 있는 지능캐인 줄 알았던 토렌스는 육체미 넘치는 힘캐로 변신한다. 이 액션에 탄력을 더해주는 건 가스파레다. 그는 구조를 청하기 위해 숲을 탐험하는 토렌스의 여정에 유일하게 지원하며 적과의 동침을 만들어 낸다. 강한 육체로 액션에 힘을 더한다. ‘카터’에 출연했던 마이크 콜터가 역할을 맡았다.
캐릭터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가져오다 보니 장르의 측면에서 매력적인 변주가 이어진다. 초반 재난상황 때만 하더라도 무인도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릴 줄 알았던 영화는 승객 VS 무장단체로 구조를 잡아 생존액션을 펼친다. 토렌스와 가스파레를 중심으로 위기대응팀장의 주도로 이들을 찾으려는 본사, 본사가 보낸 용병단, 위기에 처한 승객들의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며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런 흥미로운 전개는 각본가 찰스 커밍의 힘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영국 비밀정보국 MI6에서 스파이로 활동한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로 활약 중이다. 스파이 시리즈 도서를 출간했고 뉴욕타임즈 선정 베스트셀러 작가 명단에 등단하기도 했다. 그는 장편 스크린 데뷔작 ‘플레인’을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작가로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한다.
이야기에 질감을 더하는 건 연출의 몫이다. 장-프랑소와 리셰는 프랑스에서 인정을 받은 뒤 ‘어썰트 13’을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한 감독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 뱅상 카셀과 함께 ‘퍼블릭 에너미 넘버원’과 ‘비독: 파리의 황제’를 작업하며 긴장감을 주는 액션 연출에 능통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액션을 연출하는 방법을 아는 감독이 액션을 아는 작가와 배우를 만나 강한 시너지를 발산한다.
‘플레인’은 최근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제라드 버틀러가 여전히 액션 장르에서는 매력적인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음을 입증하는 영화다. 팬심과 의리로 탑승을 했다 하더라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브루스 윌리스가 은퇴를 했고 리암 니슨이 70대에 접어든 만큼 제라드 버틀러가 앞으로 선보일 액션 장르에서의 활약이 기대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