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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호수] 혈연만이 아닌 선택하는 가족에 대하여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의 역설은 미국 건국 이래 계속되고 있다. 이 영화는 미국의 아동 시민법의 허점을 고발한다. 많은 관객이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하는 영화다. 2000년이라는 누가 만든 형식에 얽매여 많은 입양아들이 버림받은 조국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그 수는 수만 명에 이르고 있다. 문제점은 돌아간 나라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족과 삶은 미국에 있는데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 뚝하고 떨어진 격이다.

이 황당한 사건을 접한 재미교포 2세인 저스틴 전 감독은 영화화하기로 결정, 9명의 추방 위험에 놓은 사람들을 만나 면밀히 인터뷰했다. 피드백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녹여 낸 시나리오를 만들었고, 직접 연기와 연출까지 병행했다.

나는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닙니다

한국에서 1985년에 태어나 세 살배기 무렵 미국으로 입양된 한 남자. 국적 불명의 안토니오 르블랑(저스틴 전)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이후 위탁가정을 전전하다 12살에 가정 학대를 겪고 혼자 살아온 사람이 있었다. 겉모습은 아시안이지만 미국에서 30년을 살았기에 완벽한 미국인이라고 자부했다. 다만 조국이라 부르는 한국에 대한 기억은 많이 없다. 꿈같아서 멀게만 느껴지고 환상처럼 보이는 여성과 푸르스름한 호수의 이미지만 있을 뿐이다. 그에게 조국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실체가 없어 닿을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이다.

안토니오는 사랑하는 아내 캐시(알리시아 비칸데르)와 딸 제시(시드니 코왈스키), 그리고 곧 태어날 아기까지 오붓한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다. 현재 타투숍에서 일하고 있지만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더 나은 직장을 구하길 원한다. 하지만 전과자란 꼬리표와 아시아인의 외모를 갖고 있기 때문인 걸까. 취업은 쉽지 않았고 계속해서 어려운 일들만 닥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상황에 휘말려 난생처음으로 자신이 미국 시민이 아님을 알게 된다. 미국에서 30년 넘게 살았는데 갑자기 서류 하나 빠졌다며 미국인이 아니란다. 안토니오는 영문도 모른 채 이민단속국으로 넘겨졌고 불법체류자로 전락했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고 야속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절망적인 상황 속 아내 캐시는 바른 마음으로 만 살면 다 잘 될 거라며 다독이지만 불안하고 초조하다. 안토니오는 가족을 위해 실낱같은 희망에 모든 것을 걸어 본다. 삶의 터전에서 이방인이 된 기분이다.

내가 선택한 가족입니다

안토니오는 세상이 자신을 거부해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제시 때문에 살아갈 힘을 얻는다. 제시와 외모가 다르지만 선택에 의해 부녀관계를 맺었다. 내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진 걸까. 제시는 안토니오를 진짜 아빠로 여기며 의지한다. 생부(마크 오브라이언) 보다 안토니오의 껌딱지가 되어 곁을 따른다. 안토니오는 언제나 제시의 곁에 있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안토니오는 곧 미국을 떠나야만 한다.

가까스로 항소할 수 있는 변호사를 만나지만 절망적인 상황과 마주한다. 미국은 전 세계의 이민자가 몰려오는 나라지만 허점투성이 법을 유지하고 있음이 밝혀진다. 2000년 이후의 외국 태생 입양인에게만 시민권 취득이 가능한 아동 시민법 때문에 그 이전 입양아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안토니오는 여태 30년을 미국에서 살아왔고, 입양 후 파양이란 근거를 제시했지만 추방을 막을 수 없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꾸려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인 안토니오는 인생 일대의 위기를 피할 길이 없다.

<푸른 호수>는 내내 가족이란 혈연뿐만이 아닌 선택하는 관계라고 말한다. ‘가족의 선택과 탄생’이라는 주제는 혈연관계로만 이루어진 가족 이상의 의미를 보여준다. 내 몸에서 태어났으니까 자식, 그래서 부모가 아니라는 말이다. 책임을 다하지 않는 부모와 피를 나누지 않는 가족 사이에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탐색해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영화에서 ‘물’은 깊은 인장을 남기는 상징적인 존재다. 어머니와 고국에 대한 기억은 아프지만 끌리는 감정을 넘나든다. 어머니의 자궁안에서 들었던 소리처럼 아늑한 공간이 되어준다. 안토니오의 터전인 뉴올리언스 호수는 든든한 안정제가 되어준다. 이 잡을 수도 없고 잡히지도 않는 어렴풋한 기억이 포근히 안아준다. 한 소녀의 자장가, 쪽배와 잔잔한 물결, 차갑지만 싫지 않은 편안함이 불현듯 스쳐 간다. 고통과 슬픔이 찾아오면 희미한 푸른 호수는 복잡한 감정을 오롯이 받아준다.

그 중심에는 한국 특유의 한(恨)과 정(情)이 자리하고 있다. 미워 죽겠고 징글징글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가족, 그 이상의 의미를 시적 감수성을 담아 차근차근 읊는다. 진정한 가족은 무엇인지, 자신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인지 천천히 돌아보게 만든다. 혈연관계가 아니지만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가족을 통해 고착화되어 있던 인식을 철저히 해체한다.

더불어 베트남 이민자를 의도적으로 넣음으로써 실존의 의미를 되새긴다. 파커의 아버지가 고국을 떠날 때 아들과 엄마, 딸과 아빠로 나눠 탈출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 것처럼.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촉구하고 있다. 안토니오는 입양된 후 혼자 살며 한 번도 뿌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베트남 이민자인 파커(린 당 팜)을 만나며 변화한다.

잔잔한 호수 아래 뿌리를 단단히 내린 수련 같은 파커를 만나 성장하고 용기를 얻는다. 파커는 단순한 친구를 넘어 안토니오의 거울 같은 존재일 뿐만 아니라, 뿌리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을 대변한다. 전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망명한 이민자의 어려움과 ‘전쟁’이라는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있는 존재기도 하다.

미국의 허점투성이 법을 고발합니다

<푸른 호수> 앞에서는 ‘제2의 미나리’란 수식어가 종종 붙는다.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 <기생충>, <미나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화기 때문이다. 이 콘텐츠는 전혀 다른 인종과 문화 속에서 계급 갈등과, 공동체와 진정성을 품고 있다. 뚜렷한 목적으로 달려가지만, 재미와 완성도까지 보장한다. 이게 바로 한국 콘텐츠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가 아닐지, 이로 인한 문화적 확장성이 생기는 건 아닌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푸른 호수>는 제74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분,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 부분에 초청되었다. 저스틴 전 감독은 애플 TV 드라마 [파친코]의 공동 연출로 윤여정, 이민호와 호흡을 맞춰 기대를 모으고 있다. K 콘텐츠의 저력을 확인과 동시에 이끌어갈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될 영화의 탄생을 알렸다. 미국의 잘못된 법을 고발하고 관심을 촉구하며 앞으로 개선되길 원하는 감독의 강력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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