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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 인터뷰] ‘영화 성덕’ 추락한 스타의 성덕이었던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

만나기 전부터 유쾌함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영화를 먼저 본 후라 원래부터 알던 사람인 듯 편안한 자리. 지난 23일 오드 사무실에서 진행된 영화 <성덕>의 오세연 감독과 인터뷰가 그랬다.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갔고, 다음 만남이 기다려지는 사람이었다. 같은 질문도 다르게 대답하려고 노력한다며 내일은 또 어떤 질문을 받을지 설렌다고 밝혔다. 천생 이야기꾼. 인터뷰도 즐기고 있었다.

이번 ‘키노 인터뷰’에서는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핫한 리액션 영화, 매진으로 SNS에 표를 구하려고 안달 났던 영화였던 <성덕>의 주인공이자 모든 것인 ‘오세연’ 감독을 만났다.

1999년생, 올해 가장 눈부신 데뷔작

<성덕>은 다큐멘터리는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을 안드로메다로 날려준다. 빵빵 터지는 웃음 포인트 발랄한 톤앤매너와 사랑스러움이 가득한 영화다. 데뷔작을 통해 엄청난 화제를 모은 오 감독은 각본, 연출, 촬영, 편집, 심지어 출연까지. 다양한 역할을 혼자 소화했다.

1999년 부산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 5학기째 다니고 있는 학생이다. 탈덕 전에는 ‘성덕 오세연’ 타이틀에 자부심을 가졌었다. 지금은 흑역사가 되어 웃픈 현실로 되돌아왔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을 이었다. 요즘은 오랜만에 복학해 “학교 다닐 맛 난다”라고 근황을 전했다.

요즘 콘텐츠계는 한예종 출신이 유독 많다. 호기심이 생겼다.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독보적이라는 한예종 영화과 수업 과정을 조금만 들려 달라고 청했다.

“요즘은 학교 다니는 게 제일 큰 기쁨이에요. 친구, 선생님 특히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요. ‘연기연출’ 수업은 연기자 출신 선생님이 연기 디렉팅 해주는 수업인데요. 연기자와 연출자의 언어 차이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첫 영화는 다큐지만 극영화도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때 소통 방식을 미리 배우는 기분이에요.”

이어, 또 다른 수업을 소개했다. “‘순회공연’이란 이름의 수업인데요. 아동.청소년극을 초등학교에 찾아가서 하는 수업이에요. 동화를 소리로만 표현해 본다든지, 익숙한 공간을 아이의 시각으로 생각해 본다든지, 우리 학교에서만 들을 수 있는 수업이라 매우 값진 시간이에요.”라며 수업 자랑을 마쳤다.

아이스브레이킹도 했겠다, 본격적인 영화 이야기를 시작했다.

‘성덕’이란 성공한 덕후의 줄임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덕질은 드러내지 못하고 몰래 했던 취미의 일종이었다. 이제는 ‘어떤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란 긍정 타이틀로 쓰임이 바뀌었다. 하지만, 성공한 덕후라는 자부심이 5년 만에 충격과 실망으로 되돌아왔다. 이제 누군가를 좋아하길 그만두었을까.

“사실은.. (웃음) 요즘은 셀프덕질을 하는 중이에요. 제가 먼저 좋아해 주어야겠다고 문득 생각했답니다. 저에게 ‘덕질’이란 나보다 더 중요한 게 생기는 거였어요. 계속 누군가를 좋아만 하다가 지금은 잠시 쉬고 있어요.”

뭔지 알겠다. 뭐든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이 힘들게 한다. 사람에게 치일만도 하다. 문구덕후라 노트나 필기구류 수집, 다이어리에 끄적이는 걸로 대신한다고 전했다. 이제 사람은 영 싫어지는 걸까.

정준영은 음악 오디션으로 알려져 가수와 예능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었다. 미션을 통과하고 최종 우승까지 지켜봤다면 재능과 열정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화, 연예면이 아닌 사회면에서 등장하자 전 국민이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오 감독은 영화를 만들며 자가 치유가 된 듯 보였다. “주변에서 재미 삼아 만들어 보라고도 하더라고요. (그걸 내가 덥석 문 거지..) 5년간 겪은 일들과 비슷한 경험을 한 팬들,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팬들의 존재가 묘하게 다가왔죠. 어떻게 그 사건을 접하고도 남아 있는 건지 궁금했어요.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경험자분들과 영화로 담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 사람이었나 후회는 없었을까. “처음에는 상처받았는데 지나고 보니 운명이다 싶어요. 덕분에 영화감독까지 되었잖아요. 만약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잘 안 가요. 굿즈나 앨범에 쏟아 부은 돈도 그나마 청소년이었기에 다행이었어요. 성인이었다면… 아마.. (폭소) 아무튼 지금의 가치관, 즐겨 듣는 노래, 관점을 만들어 준 사람이니까요.”

폭망한 팬들을 위로하는 영화

<성덕>은 망한 팬들을 응원하고 과거를 정리하는 영화다. 굿즈 장례식, 성덕사에 방문하고 종치기 등등 재미있는 설정이 많다. 오 감독은 “겉은 연예인에 대한 영화로 보이겠지만 속살은 팬들에 대한 영화다”라며 기획 의도를 명확히 했다.

“성덕사요? (하하하) 평소에 산행이나 절 방문을 즐기는 편은 아니에요. 그 에피소드는 제목이 성덕이다 보니까 말장난 치다가 넣은 거예요. 성덕 대왕 종소리를 넣고 싶었지만 잘 안되었죠. 전국의 성덕사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정말 많더라고요. 그중 창원 성덕사로 결정했어요. 성덕들의 고해성사처럼 해보자는 의도였어요. 성덕으로서 성덕이란 영화를 성덕사에서 인터뷰하고 종도 쳐보자!”

영화의 관심이 폭발적이었다. 언론시사회에도 다수의 팬이 오 감독을 응원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커질 줄 상상도 못 했어요. (웃음) 단톡방 사건이 터지고 당장 카메라를 들어야겠다는 무언가가 꿈틀댔던 거 같아요. 안에서 맴돌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일기 쓰듯이 내 사연을 들려주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자기 검열하게 되고.. 그냥 놓아버리면 끝나 버리는데 책임감 생기더라고요. 더 많은 용기와 도전이 필요한 일임을 깨달았죠.”

성황리에 팬미팅도 마쳤다고 들었다. 누군가를 쫓아다녔는데 반대 입장이 된 거다. 오랜만에 한복을 입어 봤고 GV도 즐거웠단다. 분명 기억나는 팬이 있을 거 같았다.

“그걸 영화 볼 때마다 느껴요. 관객들 반응을 직접 체크하거든요. 이번에는 이 포인트에서 많이 웃으시네, 오늘은 덜 웃으시네 이러면서 소소한 재미를 챙겨요. 팬미팅 때 진짜 놀랬죠. 미개봉 영화를 좋아하고 소문 듣고 궁금해하는 분들이 오시는 자리였으니까요. 팬 서비스 차원에서 오랜만에 한복을 입었는데 꼭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어요. 멀리 지방에서도 오시는 몇몇 팬들이 계시는데요. (놀라며) 군산에서 유명한 빵을 고이 서울까지 들고 오시는 분도 있었어요. 다음에는 둘 다 성장해서 만나자고 하니까 감동이었죠. 또 생각나는 건, 수지와 구교환 팬이라는 분들이요. 그 둘과 저의 공통점은 뭘까…한참을 생각해 봤답니다. (웃음)”

오 감독은 자랑스러운 팬이 되고 싶어 스스로를 단련했다. 전교 1등도 하고 굿즈도 모으고 열과 성을 다했다. 본인은 폭망 했다지만 <성덕>을보고 오히려 입덕하는 팬이 생길지도 모른다.

“관객 중에 동종업계 종사자나 공부 중이라는 디엠을 종종 받아요. 신기하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 모습이었으니까요. 절 생각해 주는 분들이 생긴 거잖아요. 감사하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 살아야겠다! 다짐하게 되었죠. 덕질의 순기능? 인생을 열심히 살게 해주었으니까요.”

20~30대 팬들이 나오지만 두 인터뷰어가 인상적이었다. ‘어머니’와 사건의 최초 보도자인 ‘박효실 기자’다. 영화 전반부가 탈덕의 간증 같았다면 후반부는 오 감독의 과거, 현재를 정리하는 시간 같았다.

“팬클럽이거나 활발한 활동을 한 건 아니지만. 어둠 속에서 타닥타닥 팬카페에 글 남기는 엄마를 떠올렸어요. 또래의 경험뿐만 아닌 확장된 팬심도 필요해서 출연해달라고 했죠. 제 덕질인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서포터까지 해준 사람이니까요. (웃음)

박효실 기자는 음.. 최초 보도했을 때, 엉뚱한 사람을 이상하게 몰아간다고 미워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죄송한 마음이 차올랐고 도저히 미룰 수가 없어 연락드렸죠. 무서웠어요. 하지만 너무 따뜻하게 대해 주셔서 오히려 감동했어요. 저 같으면 무시했을 거 같은데 ‘연락 고맙다. 위로된다. 도움 줄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면서 인터뷰도 응해주셨어요. 최근 개봉을 앞두고 또 만났는데 이런 말씀을 들려주었어요. ‘내가 더 고맙다. 나도 인생의 한 챕터를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요. 저 또한 이 분을 만나 분기점이 된 기분이에요. 저를 위해 만든 영화인데 더 큰 의미로 받아들여 주셨다니 영광이었습니다.”

영화 개봉 소감과 아직도.. 구오빠를 지키고 있는 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을 것 같았다.

“영화제는 아무튼 제 영화를 일부러 보러 와주시는 분들이 모였던 거고 개봉은 또 다른 경우니 너무 떨려요. 아직 남아 있는 팬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근데 그분들이 절 미워하는 거 같아요. (웃음) <성덕>은 누군가를 비난하고 욕하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고 팬이 주인공인 영화라고 말하고 싶고요! 그분들이 꼭 영화를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키노라이츠 유저에게 추천하고 싶은 ‘인생 영화’를 꼽아 달라고 요청했다. 오 감독은 유머 감각이 있는 영화가 훌륭한 영화라고 더욱 느꼈다며 해학 속에 삶이 있다는 철학적인 말도 덧붙였다.

고민 끝에 ‘오즈 야스지로’의 <안녕하세요>를 떠올렸고, 인생 영화로는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을 꼽았다. <성덕>은 레퍼런스가 없는 영화지만, ‘아녜스 바르다’의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을 좋아해 타투까지 했다며 운을 떼었다. 다큐형식에 자신과 영화, 삶을 갈아 넣었다는 점에서 두 영화를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봐야 할 영화면서도 재미있는 작품이다.

오세연 감독은 영화 개봉에 앞서, 너무 바쁜 아이돌급 근황을 전했다. ‘학업’과 ‘개봉’ 두 마리 토끼를 위해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소식도 들려주었다. 10월 말 《성덕 일기》라는 책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영화를 본 후 좀 더 깊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다.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 등이 담겨 있다고 한다. DVD로 치면 코멘터리 같은 경우다. <성덕>의 제작기, 인터뷰, 덕질에 관한 소회를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냈다며 웃었다.

<성덕>은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의 배신으로 슬픔, 분노, 인정, 성찰로 이어지는 자전적인 경험을 담은 영화다. 덕질의 강제종료에 머리가 얼얼해졌고, 남들 앞에 ‘한 때 그 사람을 사랑했다’라고 선뜻 드러내기 어려운 사연을 웃음으로 승화했다. 살면서 여러 고통과 슬픔에 마주하겠지만 이번 일은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을 거다. 이 영화를 보며 과거 누군가를 미치도록 좋아했던 경험이 있다면 러닝타임 동안 충분히 보상받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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